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공항에 도착하자 검색대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고모 원수정이 서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서 원유희를 찾아 두리번 거리던 경호원들이 원수정을 보고 달려왔다. “고모, 표 주세요!” 그녀는 고모에게서 여권과 신분증 그리고 비행기표를 받았다. “유희야, 무슨 일이니?” “교수님이 다시 학교로 복귀하라고 하셨어요. 급한 일이 있으시대요.” 만약 원유희가 임신 때문에 휴학을 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대학을 다니고 있었을 것이다. “유희야, 연회에서 얼굴만 비추고 그렇게 사라지고는 지금까지 친구네 집에 있다가 고모네 집에는 오지도 않고…… 이렇게 가버리면 너를 언제 또 보겠니? 넌 그 동안 고모가 보고 싶지도 않았어?” 고모의 애처로운 모습에 원유희도 죄책감을 느꼈다. 그녀도 고모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김신걸이 괴롭히니 그녀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고모, 제가 나중에 찾아 뵐게요. 저…… 정말 가야겠어요. 고모 건강하세요.” 원유희는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을 응시하며 고모의 손을 놓고 검색대로 달려갔다. “유희야…….” 원수정은 조카가 이해되지 않았다. ‘학교에서 이렇게 급히 찾는다고? 말도 안 돼.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게 틀림없어.’ 검색대를 통과한 원유희는 급히 비행기에 올라타 이륙하기만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내내 심장이 어찌나 빠르게 뛰는지 온몸의 근육이 저릿했다. 순간 원유희는 검색대 앞에 서있던 원수정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젠 돌아올 일이 없는데…….’ 그녀는 고모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비행기에는 계속해서 승객들이 탑승했고, 원유희는 혹시 경호원들이 이 비행기에 타지는 않을까 두려웠다. 잠시 후 안전벨트를 매고 핸드폰은 비행기 모드로 전환하라는 안내방송이 들리자 원유희는 기내에 준비된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이륙 준비를 마친 비행기는 활주로 쪽으로 향했다. 원유희는 덜컹거리는 비행기 안이 너무나도 편안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비행기가 갑자기 멈추었다. 그녀는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 하는 마음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비행기는 완전히 멈춰 섰다. “왜 출발하지 않는 거죠?” “이게 무슨 일이야!” “시간이 없는데! 빨리 출발해!” 승객들이 소리를 질렀다. 원유희는 소란스러운 군중들 속에 고개를 숙이고 기다렸다. 그때 일등석 칸의 문이 열리고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들어왔다. ‘오마이갓.’ 원유희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숙였다. 경호원들이 원유희의 좌석 앞에 서자 그녀는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아가씨, 저희와 함께 가시죠.” 원유희는 좌석 벨트를 꼭 움켜쥐고 당황한 표정으로 그들을 보았다. 비행기에 탄 사람들은 경호원들의 큰 체구에 아무도 불만을 내뱉을 수 없었다. “저희도 무력으로 아가씨를 모시고 싶지 않습니다.” 원유희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지 고민했다. ‘비행기도 멈추는 김신걸의 위력…… 나를 좀 내버려 두면 안 되나?’ 그녀는 경호원들에게 붙잡혀 또다시 남월만으로 끌려갔다. * 남월만 로비에 들어서자 소파에 앉은 김신걸이 원유희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그녀는 살기 위해 뒷걸음질 쳤지만 경호원들이 뒤에 서있어서 도망가지도 못했다. “혹시 길을 잃었던 거야?” 김신걸이 물었다. 원유희는 침을 꼴깍 삼키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김신걸은 꼬았던 다리를 풀고 천천히 일어나 원유희에게 다가왔다. 그의 걸음은 우아하면서도 공포스러웠다. 그와 함께 있으면 1초 뒤의 상황을 예측하기도 힘들었다. “일부러 해산물을 먹은 건 대단해. 목숨을 걸고 그렇게 할 줄은 정말 생각도 못했어. 근데 원유희, 네가 모르는 게 있는데 말이야.”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은은하게 화가 묻어있었다. “으악!” 그녀가 별다른 반항을 하기도 전에 커다란 손이 그녀의 목을 움켜쥐었다. “넌 나를 우습게 여기고 있어? 그렇지?” “나…… 날 좀 내버려 둬. 켁, 켁…….” 김신걸은 계속해서 손에 힘을 주며 그녀를 끌고 위층에 있는 큰 증기실로 갔다. 원유희는 그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녀는 그의 강한 힘에 떠밀려 증기실 안으로 들어갔고 문이 닫혔다. 원유희는 좁은 공간에 갇혀 두 손으로 유리창을 두드렸다. “이게 뭐야? 나를 여기에 도대체 가두는 이유가 뭐야!” “널 내버려 두라고? 내가 순순히 그렇게 해 줄 것 같아?” “아니! 사실은 널 위한 서프라이즈야! 내가 준비한 서프라이즈! 어때? 놀랐어?”원유희는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온갖 이상한 변명을 해야만 했다. 김신걸은 그런 그녀를 비웃으며 옆에 있던 스위치를 두어 번 눌렀고, 증기실의 온도가 급 상승했다. 원유희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았다. 여기저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증기에 깜짝 놀란 표정으로 유리창을 두드렸다. “이 문 열어! 이러다 정말 죽는다고!” 김신걸은 계속해서 증기의 온도를 높였다. “제발 그만해 그만하라고!” 원유희는 울면서 애원하다 못해 발로 유리창을 차기 시작했다. 원유희는 억울해서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녀는 그가 왜 이렇게 자신에게 집착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유리창을 발로 차도 꿈쩍하지 않자 원유희는 두려움에 가득 찬 눈빛으로 김신걸을 쳐다보았다. “나를 내보내줘! 여긴 너무 뜨거워, 제발 나를 풀어줘. 살려달라고!” 그녀는 목에서 피 맛이 날 정도로 그에게 소리 질렀지만 그는 들은 채 만채 했다. ‘오늘 여기가 내 마지막인가? 난 이대로 죽는 걸까?’ 원유희는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는 마치 자신이 뜨거운 코코아 속 마시멜로우가 된 듯 점점 녹아없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뜨거운 증기가 폐까지 들어왔고, 몸의 수분은 계속해서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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