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그녀는 예하늘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상한 미소를 띠었다.
예태섭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어색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서둘러 앞으로 나서며 소개했다.
“하늘아, 얘는 네 언니 정유리란다. 휴, 예전엔 이런저런 오해 때문에 얼굴도 못 봤는데 이제 다 지난 일이야. 너희는 친자매이니 잘 지내야 해.”
예하늘은 휘청거렸다. 차가운 조롱이 그녀의 가슴을 쥐어짜는 듯했다.
‘세상은 참으로 사람을 희롱하는 것을 좋아하는구나.’
예하늘이 여섯 살 때, 한미소는 예태섭이 이미 바람을 피우고 밖에 여덟 살짜리 딸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얼마 후 애인이 찾아와 행패를 부렸고, 모욕감을 참지 못한 한미소는 그날 밤 그녀의 앞에서 투신자살했다.
그날 예하늘은 행복한 가정을 잃었고, 자신을 사랑했던 어머니를 잃었다. 그 후로 그녀는 아버지와 의절했다. 수년간 아버지는 계속해서 참회하며 그 모녀와 관계를 끊었다고 주장했고 그녀는 마지못해 용서했다.
결국,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그녀는 또다시 가까운 사람에게 속았다. 더욱 웃긴 것은 그녀가 평생 가장 증오했던 사생아가 바로 기도훈이 마음에 품고 있던 여자였다는 사실이었다.
정유리가 미소를 지으며 예하늘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까 들은 건데 네가 한빛시 재벌 기도훈과 결혼했다던데? 정말 너무 부러워.”
이 노골적인 도발 앞에, 예하늘은 격렬하게 치솟는 피를 억누르며 쌀쌀하게 말했다.
“부럽다고? 그럼 이혼해 줄게. 언니가 좀 더 노력해서 그 사람에게 아들딸 낳아주면 한빛시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언니를 부러워하겠어.”
이 말은 정유리의 아픈 곳을 정확히 찔렀다. 그녀의 얼굴에서 미소가 순식간에 굳어지며 극도로 보기 흉해졌다. 예태섭도 즉시 얼굴색이 변했다.
“하늘아,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예하늘의 심장은 찢어지는 듯했지만 마지막 희미한 희망을 품고 예태섭을 바라보았다.
“딱 한 가지만 물을게요. 기도훈과 정유리의 일을 아빠는 이미 알고 있었죠?”
예태섭의 눈이 흔들렸다. 그는 잠시 말문이 막히더니 요점을 피해 말했다.
“부부 사이의 일을 내가 어떻게 알겠어?”
“그럼 정유리가 뻔뻔하게 제 결혼에 끼어든 거네요. 자기 엄마처럼 비천한 근성을 가진 여자예요!”
예하늘의 모든 억울함과 분노가 순식간에 폭발했다. 손을 들어 정유리의 뺨을 세게 내리쳤다.
짝!
맑은소리가 울려 퍼진 후 더 큰 소리가 울렸다. 예태섭의 이 손바닥은 거칠고 사나웠다. 예하늘은 귀가 먹먹하고 눈앞이 캄캄해지는 걸 느끼며 비틀거리다가 테이블 모서리에 세게 부딪혔다. 피가 순식간에 얼굴을 뒤덮었다.
예태섭은 그녀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예하늘, 내가 지난 2년간 너무 너를 버릇없이 키운 거야? 그래서 네가 이렇게 날뛰는 거냐고! 집에 오자마자 문제를 일으키다니. 네가 기씨 가문에 시집갈 수 있었던 건 내가 어르신께 비굴하게 부탁해서 얻어낸 거야. 그렇지 않으면 누가 너를 데려가겠다고 하겠어? 네가 정말 고귀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예하늘은 얼얼한 얼굴을 감싼 채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 드디어 속마음을 털어놓는구나. 지난 몇 년간 자상한 아버지인 척하느라 정말 힘들었겠어.’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얼굴에 피와 눈물이 섞여 흘렀다.
“그럼 제가 기도훈 씨와 이혼할게요. 누구에게도 폐 끼치지 않게 말이에요.”
“이혼?”
예태섭이 코웃음을 쳤다.
“기씨 가문에 아들을 낳기 전까지는 어디도 갈 수 없어.”
예하늘의 머릿속에 굉음이 울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예태섭과 옆에서 승리감에 찬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정유리를 번갈아 보았다.
모든 것이 징조가 있었는데 그녀는 어리석게도 여기에 갇혀 있었다. 아버지는 좋은 일이 있을 때 그녀를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빛시 최고의 남자와 결혼하게 해주겠다며 친절하게 나섰다.
그녀가 얼마나 어리석었으면 모두에게 이용당하고 있었겠는가. 기도훈은 그녀의 자궁을 빌려 정유리와 미래의 자유를 얻고, 아버지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생녀의 길을 닦아주기 위해 사랑하지 않는 남자에게 예하늘을 밀어 넣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는 가까운 사람과 남편에게 공동으로 착취당하는 도구이자 철저한 조롱거리였다.
정유리가 가식적으로 입을 열었다.
“아빠, 하늘이 잠시 혼란스러워서 말을 심하게 한 거예요. 그러니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만약 하늘이 몸에 탈이 나기라도 하면...”
그녀가 눈짓을 보내자 예태섭은 즉시 이해했다. 이 다정한 부녀를 보며 예하늘의 마음은 더욱 쓸쓸해졌다.
‘나를 자신의 발판으로 삼고 싶다고? 좋아.’
예하늘은 이를 악물고 일어서더니 차갑게 웃으며 그들을 향해 손뼉을 쳤다.
“그럼 제가 기도할게요... 두 분의 바람이 헛되이 되고 천벌 받기를.”
예태섭이 다시 화를 내기 전에 예하늘은 돌아서서 이 역겨운 곳을 단호하게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