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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이때까지도 최재현이 신경 쓰는 건 여전히 아무 의미도 없는 그 문제뿐이었다. 정서연은 이제야 깨달았다. 최재현은 자신의 친아들조차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 그의 마음속에서 진짜로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아마도 정수아 단 한 명뿐일 것이다. 최재현의 얼굴을 노려보며, 정서연은 검사 결과지를 힘껏 그의 가슴팍에 던졌다. “이혼협의서 다시 쓸 거야. 예준이는 내가 데려갈 거고, 정수아가 저지른 모든 일은 경찰 수사 들어가게 할 줄 알아!” 그 말만 남기고 그녀는 단호하게 돌아섰다. 하지만 정서연이 아무리 분노해도, 최재현의 눈에는 정수아에게 불만을 표출하며 그의 관심을 끌려는 걸로만 보였다. 정서연이 진짜 원하는 건 뭘까? 분명히 이혼이나 서로 죽자고 덤비는 최악의 결론은 아닐 터였다. 그녀의 가녀린 뒷모습을 바라보며, 최재현은 눈을 내리깔았다. 그녀가 바라는 건 결국 자신이 고개 숙여 먼저 달래 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럴 일은 없었다. 절대로. 이때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정수아가 울먹이며 말했다. “재현 오빠, 예준이 이렇게 된 거 다 내 잘못이야. 애가 어젯밤 내내 엄마만 찾는 바람에 달래다가 너무 지쳐서 잠깐 눈 붙였거든. 근데... 언니 소송까지 하는 건 아니겠지? 나 너무 무서워.” 그가 돌아서서 눈가가 젖은 정수아를 내려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어젯밤 서연이가 안 나갔으면 네가 이렇게 고생하지도 않았어. 넌 아이 돌봐 본 적 없으니 네 잘못 아니야.” 그녀는 그의 품에 기대어 울먹였다. “언니가 그렇게 화난 건 분명히 내가 뭔가 잘못했기 때문이야.” 그는 정수아의 몸을 바로 세우고 병상에 누운 최예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일단 가서 좀 쉬어. 그리고 어차피 서연이는 진짜로 신고 못 해.” 정수아의 눈에 안도감이 스쳤고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수아가 나가자, 최재현은 최예준의 곁에 다가갔다. 쓰레기통의 포장지를 훑어보고 창백한 최예준의 얼굴을 바라본 그는 눈빛이 흔들리더니 전화를 걸었다. 반 시간 뒤. 최재현이 병실에서 나올 때 안내 데스크 앞에 경찰 두 명이 서 있었다. “...해당 내용은 기록하겠습니다. 아이 상태도 직접 확인해야 해요.” 그가 다가가 보니 정서연이 진술서에 서명 중이었다. 그는 그녀의 팔을 움켜잡았다. “진짜 이렇게까지 할 거야?” “잠깐, 누구십니까?” 경찰이 그의 제지에 인상을 구겼다. 최재현은 경찰 쪽으로 돌아보며 말했다. “저는 예준이 아버지이자 정서연 씨 남편입니다. 애 엄마가 한순간 욱해서 실수로 신고한 것이니 제가 대신 사과드리죠.” 정서연은 그의 손을 뿌리치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헛소리하지 마.” 그녀는 재빠르게 서명한 종이를 경찰에게 건넸다. “아이 상태 보러 가시죠.” 경찰은 서명을 확인하고는 갸웃했다. “신고한 건 아이 엄마가 아니라 병원입니다. 병원 측은 아동 학대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어요. 그런데 아버지라는 분이 조사를 막는다니 이상하군요.” 최재현은 잠시 굳었고, 곁에 있던 간호사들이 낮은 목소리로 수군댔다. “봐, 분명히 그 여자가 일부러 정 선생님 아들한테 이상한 거 먹인 거겠지.” “그 남자 불륜이라며? 병원에까지 내연녀 끌고 오고, 진짜 뻔뻔해.” “그러니까, 정 선생님 불쌍하다니까. 가족 때문에 해외 연수며 승진 기회 다 포기했는데 돌아온 게 저 꼴이라니.” 주먹이 저절로 꽉 쥐어졌다. 병원에서 자신과 정수아를 모함한 정서연의 모습이 떠오르자 분노가 치밀었다. ‘정말 대단해. 수아를 몰아내려고 병원에서 이런 거짓말까지 꾸미다니.’ 병실 안. 경찰은 병실을 둘러보다 깨끗한 쓰레기통을 보고 물었다. “쓰레기봉투 갈았나요?” 정서연은 지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저는 잘 못 봤어요.” “알겠습니다.” 경찰은 사진을 몇 장 찍고 돌아갈 채비를 했다. “대략 상황은 파악했습니다. 당분간 병원 측 협조 부탁드립니다.” 그녀는 짧게 대꾸하고 경찰을 배웅했다. 그런데 이윽고 병원복 차림의 최재현이 다가오는 게 보이자 갑자기 속이 울렁거렸다. 그녀는 문을 힘껏 닫아버렸다. 최재현은 결국 들어오지 못했다. 유리창 너머로 침대 곁에 선 정서연을 힐끗 본 뒤돌아서 자기 병실로 향했다. 최예준이 이런 상태라 정서연은 아침부터 휴가를 내고 아이의 곁을 지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병실 문이 벌컥 열렸다. 정서연이 체온계를 확인하려던 찰나 벽에 세게 부딪혀 바닥에 넘어졌다. “독한 년! 엄마 노릇 못 해서 예준이를 아프게 하더니, 이제는 여동생까지 감옥에 보내려고 해?” 박경희가 그녀를 내려다보며 손가락질했다. 정서연은 몸을 일으켜 부모를 냉랭하게 훑었다. “여기서 소란 피우지 마요. 예준이 아직 회복 안 됐어요.” “예준이를 걱정할 줄은 아는구나. 내가 어쩌다 너 같은 독한 년을 낳았을까!” 박경희의 고함에 머리가 울렸다. 정서연이 휴대폰을 꺼내 경비를 부르려 하자 정태석이 다가와 폰을 내리치며 호통쳤다. “우리까지 경찰에 잡혀가라고? 못된 것, 이러니 네 친아들도 너를 싫어한다더라!” 그 말을 듣자 정서연의 심장이 서늘해졌다. 입을 떼기도 전에 최재현이 들어와 그녀와 부모 사이를 가로막았다. “최 대표, 네가 와 줘서 다행이다! 몸도 안 좋은데 미안하지만 지금 수아가 경찰서에 끌려갔잖니. 우리도 어쩔 수가 없어서 이러는 거란다.” 박경희는 최재현의 앞에서 완전히 다른 태도를 보였다. 눈시울을 붉힌 채 애원 섞인 모습이 사람 마음을 흔들었다. 최재현은 고개를 돌려 말없이 서 있는 정서연을 바라봤다. “이번 일 좀 시끄러워졌어요. 지금은 병원 측 입장이 중요해요.” 그러자 정태석이 정서연을 바라보며 호소했다. “수아는 네 동생인데, 진짜로 감옥 가는 걸 두 눈 뜨고 보겠다는 말이냐?” “다시 말하지만 예준이 아직 안 나았어요. 소란은 그만해요.” 더는 못 참은 정서연은 문 쪽을 가리키며 외쳤다. “다 나가요! 우리 애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다 책임져야 할 줄 알아요!” “버릇없기는!” 박경희와 정태석의 목청이 높아졌다. “재수 없는 것, 네가 뱃속에 있을 때 없애버렸으면 우리에게는 수아 하나만 있었을 텐데. 그랬으면 얼마나 행복했겠냐!” 최재현이 손을 치켜드는 두 사람을 막아 세웠다. 그리고 정서연을 향해 얼굴을 찡그린 채 말했다. “너는 예준이 엄마야. 병원하고 경찰 앞에서 네 말이 제일 중요해. 예준이는 아직 어리고 수아한테 의지하고 있어. 이 일로 애가 큰 상처 받을 수도 있다고.” 말인즉 아이를 위해서라도 거짓말을 해서 정수아를 지켜 달라는 얘기였다. 정서연은 고개를 들어 서로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 세 사람을 노려보다 헛웃음을 내뱉었다. 입으로는 전부 아이를 위한다지만, 정작 아이가 병상에 누워 있는데도 이런 난장판을 벌이다니... 최예준을 아끼는 마음은 하나도 안 보였다. 겉과 속이 다른 이들이 진짜로 신경 쓰는 건 오직 정수아 한 사람뿐이었다. “웃어?” 최재현이 못마땅하다는 듯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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