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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2화

나는 눈을 커다랗게 뜬 채로 그를 바라보다가 한참을 뜸 들인 끝에 애써 침착한 척 말했다. “언제긴 언제야. 5년 전이잖아.” “어느 날이냐고.” 박윤성이 집요하게 물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나는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기념일처럼 날짜까지 기억해야 하는 거야?” 그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기억 못 해? 너 매년 처음 기념일 챙겼잖아. 그런 네가 지금 와서 기억이 안 난다고?”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게 진짜라고?’ 예전의 내가 얼마나 연애에 목매던 사람이었기에 첫날을 기념일까지 만들어서 매년 챙겼을까? 그 순간 나랑 박윤성 사이 5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감정이 어땠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상처받은 건 나일 텐데, 박윤성의 말만 들으면 내가 철없는 애처럼 보였다.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겠네.” 나는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더 이상 대꾸하기도 싫었다. 그런데 그다음 질문은 도가 지나쳤다. “그날 밤, 어디서였는지 기억나? 어떤 자세였는지? 내가 널 몇 번 안았는지?”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그를 노려봤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데다, 분노까지 치밀었다. “입 다물어!” 어떻게 입을 열자마자 그렇게 뻔뻔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을 수 있는 건지, 진짜 이해가 안 갔다. 내가 대답하지 않자 박윤성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 “답 못 하겠어? 아니면 네가 기억을 잃었다는 걸 인정하는 거야?” 물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또 무슨 민망한 말이 튀어나올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나는 급히 그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그만해, 됐어! 더 이상 말하지 마!” 그러나 박윤성은 내 손을 거칠게 떼어내고 매서운 눈빛으로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인정한 거야?” “...뭘?” “네가 기억을 잃었다는 거.” 머리가 지끈거렸다. 나는 숨을 들이쉬며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이를 악물고 말했다. “맞아. 나 기억 잃었어. 언제부터인 줄 알아? 자살 시도 후에 눈 떴을 때부터야. 정신을 차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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