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파티

짜증스레 전화를 끊은 박수혁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혹시나 해서 소은정한테도 전화를 걸었지만 들리는 건 전화기가 꺼졌다는 음성뿐, 그의 연락처를 차단이라도 했나 보다. 박수혁은 거칠게 휴대폰을 책상에 던져버리더니 이한석을 향해 말했다. “소은정, 지금 어디 있어? 무슨 수를 써서든 찾아. 15분 준다.” 대표의 무리한 요구에 이한석은 지금 당장이라도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는 고개를 더 깊이 숙이며 말했다. “대표님, 사모님 행방은 한참 전부터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성과가 없는걸 보면 A시를 떠난 게 아닐까요?” 비서의 보고에 박수혁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30분 후, 태한 그룹은 소은정을 모함했던 글을 지우고 모든 게 오해였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생활에 대해서는 단 한 글자도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과문 하나로 이미 돌아선 여론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박수혁은 소은정이 SNS에 업로드한 글들을 하나하나 읽어보았다. 두 사람의 결혼생활에 대한 글이었음에도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오늘은 남편이 일찍 집에 와서 기분이 좋아요...” “비가 오네요. 우리 남편 우산은 챙겼으려나?” “남편이 직접 데리러 와줬어요.” “남편을 위해 준비한 아침...” ...... 뭔가에 홀린 듯 모든 글을 읽은 박수혁은 그가 형식뿐이라 생각했던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소은정이 얼마나 애를 썼는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소은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 한 번도 그녀를 기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박수혁을 더 괴롭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업로드한 수많은 글에서 소은정 자신의 그림자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모든 건 남편에 대한 이야기들뿐이었다. 오늘 아침 8시, 마지막으로 업로드한 딱딱한 글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그들의 결혼생활에 마침표를 찍는 듯한 느낌에 왠지 공허해졌다. 그녀가 올린 글들을 다시 확인하려고 스크린을 올리는 순간, 페이지에 렉이 걸렸다. 새로 고침 후 다시 연결해 보니 방금 전까지 있었던 내용들이 전부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남은 건 오늘 업로드한 해명글뿐이었다. 그녀가 올린 글 아래에 끝없이 늘어나는 네티즌들의 댓글들을 보며 박수혁의 표정도 굳어버렸다. 이게 소은정의 진심인 건가? 지난 3년을 없었던 시간이라도 생각하고 싶은 거야? 비록 서류들까지 전부 정리했지만 어쩌면 다시 되돌릴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태도는 그 알량한 희망은 그의 일방적인 착각이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순간, 박수혁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느낌이었다. 휴대폰을 잡은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그리움인지, 미련인지, 오기인지 알 수 없지만 어떻게든 소은정을 다시 찾아내리라 박수혁은 마음을 다잡았다. ...... 한 달 후, A시 프리미엄 비즈니스 파티장, 각 시의 정재계 인사들이 모두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철저한 보안을 위해 보디가드들은 기자들의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바로 이때, 럭셔리한 벤츠 차량이 왈튼호텔 입구에 멈춰 섰다. 벤츠에서 내린 사람은 박수혁, 이혼 등 여러 루머를 겪었음에도 여전히 화려한 외모와 아우라를 자랑하는 그는 오늘도 역시 오늘 파티의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서민영이 서 있었다. 박수혁의 이혼 사실에 가장 기뻐한 사람은 바로 서민영이었다. 그녀에게도 드디어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 사건이 있은 뒤로 그녀가 꾀병을 부릴 때도, 정말 컨디션이 안 좋을 때도 박수혁은 더 이상 그녀를 보러 오지 않았다. 서민영의 숙부가 겨우 초대장을 얻은 덕분에 그나마 박수혁의 파트너로서 그의 옆에 설 수 있었고 외모에도 여느 때보다 훨씬 더 신경을 썼다. 특별 제작된 럭셔리 드레스, 가녀린 몸매, 오늘 그녀는 세상 어떤 남자가 봐도 흔들릴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박 대표님, 어서...” 파티 주최 측 담당자가 박수혁에게 악수를 청한 순간, 호텔 입구의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소은호 대표잖아...” 누군가 말했다. 롤스로이스에서 내린 소은호는 전설의 월가 사업가라는 명성답게 강력한 아우라를 자랑했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젠틀함과 고급스러움, 박수혁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소은호의 등장에 어떻게든 악수를 한 번 나누고 친분을 쌓고 싶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하지만 차에서 내린 소은호는 여느 때와 달리 반대쪽으로 걸어가 차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차에 앉은 다른 누군가를 향해 젠틀하게 손을 내밀었다. 사업을 시작하고 스캔들 한 번 나지 않은 소은호가 지극정성으로 에스코트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저 여자는 소은정이잖아...” 누군가 소리쳤다. 유럽 왕족들이 즐겨 입는 럭셔리 브랜드의 수제 드레스, 의상을 수놓은 보석들이 반짝이며 소은정의 고급스러운 분위기와 늘씬한 몸매를 완벽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게다가 화려한 이목구비에 어울리는 메이크업은 날카로운 그녀의 시선과 어우러져 소은정의 모든 장점을 극대화하고 있었다. 소은정의 얼굴을 확인한 박수혁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몰라보게 아름다워진 모습, 화려한 드레스, 그리고 소은호의 팔짱을 낀 채 짓는 눈부신 미소, 그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짓고 있던 소은정은 그를 향해 또각또각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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