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2화
내가 솔직하게 고개를 저으니 반짝이던 주소연의 눈빛이 점점 흐려졌다.
한동안 말이 없던 주소연은 억눌린 감정을 토하듯 말을 꺼냈다.
“흥. 됐어요. 오빠가 어떻게 하든 이젠 상관 안 해요. 설마 눈 뜨고 주씨 가문이 무너지는 걸 그냥 두고 보겠어요?”
말을 마친 그녀는 곧 깜짝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뜨고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퉤퉤퉤.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지. 우리 가문은 절대 망하지 않을 거예요.”
나는 그녀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났고 조용히 배낭 끈을 고쳐 쥔 채 다시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 바닥에 얼룩덜룩한 빛 그림자를 드리우며 왠지 모를 평온함을 안겨주었다.
숲속은 간간이 들려오는 새소리로 고요를 깨웠고 다람쥐 몇 마리가 분주히 나뭇가지 사이를 오갔다.
“온나연 언니, 여기 혹시 늑대는 없겠죠?”
주소연이 불안한 듯 내 배낭을 살짝 잡아당겼다. 나는 웃으며 그녀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안심시키려 했지만 그때 덤불 너머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가 숨어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듯했다.
우리 둘은 거의 동시에 그 방향을 바라보았고 무성한 풀잎이 시야를 가려 정체를 알 수 없었다.
그 순간 덤불이 다시 크게 흔들렸다.
주소연은 겁에 질린 얼굴로 내 뒤에 숨었고 나는 일부러 태연한 척 말했다.
“새일 거야. 내가 이 집 계약할 때 주인아저씨가 이 근처엔 큰 야생동물은 없다고 했어.”
주소연은 억지로 미소를 지었지만 다음 순간 덤불의 흔들림은 더욱 거세졌다.
그건 분명 새나 토끼가 낼 수 있는 움직임이 아니었다.
‘설마 진짜 늑대라도 있는 건가?’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고 나는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서며 주소연과 눈을 마주쳤다.
그녀는 긴장한 나머지 발을 헛디뎌 그대로 주저앉았고 짧고 날카로운 비명이 숲속을 가르며 퍼져 나갔다.
그 소리에 덤불이 잠시 잠잠해졌지만 곧 안에 있던 무언가가 튀어나올 듯 더욱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큰일이다.’
나는 속으로 외치며 주소연을 번쩍 일으켜 세우고 그녀의 손을 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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