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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친구가 여권 분실해서 어떻게 재발급받는지 물어본 거야.” 백승우는 빠르게 다가와 그녀를 꽉 안았다. “나 없이 외국에 가는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 안유정은 고개를 기울이며 다시 구역질했다. 그의 몸에서 비릿한 밤꽃 내가 진동했다. 여자의 향수 냄새도 섞여 있었다. 백승우는 다정하게 등을 두드려주었다. “저것들이 또 뭘 먹였어? 네가 속이 안 좋으니까 잘 챙겨주라고 분명 말했는데... 기다려, 내가 가서 다 해고할 거야.” 안유정은 온 힘을 다해 그를 밀어냈다. “해고하든 말든 네 마음인데 날 위해서라는 핑계는 대지 마.” 백승우는 갑작스러운 그녀의 분노에 다소 당황했다. “유정아, 화났어? 내가 오늘 일하느라 바빠서 너랑 같이 시간을 보내지 못해서 그래? 그럼 이렇게 하자. 내일은 모든 일 미루고 너랑만 있을게. 어때?” 안유정은 기가 막혀 웃음이 났다. “나랑만 있는다고?” “응, 너랑만.” 안유정은 심호흡하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 말 지켰으면 좋겠네.” 그날 밤 어쩐 일인지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고 안유정은 집에 돌아오고부터 토를 하고 있었다. 백승우가 가까이 다가가려 했지만 안유정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가까이 오지 마. 네 냄새 맡으면 더 토할 것 같아.” 백승우는 소매 냄새를 맡으며 말했다. “내 향수 냄새가 마음에 안 드나 보네. 다른 걸로 바꿀게.” “백승우, 향수 때문이 아니란 건 네가 제일 잘 알잖아.” “알았어, 화내지 마. 그럼 이제부터 향수 안 뿌릴게, 그럼 되지?” 안유정은 찬물로 세수를 하고 고개를 들어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백승우는 욕실 밖에서 뜨거운 물을 들고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해되지 않는다. 어떻게 실컷 정사를 나누고 난 뒤의 비릿한 냄새와 임진희의 향수 냄새로 범벅이 된 지금도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하는 척 연기할 수 있는지. 왜 그녀를 신경 쓰는 것 같으면서도 망설임 없이 둘 사이 감정을 배신할 수 있는지. 정말 그 임원의 말대로 남자가 밖에서 여자들과 놀아도 집에 있는 아내만 모르면 되는 걸까. 그가 틀렸다. 그녀는 그렇게 쉽게 속아 넘어갈 단순한 존재도, 자신의 원칙마저 없는 사람도 아니었다. 온 마음을 다한 사랑이 아니라면 그녀도 원치 않는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백승우는 그녀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여러 가지 검사를 한 후 의사는 결론을 내렸다. “정서적 위장염입니다.” 백승우가 물었다. “정서적 위장염이 뭔데요?” “환자가 최근 정서적 자극을 많이 받았고 그것이 환자에게 큰 충격으로 작용해 위장 기능에 이상이 생겨서 구토하게 되는 겁니다.” 백승우가 안유정에게 물었다. “유정아, 혹시 최근에 기분 나쁜 일 있었어? 말해봐, 내가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몰라.” 안유정은 그와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려고 얼굴을 피했다. “넌 해결 못 해.” “일단 말해봐. 이 세상에 내가 해결 못 하는 일은 거의 없으니까.” ‘하긴, 이 일은 너만 해결할 수 있지.’ 안유정은 순간 임진희와 그녀가 동시에 물에 빠지면 누구를 먼저 구할 거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굳이 자신의 운명을 다른 사람 손에 맡기는 게 어리석어 보였다. 그녀는 수영할 수 있고 알아서 살아남을 수 있으니 백승우는 더 이상 필요 없었다.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노웨이 예술학교에 지원한 그녀는 백승우와 결혼하면서 그림에 대한 꿈을 포기했지만 이제부터는 자신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다. “유정아, 오후에 같이 영화 보러 갈까? 최근 개봉한 코미디 영화 보면 기분도 좋아질 거야.” “오후에? 출근 안 해?” “오늘 하루 종일 너랑 있겠다고 했잖아. 난 뱉은 말은 지켜. 한번 한 약속은 절대 어기지 않아.” 이윽고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전화를 끊으려다 화면의 발신자 표시를 잠시 쳐다본 뒤 망설였다. 안유정은 그의 표정이 짜증에서 난감함으로 바뀌는 걸 지켜보다가 웃었다. “받아. 회사 일 중요하잖아.” “금방 끝나. 5분이면 돼.” “그래.” 백승우가 휴대폰을 들고 나가려는 순간 안유정이 그를 불렀다. “그냥 여기서 받아. 난 회사 일에 대해서 들어도 모르니까 유출될까 걱정할 필요 없어.” 백승우는 다소 어색한 듯 걸음을 멈췄다. 2초 정도 망설이던 그는 전화를 받고 화가 잔뜩 난 표정을 지었다. “오늘 나한테 전화하지 말라고 했잖아. 대체 무슨 일이야?” 저쪽에서 무슨 말이 오갔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안유정은 어렴풋이 여자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백승우는 그녀 앞에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래, 알았어. 기다려.” 전화를 끊으며 백승우는 안유정에게 다소 미안한 듯 말했다. “유정아, 회사에 서명해야 할 중요한 서류가 있는데 팀장이 병원으로 가져왔대. 바로 아래에 있으니까 사인만 하고 금방 올게. 30분 안에 와.” 안유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백승우는 거의 뛰다시피 재빨리 진료실을 나갔다. 의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모님, 대표님께서 사모님을 정말 사랑하시네요. 일까지 다 미뤄두고.” “그런가요.” 안유정이 입꼬리를 올렸다. “실례지만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그러세요.” 진료실을 나온 안유정은 때마침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 못하고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백승우를 발견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긴 했어도 거긴... 산부인과였다. 지잉. 그녀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안유정 씨, 정말 미안해요. 오빠가 오늘 옆에 못 있어 줄 것 같네요. 제 전화 한 통에 바로 달려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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