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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임윤슬이 씻으러 들어가자 공지한은 테라스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지한아, 드디어 내 전화를 받아줬구나. 나 호텔에 혼자 있기 싫어. 혼자 있으니까 밤마다 너무 무서워서 그러는데... 와 줄 수 있어?” “지금 본가야. 밤에는 나가기 힘드니까 내일 재윤이한테 연락해서 집 알아보라고 할게. 그때 가서 옮겨.” 그는 윤하영에게 아직 미련이 남아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른 척할 수도 없었고 또한 임윤슬과 혼인 관계가 유지되는 동안 만큼은 배신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게 그의 원칙이었다. 그래서 직접이 아니라 유재윤을 시켜 지낼 곳을 알아보게 했다. “알았어. 지한아, 번거롭게 해서 미안. 네가 이미 결혼한 거 아는데, 널 방해하면 안 된다는 것도 알아. 하지만... 나도 내 마음을 어쩔 수가 없어. 매일 너만 생각해...” “그만하고 쉬어.” 공지한은 그녀의 말을 끊었다. 마음의 저울이 윤하영에게로 일찍 기울어버릴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아직 임윤슬과의 관계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상처를 줄 수 없었고 이혼하기 전까지 지금 상태를 유지하는 게 최선이었다. “알았어. 지한아, 난 끝까지 널 기다릴 거야.” 통화를 마친 윤하영은 핸드폰을 꽉 움켜쥐었다. 결혼식조차 하지 않았다는 건 공지한이 그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였고 분명 공대훈 때문에 억지로 임윤슬과 결혼해 사는 거라고 믿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반드시 공지한을 되찾을 생각이었다. 공지한은 전화를 끊자마자 유재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형. 밤중에 무슨 일이야?” 아무것도 모르는 유재윤의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일 윤하영이 지낼 아파트 하나 알아봐.” “형, 뭐야? 진짜 바람이라도 피우려고? 정말 쓰레기가 되려고? 실망이다. 와... 내가 형을 잘못 봤네.” “찾으면 내일 회사로 와.” 공지한은 차갑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유재윤의 비아냥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사실 본인도 자신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몰랐다. 그는 원래 우유부단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그냥 이렇게 두기로 했다. “하, 이거 형수님한테 말을 해야 하는 건가? 안 하면 나중에 그 순진한 눈을 어떻게 마주 보냐고. 하아... 지한이 형은 진짜 교활하다니까. 늘 나만 나쁜 놈 만들지.” 유재윤은 혼자 투덜댔다. 여전히 고민되었던 그는 침대에 털썩 누우며 혼잣말을 이어갔다. 임윤슬이 씻고 나오니 공지한은 이미 통화를 마친 상태였지만 여전히 테라스에 서 있었다. “다 씻었어요. 당신도 씻을 거예요?” 임윤슬은 그가 외출하려는 건지 궁금했다. 외출한다면 굳이 이곳에서 씻을 필요도 없지 않겠는가. “안 씻고 어떻게 자? 땀 범벅인데, 당신은 안 찝찝해?” 공지한은 막 씻고 나온 임윤슬을 의미심장하게 보았다. 그녀는 한껏 보수적인 잠옷을 입고 있었다... 임윤슬은 공지한의 시선이 자신의 몸에 머무는 순간 당황해 침대로 달려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공지한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무섭나? 어차피 볼 거 다 본 사인데.' 임윤슬의 모습은 꼭 겁먹은 아기 토끼 같았고 자신은 그 뒤를 쫓는 늑대 같았다. 아까 티브이를 보는 동안에도 윤하영이 몇 번이나 전화를 걸어왔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임윤슬이 윤하영의 존재를 알게 되는 게 싫었고 윤하영이 돌아왔다는 사실은 더더욱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방에 들어서자마자 임윤슬에게 씻으라고 한 것이었고 무의식적으로 피해서 전화를 받으려 했다. 공지한이 씻고 나오니 임윤슬은 이미 잠든 듯 가만히 누워 있었다. 규칙적인 숨소리와 길게 드리운 속눈썹 아래 고요히 감긴 눈. 그는 조심스럽게 반대편에 누웠다. 그의 호흡이 규칙적으로 들려오자 임윤슬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랬다. 그녀는 내내 잠든 척하고 있었고 임신 중이기도 했다... 행여나 공지한이 그런 관계를 요구할까 봐 두려웠고 의사가 말하길 첫 석 달은 그런 관계를 하지 않는 게 좋다고 했으니까. 그리고 그가 오늘 밤 외출하지 않은 게 단지 본가라 불편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도 궁금했다. 어쩌면 이제 배 속의 아이와 함께 조금은 자신의 자지를 지켜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말이다. 공대훈의 말대로 이 아이가 그의 마음을 바꾸고 그녀와 공지한의 사이를 이어주는 복덩이가 되어줄 수도 있다. 다음 날 아침, 공지한은 임윤슬을 깨우지 않고 곧장 회사로 출근했다. 회의가 여러 개 잡혀 있었기에 아침도 거른 채 서둘러 나갔다. 현재 그룹 본사 최상층 대표실에서는 창립 맴버들이 모여 업무를 논의하고 있었다. 공지한은 책상 뒤에 앉아 그들의 보고를 묵묵히 듣고 있었다. “로렌스 가문의 새로운 가주가... 킨이랬나? 어쨌든 그 사람이 룰도 무시하고 틈을 타 바가지 씌우려고 하고 있어. 무려 5%나 더 뜯어내려는 모양인데 본인은 직접 나서지도 않고 부하들만 시켜서 설치는 중이야.” “현이 너는 내일 직접 그쪽으로 가서 전 가주와 직접 얘기해 봐. 계속 협력할 거면 계약서에 사인하고 안 할 것 같으면 그냥 그만둬.” “세원이 너는 페이라 쪽 사람들을 만나봐. 이 탐스러운 고깃덩이를 노리는 사람이 많으니까 그간의 정을 봐서라도 마지막 기회를 주는 거로 하자. 로렌스 가문이 그런 멍청한 수단을 쓴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막으면 돼.” “알겠어.” 임무를 받은 우현과 지세원은 바로 떠날 준비를 했다. 강은성은 그룹의 엔터테인먼트 부문을 주로 관리하는데 매일같이 연예계 뉴스 헤드라인에 오르내리며 신인 배우들과의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다. 이미 강진에서 유명한 바람둥이였지만 매력 있고 통도 커서 가방이든 집이든 아낌없이 챙겨주었기에 전 애인들조차 이별한 후에도 그의 좋은 말만 해주었다. “응? 벌써 가? 재윤이 올 때까지 안 기다리고?” “너 혼자 기다려. 이 형아들은 바쁘다.” 우현과 지세원은 서류를 챙겨 바로 나가버렸다. 두 사람이 떠나자 강은성은 여전히 소파에 반쯤 누운 채 게임을 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재윤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사무실로 뛰어 들어와 소파에 털썩 누웠다. “아이고, 죽겠네. 드디어 지한이 형 애인 일을 처리해줬네.” 말이 끝나자마자 공지한이 서류 더미에서 고개를 들더니 차갑게 유재윤을 노려보았다. “유재윤, 헛소리하지 마.” 유재윤은 급히 손으로 입을 막았다. “재윤아, 그게 무슨 소리야? 지한이 형이 형수님 몰래 그런 짓을 한 거야?” 강은성은 게임도 멈추고 핸드폰을 내려놓은 채 온통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유재윤을 보았다. 역시나 엔터사 사장이니 늘 가십에 호기심이 가득했다. 게다가 이번 가십의 주인공이 바로 그들의 ‘순정남' 공지한이지 않은가. 연애 한 번에 깊은 상처를 입고 겨우 극복해 결혼까지 한 줄 알았다. 물론 ‘순정남'의 성격상 당연히 임윤슬과 백년해로 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일로 애인을 만들고 거처까지 마련해줬다고 하지 않은가. 조용한 사람이 그랬다고 하니 강은성은 적잖이 놀라고 말았다. “은성이 형, 그건 지한이 형한테 직접 물어봐. 난 내 입으로는 뒷담화는 못하겠어.” 그랬다. 공지한이 화내면 엄청 무서웠고 자칫하면 그를 아주 먼 나라의 지사로 내쫓을 수 있었다. “이게 무슨 뒷담화야. 그냥 사실대로 말하는 거지.” 그러면서 강은성은 유재윤에게 바싹 다가갔다. “빨리. 이 형아한테 말해 봐. 무슨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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