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미치게 만들다
차는 빠르게 달렸고 강지연은 안전벨트를 하지 않아 몸이 앞뒤로 심하게 흔들렸다. 강지연은 차라리 차가 더 빨리 달려서 육교에서 추락하기를 바랐다.
안재우가 죽는다면 강지연도 간접적으로 아빠를 위해 복수한 셈이 된다.
안재우의 차는 강지연이 다니는 학교 앞에 멈춰 섰다. 차는 멀쩡했고 두 사람 다 살아 있었다.
강지연은 몸을 돌려 문을 열려고 했다.
그러나 차 문이 잠긴 탓에 문을 열 수가 없었다.
“문 열어.”
“너 이렇게 몸 막 굴리라고 너랑 헤어진 거 아니야.”
안재우는 학교로 오는 길 내내 30분 넘게 침묵했다. 그는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것인지 입술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강지연은 도무지 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를 가지고 논 것은 안재우였고, 다 가지고 논 뒤에는 한 번도 만나주지 않고 그녀를 차버렸다. 그런데 왜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일까?
강지연은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했다.
“그래. 우린 이미 헤어졌어. 이젠 아무 사이 아닌데 왜 내 돈줄을 끊는 거야?”
안재우의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왔다.
“강지연! 너 언제부터 이렇게 변한 거야? 누가 너한테 그런데 가라고 했어?”
“나 내릴 거야.”
강지연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잠금 해제 버튼을 누르려고 했다.
강지연은 이 차에 아주 많이 앉아 봤었다.
안재우는 강지연의 손목을 잡고 힘껏 그녀를 끌어당겨서 자리에 앉힌 뒤 그녀의 위에 올라탔다.
미간을 찌푸린 안재우는 살벌한 기운을 내뿜으며 강지연의 얼굴에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강지연을 옥죄는 두려움은 안재우가 아닌 보이지 않는 어두운 힘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그 힘은 바로 서효진에게서 기원한 것이었다.
강지연은 두려움 때문에 더 힘껏 저항했고 강지연이 저항할수록 안재우의 눈빛 속 분노는 점점 더 강해졌다.
“왜 피해? 오늘 만난 남자한테는 막 대주면서 말이야. 강지연, 너 언제부터 이렇게 천박해진 거야?”
강지연은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채 꼼짝하지 못했다. 그녀의 눈빛은 죽은 자의 것과 매우 닮아 있었다.
안재우는 강지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살짝 누그러진 말투로 말했다.
“대체 왜 이래? 나한테 복수하겠다고 그딴 짓을 하는 거야?”
강지연이 느리게 시선을 들며 말했다.
“왜 내가 복수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안재우는 생기 하나 느껴지지 않는 창백한 강지연의 얼굴을 보고 안타까워했다.
“너 상처받은 거 알아. 서효진이 너 찾아갔었지? 그때 내가 널 만나주지 않은 이유는 널 지키기 위해서였어. 그리고 이번에 돌아온 건 서효진과 파혼하기 위해서야. 서효진이 너 괴롭힌 거지? 내가 대신 화풀이해 줄게. 일 다 해결되면 우리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거야. 그러니까 당분간은 얌전히 날 기다려줘.”
안재우의 말투가 점점 더 부드러워졌다. 마치 예전처럼 모든 걸 다 해결할 수 있다는 듯이, 모두 되돌릴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강지연은 잠시 침묵하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화풀이를 해주겠다고? 어떻게 해줄 건데? 그 여자는 사람들 다 있는 데서 내 뺨을 때렸어. 그것도 똑같이 갚아줄 거야?”
안재우는 흠칫하더니 이내 눈빛이 복잡해졌다.
“널 때렸다고?”
강지연은 서효진이 어느 집안 사람인지를 뒤늦게 알게 되었다.
북성에서 서효진은 왕과 다름없었다. 서효진이 사람을 죽이든, 불을 지르든 아무도 그녀를 건드리지 못했다.
안재우의 눈빛이 달라진 순간, 강지연은 안재우가 그럴 능력도 없을뿐더러 그녀 때문에 서씨 가문과 대항할 생각도 없다는 걸 알았다.
강지연은 우습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렸다.
“우리 이미 끝난 사이야. 난 재우 씨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지금 당장 내려줘. 그렇지 않으면 재우 씨 약혼녀한테 연락해서 차 문 열어달라고 할 거야.”
안재우는 강지연의 손목을 잡고 힘겹게 말했다.
“지연아, 나한테 화가 난 거 알아. 화풀이하고 싶으면 날 때려. 내 얼굴 부을 때까지 때려도 돼. 나는 그런 집안에서 태어나서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아... 날 믿어 줘. 네가 당한 거 내가 언젠가는 꼭 갚아줄게. 그러니까 내 말대로 해 줘. 나한테 조금만 시간을 줘. 응?”
강지연은 안재우가 개소리를 지껄인다고 생각하며 속으로 냉소를 흘렸다.
“난 못 기다려. 그리고 재우 씨한테 기대를 걸고 싶지도 않아.”
강지연은 서씨 가문과 안씨 가문을 조사해 봤었다. 두 집안은 십여 년 전부터 서로 의지하고 있었고 이미 뿌리까지 엉켜버렸다. 그런데 안재우가 그녀를 위해 서씨 가문과 맞서 싸울 수 있을까?
만약 안재우가 정말로 서씨 가문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면 서효진이 그녀를 찾아갔을 때 해외로 도피해서 석 달 동안 돌아오지 않았을 리도, 그 사이 전화 한 통 감히 받지 못했을 리도 없었다.
“그러면 누구한테 기대를 걸 건데? 진우현?”
안재우는 오늘 밤 룸 안에서 보았던 광경을 떠올리고는 눈이 벌게졌다.
“겨우 서효진한테 복수하겠다고 그 남자가 네 몸에 손대는 걸 허락하겠다고? 강지연, 차라리 날 죽여. 난 해외에 있는 동안 네가 미치도록 그리웠어. 나 가족들이랑 대판 싸워서 돌아온 거야. 그런데 돌아오자마자 네가 다른 남자 품에 가만히 안겨서 그 남자 손에 놀아나는 걸 봐야 했어. 날 미치게 하려고 작정한 거야? 너 평생 나한테만 네 몸을 허락하겠다고 했었잖아!”
그때의 강지연은 너무 순진했다. 안재우의 달콤한 말에 넘어가 마치 사이비 신도처럼 자신의 목숨까지 그에게 내어주려고 했었다. 사실 안재우는 그냥 잠깐 즐기고 싶었을 뿐인데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안재우가 그녀와 결혼하려고 할 리가 없었다.
안재우가 서효진의 성질머리를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나 안재우는 강지연을 버리고 혼자 도망쳤고 결국 강지연은 서효진에게 보복을 당했다.
안재우는 강지연의 눈빛이 달라지는 걸 보더니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꿰뚫은 사람처럼, 혹시나 그녀가 또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할까 봐 황급히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안재우는 숨이 막힐 정도로 성급하고 거칠게 키스했고 강지연은 그 때문에 숨을 쉬기가 힘들어졌다. 게다가 공간이 너무 비좁아서 반항할 수조차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