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허소원은 초조해졌다.
‘이 개 같은 박태진, 경찰에 신고하는 건 그렇다 쳐도 기자까지 불러?’
이게 알려지면 그녀에게는 큰 골칫거리가 될 터였다.
허소원은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돌덩이를 들어 자기 발을 찍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현재 상황을 보면 치료를 안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이런 식으로 유명 인사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병 치료해 주면 되는 거 아니야? 치료가 끝나고 돈 받으면 서로 연락할 일도 없을 테니까. 게다가 진료비 2000억 원이면 안 받을 이유가 없잖아! 이 돈으로 가은이를 위해 호화로운 별장을 사줄 수 있을 거야!’
이렇게 생각한 허소원은 정시훈의 휴대폰을 낚아채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제가 다시 생각해 봤는데, 치료 문제에 대해 다시 얘기해 보는 건 어떨까요?”
정시훈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맨디 선생님은 못 고치신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허소원은 계속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칠 수 있어요. 돈만 충분하면 어떤 병이든 고칠 수 있죠! 제 성격이 원래 그래요. 기분에 따라 일을 하는데 방금은 기분이 안 좋았지만 지금은 괜찮아요.”
그녀는 말을 마치고는 화가 난 표정으로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 박태진을 마주했다.
지금까지 그녀는 밖에서 신분을 숨기고 있었지만 이제 들어온 이상 들킬 염려도 없었다.
박태진은 여전히 소파에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그의 눈은 보이지 않지만 귀는 예민했다.
그는 허소원이 자신 앞까지 왔음을 감지했다.
박태진의 표정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허소원이 서 있는 쪽을 향해 고개를 들며 그녀를 압박하며 물었다.
“이제는 고칠 수 있다고요?”
허소원은 그의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그럼요! 숨만 붙어 있다면 뭐든지 고칠 수 있어요!”
박태진은 방금 그녀의 태도로 인해 이미 그녀의 의술에 대한 신뢰를 잃은 상태였다.
그는 비웃듯 말했다.
“너무 과장하지 마세요. 나중에 망신당하기 싫으면요.”
허소원은 미소를 지었다.
“그건 신경 쓰지 마시죠!”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단호하게 자리에 앉더니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병력 기록과 검사 결과 다 가져오세요. 그리고 현재 상태도 설명해 주시고요!”
박태진은 대답하지 않고 손을 들어 정시훈에게 신호를 보냈다.
정시훈은 지시 없이도 미리 준비한 자료를 가져왔다.
“맨디 선생님, 여기 있습니다.”
허소원은 병력 기록을 받아넘기며 정시훈의 설명을 들었다.
“저희 대표님은 눈이 보이지 않아요...”
‘응? 내가 잘못 들은 건가?’
허소원은 동작을 멈추고 무의식적으로 박태진을 바라보았다.
“눈이 안 보인다고요?”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이지? 어젯밤에 만났을 때는 멀쩡하지 않았나? 사람 괴롭힐 때는 멀쩡했으면서!’
박태진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그는 허소원의 의심에 관해 설명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허소원은 그를 잠시 관찰하더니 그의 시선이 확실히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손을 들어 박태진 앞에서 흔들어봤다.
박태진은 보이지 않았지만 무언가가 다가오는 걸 느꼈다.
그는 본능적인 경계심이 발동해 눈썹을 찌푸렸다.
곧이어 그는 재빨리 허소원의 손목을 잡았다.
“뭐 하는 거예요?”
박태진의 손에 닿은 것은 매끈하고 부드러운 피부였고 묘하게 익숙한 감촉이었다.
하지만 박태진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의 표정은 더욱 차가워졌다.
허소원은 그의 반응이 이렇게 클 줄 몰라 깜짝 놀랐다.
그녀는 다급하게 말했다.
“눈이 안 보인다면서 어떻게 이렇게 정확히 잡아요?”
박태진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눈은 안 보이지만 다른 감각은 멀쩡합니다.”
허소원은 지금 자신의 기분을 표현할 단어를 찾을 수 없었다.
박태진이 정말로 문제가 생겼다는 것, 그것도 눈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허소원은 박태진이 박미 그룹의 최고 경영자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눈이 안 보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큰 파장이 일어날 것이고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치료받는 게 눈이라는 건 그녀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적어도 치료하는 동안은 그녀가 누군지 모를 테니.
이렇게 생각하자 허소원은 다시 침착해졌다.
그녀는 손을 뿌리치며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정시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희 대표님은 몇 년 전 암살 시도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어떤 독에 중독되었는데 목숨은 건졌지만 몸에 후유증이 남았죠. 그 후 시력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고 가끔 일시적으로 시력을 잃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모든 가능성을 검사했지만 결과는 모두 정상이었어요. 부상도 없고 문제도 없는데 일시적으로 시력을 잃었다가 다시 회복되는 이런 증상은 매우 드물어서 병원에서도 함부로 수술을 권하지 못했습니다.”
허소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박태진의 증상에 대해 상당히 놀랐다.
눈이 안 보이는 건 보통 몇 가지 일반적인 원인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망막에 문제가 생기거나, 눈 자체에 다른 증상이 있거나, 시신경에 장애가 생기는 경우 등이었다.
하지만 박태진의 눈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시력을 잃는 경우가 발생하고 원인도 찾을 수 없었다.
솔직히 허소원은 박태진의 이 병에 대해 흥미가 생겼다.
이것은 그녀가 안상혁의 부탁을 수락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하지만 박태진의 실명에 대해 단정 짓기에는 아직 일렀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정시훈의 설명을 다 듣고는 조용히 병력 기록과 각종 검사 결과를 훑어보았다.
정시훈은 그녀가 집중하는 모습을 보고 방해하지 않으려고 옆으로 물러나 기다렸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조마조마했다.
그는 이 의사가 진짜 실력이 있다고 믿었다.
박태진은 이미 수많은 전문의를 찾아봤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지금 허소원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