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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4화

그 말에 구십칠이 충격에 빠진 눈을 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대제사장?” 낙청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 내가 대제사장이 되어야 이 불공정한 법과 질서를 파괴할 수 있고 네가 구하고 싶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어.” “너희들이 아무리 많은 사람을 죽여도 이 법과 질서가 존재하는 한 여전히 많은 사람이 억울하게 노예로 전락할 거야.” 그녀의 설명을 들은 구십칠은 동요하는 눈빛을 보였다. 그러다가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못한 듯, 미심쩍은 표정으로 낙청연을 바라보았다. “네가 지금 했던 말 다 지킬 수 있어?” “당연하지. 처음부터 그럴 마음이 없었으면 이곳에 오지도 않았어.” 구십칠은 눈앞의 여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창백하고 초췌한 얼굴은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 같지 않았다. 그녀와 손을 잡으면 대업을 이루기 전에 그녀가 먼저 죽어버릴까 봐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확신에 찬 눈빛과 말투는 묘한 신뢰감을 안겨주었다. 구십칠이 여전히 결정을 못 내리자 낙청연은 천명 나침반을 꺼냈다. 그러고는 바닥에 쓰러진 두풍진을 바라보며 담담히 입을 열었다. “저 남자의 과거를 봤어. 노예의 존재 이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어. 그의 가족들이 수모를 당했다고 해서 그가 무고한 사람을 죽인 건 정당화될 수 없어. 그 가해자들과 다를 게 뭔데? 심지어 더 악랄했지. 그래서 저 자를 죽인 건 후회하지 않아.” “하지만 구십칠, 당신은 달라. 물건을 훔치기만 했지 한 번도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어. 너는 끝까지 공정함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는 거야. 무고한 피를 보기 싫었던 거겠지. 내 말 틀렸어?” “그래서 나는 당신이 바깥에 있는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해.” “저들은 당신을 이해하지 못할 거야. 하지만 난 당신을 이해할 수 있고 도움을 줄 수도 있어.” 말을 마친 낙청연은 피곤한 기색으로 침대 머리에 몸을 기댔다. 그 모습은 전혀 약자로 보이지 않았다. 구십칠의 눈빛에서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그는 작은 몸집안에 숨은 강직한 영혼을 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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