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7화

정서연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이유현이 먼저 다정하게 말을 꺼냈다. “내가 혼 좀 내줄까?” 장난이라는 걸 알면서도 정서연은 잠시 기대하는 마음을 품고 말았다. 어린 시절과 청춘 대부분이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던 그녀에게 이유현은 최재현 외에 유일하게 따뜻한 기억을 남긴 사람이었다. 그를 통해 처음으로 자신도 누군가에게 소중히 여겨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었다. 비록 그는 그저 몇 살 많은 오빠였을 뿐이지만, 정서연의 세상에서 그는 한 줄기 햇살이었다. 전화를 받기 전 정서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굳이 그럴 필요 없어.” 이유현은 그녀의 손등을 토닥이며 입 모양으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 오빠가 곁에 있잖아.” 어릴 적 그가 자주 해주던 말이었다. 그 따뜻한 말 한마디에 정서연은 굳이 정수아를 혼내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보세요? 수아야?” 이유현은 다짜고짜 본론을 꺼냈다. “너 또 서연이 기분 상하게 한 거야?” 전화기 너머에서 정수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질투와 억울함이 뒤섞인 목소리는 살짝 떨려 있었다. “언니가 그렇게 말했어? 둘이 지금 같이 있어? 오빠 눈에는 언니 기분만 중요한 거지. 내가 전화를 괜히 했네. 둘이 오붓하게 이야기 나누는데 방해만 됐겠네. 난 늘 언니 오빠 사이에 끼어든 불청객이니까. 오빠가 언니 편을 드는 것도 당연한 거겠지.” 빈정거림에 가까운 투정이 이어지자, 이유현의 얼굴빛이 살짝 누그러졌다. “내가 언제 그런 뜻으로 말했어...” 그는 슬쩍 정서연을 바라보며 가볍게 헛기침하고 말했다. “이따 다시 연락할게.” 몇 마디만 남긴 채 전화를 끊은 그 옆에서 정서연은 조용히 물을 마시며 시선을 떨궜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녀를 보며 이유현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수아가 좀 단순해서 그래. 괜히 너 기분 상하게 했더라도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 너도 알잖아. 수아가 악의 있는 애는 아니란걸.” 정서연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가볍게 고개를 젓더니 갑자기 이유현을 바라봤다. “유현 오빠, 밥 다 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