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6화
답답한 기분에 휩싸여 있는 중에 휴대 전화에 갑자기 송우재의 번호가 떴다.
송영식은 놀란 나머지 휴대 전화를 놓칠 뻔했다. 이제는 식구들에게 전화가 오면 염라대왕이 목숨을 받으러 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전화가 멈추더니 곧 계속해서 다시 울렸다.
받는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라고 부르지도 마라, 이 녀석아! 내가 한 말을 콧등 방귀로도 안 듣다니! 네 녀석을 내보내는 게 아니었어!”
송우재는 혈압이 마구 올랐다.
“풀어주자 마자 가서 청혼을 해! 당장 들어오거라!”
“할아버지, 지안이는 정말 불쌍한 애예요. 이럴 때일수록 제가 나서서 보호해 줘야 해요. 왜 그렇게 다들 눈에 색안경을 끼고 지안이를 보시는 거예요.”
송영식이 씁쓸하게 말을 이었다.
“강여름은 남이잖아요. 걔가 하는 말을 다 믿어주시면서 왜 친손자인 제가 하는 말은 안 들으세요. 지안이가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도 제가 모르게어요?”
“시끄럽다, 이 멍청한 녀석!”
송우재는 불같이 화를 냈다.
“어디 백지안이를 데려오기만 해 봐. 평생 우리 집안에서는 쫓겨날 줄 알아라!”
“죄송합니다. 하지만 지안이랑 결혼은 꼭 해야겠어요.”
송영식은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송우재는 버럭버럭 화를 내며 전화기를 집어 던져버렸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혈압이 올라 쓰러질 지경이었다.
“아버지, 좀 진정하세요.”
송윤구가 급히 와서 진정을 시키려고 했다.
“너도 저리 가라! 대체 아들 녀석을 어찌 키운 게야? 이건 뭐 날 열 받게 하려고 작정을 한 게 아니냐!”
송우재가 성질을 부렸다.
송윤구가 한숨을 쉬었다.
‘영식이가 어렸을 때는 장손이 태어났다며 금이야, 옥이야 그렇게 물고 빨고 하시더니 그건 아 잊으셨나 보네.’
“가서 근영이나 데려오너라.”
곧 송근영이 왔다.
송우재가 말했다.
“임무를 하나 주겠다. 무슨 수를 쓰던 영식이가 백지안이를 우리 집에 들여오지 못하도록 해라.”
“……”
송근영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 말을 듣고 자신인대체 기쁜 건지 슬픈 건지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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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밤에 오슬란의 신제품 발표회 파티에서 송영식은 그저 싱글벙글이었다.
사업에 있어 임윤서라는 초특급 히든 카드를 얻어 드디어 새로운 호화 에센스 시리즈를 내놓을 수 있었다. 직원들이 시험 사용해 본 결과 효과가 매우 만족스러워 앞으로 오슬란의 상품 판매량이 새로운 기록을 새울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게다가 연애 문제에 있어서도 십수 년을 짝사랑해 왔던 백지안이 마침내 청혼에 답해주었으니 이제 인생이 탄탄대로에 놓인 기분이었다.
와인잔을 든 이주혁이 곁눈질로 보더니 말했다.
“그 바보 같은 웃음 좀 집어 넣어라. 들어와서부터 지금까지 아주 그냥 입을 못 다무네.”
시아가 빙그레 웃었다.
“어쩔 수 없죠. 지금 애정 사업이 풍성한 수확을 거뒀는데. 아 참, 지안 씨도 불렀을 텐데 왜 아직까지 안 오죠?”
“왔네요.”
그러면서 송영식은 입구에 들어오는 여자를 바라보며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오늘 밤 백지안은 레드 벨벳 드레스를 입었다. 목에는 귀여운 리본이 큼직하게 달려 있었다. 머메이드 스커트에는 긴 옆트임을 주어 흰 피부와 잘 어우러져 아름다웠다.
등장하자마자 마치 온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듯해 사람들의 시선을 한 눈에 받았다.
곁에는 백윤택이 검은 수트를 입고 있어 남매가 들어오니 사람들은 부러움과 질투의 시선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