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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서하영은 반사적으로 손을 등 뒤로 감추려 했다. 하지만 너무 한심한 행동인 것 같아 자신의 팔을 잡아 세웠다. 게임 속에서 그녀는 임주현을 폭탄으로 날려버렸고, 곧바로 자신도 다른 사람의 총에 맞아 죽어버렸다. 임주현은 당장이라도 그녀를 발로 걷어차고 싶은 충동이 일렁였다. 그럼에도 입 밖에 나온 말은 엉뚱하게도 그녀를 감싸는 것이었다. “삼촌, 저 숙제 다 했어요!” 임도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서하영을 한 번 쳐다보고는 책상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디 봐.” 임주현은 빠르게 책을 꺼내 보여주었다. 숙제를 모두 완성했을 뿐 아니라 채점까지 되어 있었고, 틀린 부분은 이미 수정되어 있었다. 심지어 몇몇 문제는 따로 정리까지 해놓은 상태였다. 임도윤의 눈동자에 놀라움이 스쳤다. 그는 고개를 들어 서하영을 쳐다보았다. 서하영은 크고 맑은 눈동자로 조금도 피하지 않고 그 시선을 마주했다. “주현이랑 약속했어요. 숙제 끝내면 같이 게임하겠다고요.” 임도윤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그는 숙제 책을 내려놓으며 임주현에게 말했다. “잘했어. 게임 계속해.” 그 말을 남긴 뒤 방을 나섰다. 서하영은 눈에 띄지 않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임주현과 눈이 마주쳤다. 모두 구사일생이라도 한 듯한 표정이었다. 임주현이 비웃듯 말했다. “우리 삼촌이 그렇게 무서워요?” 서하영이 되물었다. “넌 안 무섭니?” 임주현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삼촌은 화나면 절 때리지 누나를 때리진 않잖아요. 그런데 왜 무서워해요?” “난...” 서하영은 말문이 막혀 어색하게 웃으며 얼버무렸다. “누가 무서워한다고 그래?” 임주현은 장난스럽게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서하영은 짜증이 난 듯 휴대폰을 움켜쥐었다. “삼촌 얘기 그만하고 게임이나 하자.” 임주현은 태블릿을 켜며 위협조로 말했다. “또 저 폭탄으로 죽였다간 제가 먼저 총으로 날려버릴 거예요.” 서하영은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절대 안 그래.” ... 집을 나설 때 서하영은 임도윤을 보지 못했다. 이번에도 운전기사가 그녀를 학교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별장을 벗어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어떤 사람은 굳이 마주 앉아 있지 않아도,단지 같은 공간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숨이 막힐 만큼의 압박감을 주곤 한다. 임도윤은 오전 내내 외출하지 않았다. 점심시간, 거대한 식탁 위에는 색과 향, 맛까지 고루 갖춘 열 가지 요리가 차려져 있었지만 자리를 채운 이는 임도윤과 임주현 단둘뿐이었다. 그는 국을 몇 숟가락 뜨고는 수저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새 선생님 어때?” “뭐 괜찮아요!” 임주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임도윤이 비웃듯 말했다. “게임 같이 해줘서?” 임주현은 태연히 대답했다. “저랑 게임해 줄 사람은 많아요. 저 아무나 좋다고 하지 않아요.” 그가 턱을 살짝 치켜들고 오만하게 덧붙였다. “사실 좀 불쌍해서 그래요.” “뭐가 불쌍한데?” 임도윤이 무심히 물었다. 임주현은 이마를 찌푸리고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은 안 계시고 할아버지 한 분밖에 없었는데, 지금 그 할아버지마저도 병환 중이래요.” 임도윤의 눈썹이 가볍게 실룩였다. “그 얘길 네게 직접 했어?” “네.” “하지만 단지 그것 때문에 남겨 두는 건 안 된다. 난 가정교사를 부른 것이지, 자선사업가가 되려는 게 아니니까.” 남자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임주현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꼭 그 때문만은 아니에요. 그 누나가 설명해 주면 머릿속에 잘 들어와요.” “그래.” 임도윤은 더 이상 따지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그 사람으로 하자.” 임주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임도윤은 속으로 서하영에 대해 다시금 곱씹었다. 진짜 불행한 상황이었든, 아니면 불행을 무기 삼아 연기를 했든 간에 적어도 어느 정도는 능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서하영은 임씨 집안의 차를 타고 학교 정문 앞에 도착한 뒤 곧바로 버스를 갈아타고 반산 별장으로 향했다. 전동차가 달려오자 꽃잎 무늬의 철문이 양쪽으로 열렸다. 별장 안에는 정갈하게 다듬어진 잔디밭과 유리 온실, 백 년 묵은 꽃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오른쪽 길을 따라가면 미국풍의 본채가 모습을 드러냈다. 커다란 통유리창 너머로 하얀색 카펫 위에 엎드려 있는 콩이가 보였다. 그녀가 들어서자 콩이는 빠르게 달려 나왔다. 서하영은 몸을 굽혀 녀석을 안아 올렸다. 그러다 문득 임도윤이 키우는 강아지가 떠올라 마음이 저려왔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케이크 상자를 흔들며 말했다. “반은 너 줄게.” 콩이는 신이 나 마구 꼬리를 흔들며 그녀 곁을 맴돌았다. 현관으로 들어서자 오진숙이 부엌에서 나오기도 전에 콩이는 빠르게 달려가 슬리퍼를 물어 그녀 발 앞에 내려놓았다. “오늘 왜 이렇게 착해?” 서하영의 얼굴에 꽃 같은 웃음이 번졌다. 씻고 나와 콩이와 함께 케이크를 나눠 먹고 있을 때 전화가 걸려왔다. 서하영은 핸드폰을 확인하고는 전화를 받았다. “선배.” “뭐 하고 있어?” 남자의 부드러운 목소리에는 조금의 웃음기가 배어 있었다. “케이크 먹고 있었어요.” 서하영이 손가락 끝에 묻은 크림을 살짝 핥았다. “방씨 가문 셋째 부인이 오늘 연락을 해왔어. King 본인이 직접 디자인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원한대. 디자인 비용만 20억 제시했어.” 서하영의 눈썹이 살짝 위로 올라갔다. “방 부인이? 이번엔 꽤 통 크게 나오네요.” 그 여자는 GK 보석 관의 VIP였다. 모델 출신으로 부잣집에 시집을 갔지만 행실만큼은 늘 소심하고 옹졸했다. 수천만 원짜리 보석을 사면서도 몇십만 원의 포장 상자를 두고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는 인물이었다. 그런 여자가 웬일이란 말인가? “다음 달이 방씨 노부인의 팔순이야. 곧 상속 문제를 직면할 때가 다가온단 얘기지. 셋째 부인은 조금 더 돈을 지불해 노부인의 환심을 사려는 거야. 너 시간 괜찮아? 이 일 받을래?” 서하영은 가볍게 웃어 보였다. “당연히 해야죠. 그 큰돈을 마다할 이유가 있겠어요? 한 달이면 충분해요.” “좋아, 내일 사모님한테 얘기할게.” 민수호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물었다. “스튜디오엔 언제 나올 거야?” 서하영은 잠깐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주말쯤, 시간 봐서요.” “알았어. 기다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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