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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한참을 울던 송찬미는 엄마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것을 느꼈다. “엄마, 왜 그래요?” 송찬미는 황급히 엄마의 품에서 몸을 일으켰다. 송은정의 얼굴은 아까보다 더 새하얗게 질려 있었는데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통을 필사적으로 참아내는 듯한 얼굴이었다. 송찬미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녀는 황급히 눈물을 닦고 말했다. “엄마, 의사 선생님 불러올게요.” 송찬미는 급히 의사를 부르러 달려갔다. 곧 의사가 와서 상황을 살폈다. 송은정은 감정이 격해지고 울화가 쌓여 병세가 악화된 것이었다. 의사는 앞으로 감정이 격해지는 상황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송은정의 병세는 급격히 악화되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자 의사는 강한 진통제를 놓고 전문 장비 치료와 추가 검사를 진행했다. 순식간에 또다시 수백만이 증발했다. 송찬미는 가진 돈을 탈탈 털었지만 턱없이 부족했고 결국 송은정이 자신의 예금을 깨서야 겨우 병원비를 결제할 수 있었다. 그 돈을 내고 나니 송은정의 통장에는 이제 푼돈만이 남아있었다. 송찬미는 의사에게 향후 치료비 계획을 물었다. 어림잡아 계산해봐도, 엄마의 남은 돈으로는 길어야 한 달을 버틸 수 있을 뿐이었다. 한 달 후, 돈이 없다면 엄마는 치료를 포기해야만 했다. 이마저도 이곳 강릉병원에서의 얘기일 뿐, 만약 더 큰 병원이 있는 부산으로 간다면 그 돈은 한 달은커녕 보름도 버티지 못할 액수였다. 지금 당장 돈을 구해야만 한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모두 지나고 돈이 바닥났을 때 방법을 찾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끝장일 터였다. 의사와 면담을 마치고 병실로 향하는 내내, 송찬미는 깊은 무력감에 빠져 내내 다른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때 휴대폰이 진동했다. 꺼내 보니 심영준이었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고 눈에는 혐오감이 스쳤다. 심영준이 양다리를 걸쳤기 때문에 허선영이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 여자만 아니었다면 엄마의 상태가 이렇게까지 나빠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은 바로 심영준이었다. 송찬미가 전화를 받았다. 심영준은 아무것도 모른 채, 여전히 꿀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기야, 어디야?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송찬미의 입가에 경멸이 가득한 냉소가 어렸다. 그는 아직 허선영이 무슨 짓을 했는지 그는 아직 모르는 눈치였다. “병원이야.” 송찬미는 사실대로 말했다. “엄마가 아프셔서 보러 왔어.” 심영준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잔뜩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 엄마가 정말 편찮으시다고?” 송찬미가 덤덤하게 대답했다. “응, 그러니까 병문안이라도 올래?” 심영준이 즉시 대답했다. “그래, 어디 병원이야? 바로 갈게.” 송찬미가 말했다. “강릉대병원.” “알았어.” 심영준은 전화를 끊었다. ... 한편, 전화를 끊은 심영준은 곧장 허름한 옷으로 갈아입고 치밀하게도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차를 몰고 가면 훨씬 빠르지만 송찬미에게 가난한 척하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굳이 버스를 선택한 것이다. 그가 막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인은 허선영이었다. 심영준이 전화를 받았다. “어, 선영아.” 전화기 너머로 허선영의 애교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영준아, 나 그날이라 배가 너무 아파. 와서 나 좀 돌봐주면 안 돼?” 심영준은 잠시 머뭇거렸다. “따뜻한 물은 마셨어? 집에 핫팩은 있고?” 허선영이 잔뜩 불쌍한 목소리로 말했다. “따뜻한 물은 소용없고 핫팩은 다 썼어. 네가 사다주면 안 될까? 나 아파서 걷기도 힘들어. 지금 침대에 누워 있는데 진짜 죽을 것 같단 말이야.” 심영준은 잠시 망설이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랬다. “자기야, 내가 지금 일이 좀 있는데, 두 시간만 기다려주면 안 될까? 여기 일 끝나자마자 바로 달려갈게.” “흥! 나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어?” 허선영이 뾰로통하게 쏘아붙였다. “딱 30분 줄게. 30분 안에 안 오면 우리 그대로 끝인 줄 알아!” 말을 마친 허선영은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때, 심영준이 기다리던 버스가 천천히 정류장으로 들어왔다. 사람들이 하나둘 버스에 올라탔다. 심영준은 그 자리에서 몇 초간 망설이다가 결국 버스 정류장을 등지고 돌아섰다. ... 한 시간이 넘게 송찬미는 기다렸지만 심영준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는 문자를 보냈다. [어디야?] 심영준은 답이 없었다. 송찬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오늘 심영준을 부른 건 얼굴을 보고 확실히 매듭을 짓고 싶어서였다. 어쨌든 그들은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진지하게 연애를 했고 그 시간 동안 그녀는 진심이었다. 이제 엄마가 중병에 걸려 돈이 필요한 상황이 되자 원래 계획했던 대로 조용히 부산으로 떠날 수도 없었다. 그녀는 심영준을 만나 모든 것을 터놓고 이야기한 뒤, 돈을 빌리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나중에 반드시 갚을 생각이었다. 그녀는 그가 이 부탁을 들어주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만약 심영준이 도와준다면, 그가 자신을 속인 일은 문제 삼지 않고 깨끗하게 헤어져 허선영과 잘되도록 보내주고 앞으로는 그저 채권자와 채무자 관계로만 남아 더는 감정적으로 얽히지 않을 생각이었다. 송찬미는 병원에서 오랫동안 그를 기다렸다. 밤이 깊도록 심영준은 나타나지 않았다. 모습은커녕 전화도 받지 않았고 문자 답장도 없었다. 송찬미는 더는 전화를 걸지 않았고 엄마가 잠들 때까지 병실을 지키다 학교로 돌아왔다. 여자 기숙사 건물 앞에 막 도착했을 때, 심영준에게서 문자가 왔다. 사진 두 장이었다. 첫 번째는 그가 침대 맡에 앉아 누군가의 배를 문질러주는 사진이었다. 사진 구도로 보아 누워있는 사람이 직접 찍은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은 오늘 허선영이 입었던 옷과 똑같았다. 사진을 본 순간 송찬미는 모든 것을 깨달았다. 심영준은 허선영에게 갔던 것이다. 두 번째 사진은 심영준이 주방에서 대추차를 끓이는 사진이었다. 사진에는 냄비 안의 대추차와 심영준의 옆얼굴이 담겨 있었다. 사진이 도착하고 바로 다음 순간, ‘심영준'에게서 문자가 또 왔다. [정신 좀 차려. 영준이가 제일 신경 쓰는 사람은 나라고, 나! 네년 따위가 어딜 덤벼?] [내가 생리통으로 아프다니까 바로 달려오던데? 걔한테 난 언제나 1순위야.] 역시 허선영이 심영준의 휴대폰으로 보낸 문자였다. 송찬미는 그야말로 어이가 없었다. 2년을 사귀는 동안, 심영준은 매일같이 그녀를 끔찍이 사랑하는 척했다. 입만 열면 ‘자기야’라고 부르며 그녀의 모든 말에 귀를 기울여주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휴대폰을 보여준 적은 없었다. 그때는 그것이 사생활 때문이라 순진하게 믿었다. 그러나 이제 와 모든 것을 깨달으니 그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허선영은 그의 휴대폰을 마음대로 만지고 심지어 그의 계정으로 도발적인 문자까지 보낼 수 있지만 그녀는 흘깃 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송찬미는 그 자리에 서서 한참 동안 두 장의 사진을 내려다보았다. 바람이 불어와 나뭇잎이 스산하게 부딪혔다. 일기예보에서 오늘 밤 기온이 뚝 떨어진다고 했다. 송찬미는 목도리를 여몄다. 작년에 그녀가 직접 뜬 목도리였다. 그때 커플로 두 개를 떴다. 자신의 것은 와인색, 심영준의 것은 짙은 회색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심영준이 그 목도리를 하고 나온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사실 모든 것에는 흔적이 있었다. 어쩌면 심영준은 단 한 번도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한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송찬미는 아무 답장도 하지 않고 기숙사 건물로 발을 옮겼다. 그날 밤, 송찬미는 이미 외울 정도로 익숙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승우 오빠, 저 결정했어요. 오빠랑 결혼할게요. 약속은 꼭 지켜주셨으면 해요.” 남자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차가웠다. “그래. 내일 기사 보낼 테니 구청부터 가서 혼인 신고하자.”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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