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2화

“은우 오빠!” 교차하는 하얀 차의 뒷좌석에서 구서희가 창문을 열고 소리쳤고 그녀 곁에는 강혜경이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심은우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한 것도 아니고 보지 못한 것도 아니었지만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눈빛은 음산하게 굳어졌다. “구서희 왔던데? 너 부르는 소리 못 들었어?” 윤지현이 일부러 그를 자극하듯 물었지만 그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구서희는 점점 멀어지는 차를 보며 미친 듯이 소리쳤다. 그녀는 급하게 차를 세우라고 외친 뒤 차에서 뛰쳐나와 심은우의 차를 뒤쫓았고 뛰면서 다급하게 그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결국 철문 밖까지 달려 나온 그녀는 멀리 사라져가는 차를 향해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고 주변 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정신 나간 사람처럼 쳐다보았다. 강혜경은 차 안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었지만 운전기사에게 차를 앞으로 움직이라는 지시도, 구서희를 따라 내리지도 않았다. 그저 무감하게,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앉아 있었다. 운전기사인 문 기사는 룸미러로 그녀의 얼굴을 슬쩍 바라보았다. 그는 오늘 왜 사모님이 하필이면 윤지현이 집에 온다는 걸 알면서도 구서희를 직접 데리러 갔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느새 심은우의 차는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졌다. 구서희는 길가에 털썩 주저앉아 멀어진 차량을 멍하니 바라보았고 그녀의 눈빛엔 짙은 질투와 광기 어린 집착만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온갖 수단으로 며칠간 심은우를 자신의 곁에 묶어두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는 다시 윤지현에게 돌아가 버렸다. 두 사람은 함께 집에 들어갔고 지금은 또 함께 어딘가로 떠났다. 설마 이대로 화해라도 하려는 건가? ‘안 돼. 절대로 안 돼! 심은우는 내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되찾을 거야.’ 그 시각, 조금 떨어진 가로수 옆에서 평범한 검은색 승합차가 심은우의 차를 따라 출발했다. 약 3분 후, 조도현의 휴대폰에 음성 메시지가 도착했다. “윤지현 씨가 남편에게 강제로 끌려갔습니다. 현재 미행 중입니다. 차량을 가로막고 윤지현 씨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