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밤 9시, 한 대학교 안의 남자 기숙사. "야! 이도윤, 1층에 있는 101호로 내려가서 내 노트북 좀 가져와!" 옆 기숙사에 사는 금발의 남자가 도윤의 방문을 열고 소리쳤다. 그리고는 그가 던진 천 원이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돌아서 가버렸다. "아 참, 아래층에 있는 슈퍼에서 생수도 한 병 부탁해!" 금발머리를 한 그 학생은 2천 원을 더 던졌고, 이번에도 그 돈이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돌아섰다. 3천 원 중 2천 원은 생수 값이고, 나머지 천 원은 심부름 값이었다. "야, 금발! 너네 기숙사 놈들은 왜 맨날 도윤이한테 심부름을 시키냐? 왜 그렇게 괴롭혀?" 도윤의 기숙사 사람들이 쌀쌀맞게 물었다. 그들도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하하! 이도윤이랑 한 기숙사 살면서 너희는 아직도 걔가 어떤 애인지 파악이 안되니? 쟤는 천 원만 주면 똥을 먹으래도 먹을 놈이야!" 도윤은 금발을 한 남자의 말을 못들은 척했지만, 얼굴은 당황으로 인해 붉게 변했다. 그리고는 허리를 숙여 바닥에 떨어진 돈을 주우며 생각했다. ‘이걸로 2천 원은 벌 테니 컵라면 세 개랑 단무지 하나는 살 수 있겠다! 더 이상 배고프지 않아도 돼.’ "도윤아… 가지마! 돈이 부족하면 우리가 빌려 줄게, 안 갚아도 괜찮아!" 기숙사 방장은 도윤이 너무 불쌍해서 동정심을 감출 수 없었다. 도윤은 고개를 흔들며 미소를 지었다. "호의는 감사하지만 괜찮아..." 대답을 한 뒤 도윤은 돌아서서 기숙사를 빠져나갔다. 모두들 불쌍하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도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사실 도윤도 다른 사람들의 심부름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도 대학생활을 즐기고 싶었다. 아무 걱정 없이 대학에서 공부만 계속 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 그러기엔 도윤은 정말 너무나도 가난했다! 비록 도윤의 기숙사 사람들은 그에게 매우 친절했지만, 도윤은 그들에게 동정 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 도윤에게 기숙사 룸메이트들 말고는 다른 대학 친구들은 없었다. "이도윤, 금발이 너 아래층에 간다고 하던데, 맞지?" 이번엔 아주 잘 차려 입은 옆 기숙사 남자가 말을 걸었다. 그의 이름은 최하준으로, 금발 남자의 기숙사 방장이었다. 그는 부자인데다가 엄청 잘생기기까지 해서 수많은 여학생들의 우상이었다. 하지만 그는 도윤을 가난하다는 이유로 항상 무시해왔다. 도윤은 하준이 왜 말을 거는지 알 수 없었다. 도윤은 간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래층에 내려가려던 참이야." 하준은 웃으며 도윤에게 뭔가를 건넸다. "내 친구가 동쪽 숲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야. 이거 좀 그 애한테 전해줘. 오천원 줄게." 하준은 바람둥이였고 그가 자주 다른 여자들에게 숲에서 만나자고 하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준에게는 이런식으로 노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러나 도윤은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다른 사람의 심부름을 하는데 익숙해져 있었다. 도윤은 그저 물건과 오천원을 받고서 아래층으로 걸어갔다. 그가 돌아서자 마자 하준이 뒤에서 웃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는 것 같았다. 도윤은 아래층으로 가 노트북을 챙기고 생수를 샀다. 그리고 하준이 준 물건을 가져다 주기로 했다. 대학교 밖에 있는 작은 숲은 커플들에게 밤의 밀회 장소로 매우 유명했다. 도윤은 하준이 말했던 장소에 도착했다. 바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보였고, 그들은 숲에 앉아 함께 이야기하며 웃고 있었다. 하지만 달빛에 비친 두 남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도윤은 충격에 휩싸였다. 그는 깜짝 놀랐다. 수아…라니! 도윤의 눈은 빨갛게 달아올랐고,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은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수아는 도윤의 헤어진 여자친구였고 그들이 헤어진 지는 이제 고작 3일밖에 안된다. 당연히 헤어지길 원했던 건 수아였다. 그들이 헤어질 때 수아는 자기에게 혼자만의 시간이 좀 필요하다고 했었다. 근데 고작 3일 밖에 지나지 않은 지금, 수아는 벌써 다른 남자와 숲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도 도윤의 존재를 알아차리고는 얼굴 표정이 바로 변했다. "도윤아… 네가 왜 여기 있어? 너, 너… 오해 하지마. 난 그냥 상우랑 여기서…" 수아는 갑자기 당황해하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녀는 도윤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 지 몰라서 재빨리 고개를 떨구었다. 재벌 2세인 유상우라는 이름의 남자는 도윤이 바닥에 떨어뜨린 물건을 보더니 큰 소리로 웃었다. "세상에! 하준이는 진짜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니깐. 내가 하준이에게 갖다달라고 했는데 널 심부름으로 여기에 대신 보낼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어. 이거 재미있네. 진짜 장난 아니게 웃겨!" 도윤도 재벌 2세인 상우가 하준의 친한 친구인 것을 알고 있었다. 상우의 집안은 여러 개의 레스토랑을 소유하고 있었고 그는 학교에 BMW 3시리즈를 타고 다녔다. 도윤은 상우의 말을 듣고 나서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최하준이 일부러 이런 짓을 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심지어 수아는 도윤이와 헤어지고 바로 유상우를 만났다. 여기에 최하준이 어떤 역할을 했을지 짐작이 가는 부분이었다. "수아야, 네가 날 싫어하는 건 알지만, 헤어지고 나서 바로 이런 놈 만날 필요는 없잖아. 쟤가 얼마나 많은 여자친구들을 바꾸었는지 아니?" 도윤이 크게 소리쳤다. 도윤은 수아를 아주 많이 사랑했다. 일편단심으로 오직 그녀를 사랑했다. 수아는 도윤의 말을 듣고 짜증을 냈다. "이도윤, 니가 뭔데? 니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 난 이미 너랑 헤어졌고 내가 누굴 만나든 너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그리고…" 수아는 이 순간이 너무 화가 났다. 그녀는 도윤이 떨어트린 그 물건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너 일부러 나 열 받게 하려고 여기 온 거야? 당장 꺼져!" 짝! 말을 마친 수아는 앞으로 오더니 도윤의 뺨을 세게 때렸다. 상우는 이 순간 완전 진심으로 웃었다. "하하하, 수아야 왜 도윤이를 쫓아내려고 그래? 그냥 여기서 우릴 보고 있게 놔두지!" 수아가 얼굴을 붉혔다. "유상우, 나 지금 쟤 보자마자 기분 상했어. 다음에…" 그리고는 수아가 상우의 손을 떼 내었다. 도윤은 어떻게 숲에서 나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 순간 머리 속이 완전 하얗게 텅 빈 상태였다. 모든 것이 돈 때문이었다. 도윤이 이 꼴이 된 것은 그가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하하" 기숙사로 돌아온 도윤을 복도에 있는 과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맞이했다. 하준은 큰 소리로 웃으며 배를 움켜 잡고 있었다. 그가 분명 이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한 것이다. "하하하. 이도윤, 좀 전에 물건 배달하면서 뭐라도 본거야?" 금발이 웃음 띤 얼굴로 물었다. "시발! 수아는 진짜 완벽한 몸매의 소유자인데.ㅋㅋㅋㅋ" 하준은 미친듯이 웃고 있었다. 그 순간 도윤은 주먹을 꽉 쥐었고 두 눈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는 진짜 최하준을 죽이고 싶었다. 아니, 최하준과 함께 죽고 싶었다. "왜? 나한테 이래?! 왜 이러는건데?" 도윤은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 하준은 웃으며 대답했다. "야, 여기 좀 봐봐, 우리 도윤이 화났다. ㅋㅋㅋ. 아이구 무서워라." "잘 들어, 가난뱅이. 우리과에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바로 너야! 수아같이 아름다운 여자가 너 같은 인간이랑 사귀는 건 정말이지 낭비야! 최소 몇 일이라도 마이 브라더가 수아랑 놀고 즐기는 게 더 낫지 않겠어?" "그나저나 이도윤, 너 그거 아냐? 너는 수아랑 사귀려고 일 년을 넘게 쫓아다녔지만 상우는 문자 보내고 30분도 안되서 수아 꼬셨어." 모두가 이순간 비웃기만 할 뿐 아무도 도윤의 자존심 따위 신경 쓰지 않았다. "다 너때문이야 이 자식아!" 도윤은 곧장 하준을 향해 돌진했다. 그 결과 도윤은 하준의 친구들에게 호되게 얻어 맞았다. 결국 도윤은 기숙사 친구들의 도움으로 부축임을 받아 기숙사에 돌아가게 되었다. 도윤은 침대에 누워 이불로 얼굴을 덮은 채 계속 흐느꼈다. ‘왜? 왜 쟤들은 날 괴롭히고 내 자존심을 짓밟는건데? 왜?’ ‘내가 가난하다고 감정도 없는 줄 아나? 그들 눈에 난 사람도 아닌거야?’ 도윤은 계속 마음 속으로 몸부림을 쳤고 절망에 빠져 머리를 쥐어뜯었다. 수아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어제만 같은데 이제 그녀는 곁에 없다. 얼마나 오래 이불 속에서 웅크리고 있었는지도 몰랐던 도윤은 울다가 끝내 잠이 들었다. 아마도 어둡고 고요한 밤이었기 때문이리라. 도윤은 그날 밤 아주 평화롭게 잘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났을 때, 기숙사에는 아무도 없었다. 기숙사 방장이 어제 밤 일 때문에 도윤이 강의실에 가는 것 보다는 기숙사에 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서 그를 깨우지 않았다는 걸 도윤은 알았다. 도윤이 그의 휴대 전화를 집어 들었을때, 엄청나게 많은 메시지와 부재중 전화가 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놀랍게도 전부 국제전화였다. 도윤은 또한 누군가가 그의 계좌로 돈을 송금했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서울은행] 고객님의 107로 끝나는 계좌의 잔액은 KRW 2,000,000,000 입니다." 도윤은 숫자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20억? 누가 20억이나 되는 돈을 그에게 송금했을까? 도윤은 송금에 대해 확인하려고 은행에 서둘러 전화를 했다. 은행에서 답을 들은 후 훨씬 더 혼란스러워졌다. 이 때 그의 휴대전화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이번엔 또 다른 국제 전화 번호였고 도윤은 얼른 그 전화를 받았다. "도윤아, 내가 송금한 돈은 받았니? 나 네 누나야!" 전화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나!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누나는 부모님이랑 돈 벌려고 외국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거 아니였어? " 도윤은 완전히 충격에 빠졌다. "아버지는 2년 더 너에게 진실을 숨기시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둘 수가 없구나. 왜냐하면 네가 학교에서 계속 괴롭힘 당하는 걸 알았거든. 그래서 내가 미리 사실을 얘기해 주는 거야. 우리 가족은 사실 엄청난 부자야. 우리 집안은 전 세계에 대규모 사업체들을 가지고 있어. 너 아프리카에 있는 금광, 광물, 석유의 80퍼센트가 사실 우리 가족 소유라는 걸 알고 있니?" "이건 서울이랑 해외에 있는 다른 사업들은 포함하지 않은 거야." 뭐! 도윤은 갑자기 숨이 막혔다. 만약 이 20억이 그의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그는 이 사실을 전혀 믿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정말로 누나가 미쳤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나도 네가 내 말을 믿기 어렵다는 걸 알아 도윤아, 하지만 천천히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해. 처음엔 나도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점점 부자의 삶을 사는데 익숙해지더라. 아무튼, 내가 택배로 너한테 뭘 보냈는데 오늘 아침에 도착할 거야. 앞으로 더 이상 돈 걱정은 할 필요 없어." "요즘 서울에선 얼마나 드는지 모르겠지만 걱정할 것 없어. 당분간은 그냥 20억으로 써. 다음달에 다시 전화할게!" 전화를 끊은 후에도 도윤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평생을 가난뱅이로 살아왔다. 그런데… 그가 정말 재벌 2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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