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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강지영은 온몸이 욱신거리는 통증에 눈을 떠보니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집이었다. 박태형은 침대 옆에 앉아 어두운 눈빛으로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 뭐라 그랬어? 떠난다고?” 강지영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리고 쉰 목소리로 태연한 척했다. “떠난다니요? 고열 때문에 헛소리했나 봐요.” 박태형은 오랫동안 그녀를 바라보다가 그 말을 믿어준 듯 마침내 손을 놓았다. “생리 중이면 말을 해야지. 그런 상태로 호수에 그렇게 오래 있었던 거야?” 강지영은 힘없이 웃었다. “내가 물에 들어가서 배시우 씨가 태형 씨를 용서해 준다면야 뭐든 할 수 없죠. 뭐 하러 말해요.” 박태형의 표정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그는 다시 물었다. “내가 그렇게 좋아?” 강지영은 고개를 숙였다.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녀는 단지 두 집안의 협력을 유지해야 했을 뿐이다. 강지윤이 돌아오기만 하면 그때는 정말 떠날 생각이었으니까. 그때 문이 갑자기 열리며 배시우가 들어왔다. “태형아, 우리 언제 낚시하러 가?” 그녀는 강지영이 깨어 있는 걸 보더니 놀란 듯 입을 가렸다. “어머, 강지윤 씨 깨어 있었네요? 괜찮아요?” 하지만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해맑게 웃으며 또 말했다. “지난번에는 내가 너무 화가 나서 그랬어요. 설마 강지윤 씨를 진짜로 호수에 던질 줄은 몰랐죠. 미안해요.” 그러고는 가볍게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나한테 수혈해 줬다면서요? 같이 낚시 가요. 사과하는 셈 치고요.” 강지영이 거절하려 하자 배시우가 먼저 다가와 손을 잡았다. “그러지 말아요. 태형이한테 이미 말 다 해놨어요.” 박태형이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냥 맞춰줘.’ 결국 강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호화로운 요트 위. 바닷바람에는 짭조름한 냄새가 섞여 있었다. 배시우는 줄곧 박태형 옆에 붙어 있었다. 과일을 먹여 달라 하고, 선크림을 발라 달라 하고, 심지어 바다 구경 좀 시켜 달라며 애교를 부렸다. 강지영은 갑판에 서서 잔잔한 수평선을 바라봤다. 마치 그 모든 일이 자기와 아무 상관 없는 듯 조용히 말이다. 잠시 후, 박태형이 전화를 받으며 자리를 비웠다. 그제야 배시우가 그녀 곁으로 다가왔다. “가끔은 진짜 모르겠어요, 강지윤 씨가.” 강지영이 고개를 돌리자 배시우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다들 말하잖아요. 강지윤 씨가 태형이를 엄청 좋아한다고. 뭐든 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아한다고요. 그런데 좋아하면 원래 갖고 싶어지는 거 아니에요?” 그녀의 입가에 냉소가 스쳤다. “내가 누명을 씌워도 화도 안 내고, 태형이가 강지윤 씨를 호수에 던져도 뭐라 안 하고. 지금 나랑 태형이가 이렇게 다정하게 있는 걸 봐도 표정 하나 안 변하잖아요.” 배시우가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목소리를 낮췄다. “정말 좋아하기는 하는 거예요?” 강지영의 입꼬리가 살짝 흔들렸다. 배시우의 말이 맞았다. 그녀는 박태형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말이 막 입 밖으로 나오려는 순간, 커다란 파도가 요트를 덮쳤다. “꺄악!” 둘 다 중심을 잃고 그대로 바다로 떨어졌다. 차가운 바닷물이 순식간에 몸을 덮쳤고 금속 난간이 팔을 스치며 길게 찢겼다. 붉은 피가 물속에서 번져나갔다. “사람 떨어졌어요! 빨리 구해요!” 갑판 위는 금세 아수라장이 됐다. 구조요원들이 바다로 뛰어들었지만 곧 고개를 저으며 떠올랐다. “박 대표님! 피가 번지고 있어서 상어가 몰려올 겁니다! 게다가 두 사람 떨어진 방향이 달라요. 한 명밖에 못 구합니다!” 박태형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의 시선이 미친 듯이 바다 위를 오갔다. 한쪽에는 필사적으로 버둥대는 배시우, 다른 한쪽에는 점점 멀어지는 강지영이었다. “시우부터 구해!” 그의 목소리가 절규처럼 터졌다. 짠물이 폐 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강지영은 멀어져가는 구조요원들을, 그리고 박태형의 초조한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 씁쓸한 웃음을 짓고는 눈을 감았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박태형의 세상에서 자신은 언제나 버려질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차가운 바닷물이 폐로 들어오며 의식이 희미해졌다. 그때, 검은 그림자가 아래에서 빠르게 다가왔다. 상어였다. 날카로운 통증이 다리를 파고들었다. 그녀의 마지막 기억은 새파란 바다 한가운데 피가 천천히 번져가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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