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여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런 망할!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라고 말해줬으면 오죽 좋아.’ 새엄마가 될 생각에 고민했던 것을 생각하니 울고 싶었다. 어쨌거나 고양이는 귀여웠다. 털도 반질반질하고 토실토실했다. 다가가서 한 번 만져보려고 했더니 고양이는 홀랑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여름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그 안방. 답답함에 한숨을 내쉬고는 집을 둘러보았다. 방이 세 개였다. 안방, 작은방, 서재. 북유럽풍에 인테리어는 대부분이 무채색이었다. 깔끔하니 보기는 좋은데 좀 썰렁했다. ‘선우 오빠네 외삼촌이 이런 집에 산단 말이야? 유망한 사업가라고 하지 않았던가?’ 번듯한 별장이 아닌 건 그렇다 치고 호화로운 느낌이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서재에는 <법학>, <법학협회지>, 같은 책뿐이었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선우 오빠네 외삼촌이 아닌 거 아냐? 아냐,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윤서가 어리바리하기는 해도 이런 큰일을 두고⋯. 착, 각, 한, 건, 아, 니, 겠, 지! 생각할수록 당황스러웠다. 여름은 결국 윤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남자가 선우 오빠네 외삼촌인 거 확실하지?” “뭐래, 우리 오빠가 직접 말해줬다니까. 같이 술도 먹고 밥도 먹었다던데.” 여름이 가슴을 탁탁 쳤다. “결혼 잘못했을까 봐 그래.” “맙소사, 진짜로 신고했어?” 윤서가 비명을 질렀다. “그 사람이 진짜로 왔디?” ‘으응’하는 대답을 듣자 윤서는 울먹거렸다. “우리 서로 수호천사 해주기로 했잖아. 날 버리고 가면 난 어떡하라고.” 여름은 속마음을 다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어쨌든 집들이는 한 번 할 거지?” “그게, 사실은 아직 나한테 다 넘어온 게 아니라서⋯.” 여름은 결국 자초지종을 말했다. “네 연애 팔자는 어쩜 그렇게도 기구하냐.” 윤서가 위로했다. “그래도, 괜찮아. 너라면 반드시 그 남자를 사로잡을 수 있을 거야.” “그래, 나도 날 믿어!” 통화를 끝내고 여름은 근처의 마트에 갔다. 아무래도 집이 너무 썰렁해서 조치를 취해야 했다. ******* 오후 4시. 로율 법률사무소. 최하준이 파일을 열어보고 있었다. 이지훈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축하한다. 오늘 밤에 제수씨랑 밥 한번 먹어야지.” “왜 결혼했는지는 네가 제일 잘 알지 않나? 고개도 들지 않고 냉담한 말투로 대답하더니 하준은 계속 파일을 읽어 내려갔다. “역시나 냉정하시네. 그래도 강여름 미인이라던데, 정말 마음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아?” 이지훈은 신이 나서 회전의자에 앉아 호기심 어린 시선을 친구에게 보내고 있었다. 어젯밤 그 여인을 떠올리며 파일을 넘기던 최하준의 손이 멈칫했다. 상아색 피부에 야생화 같은 매력, 하지만 그 뻔뻔함이란⋯. 잠시 후 최하준이 말했다. “예쁜 여자라면 질리도록 봤다.” “하긴 그러네. 본가에서 혼사를 들먹이지만 않았어도, 자네가 동성의 별 볼 일 없는 사업가의 딸하고 결혼하진 않았을 텐데.” 이지훈이 개탄했다. “그래, 불패의 신화를 쓰신 분께서 다시 강호에 나와보니 어때? 동성 같은 소도시도 살만해?” “속세의 고통을 체험하고 있다.” 이지훈이 ‘쯧쯧’ 혀를 찼다. “불공평하단 말이야. 똑같이 졸업했는데 어째서 너만 업계 선두가 되어 있냐고?” “뇌세포의 구조적 문제지.” 최하준이 냉랭하게 이지훈을 쳐다보았다. 모욕을 당한 듯하자 이지훈은 좀 화가 나서 말했다. “됐다, 그만 하지. 우리 회사 변호사 몇 명하고 같이 밥이나 먹자. 체면 좀 세워 줘.” 최하준이 ‘응응’하고 대답하는데 갑자기 스마트 폰 진동이 울렸다. 톡을 열어보니 ‘하여간 love’라는 사람에게 친구 신청이 와 있었다. “여보, 여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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