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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전화를 끊자마자 문유정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왜? 무슨 일 있어?” 소이정은 평소처럼 담담하게 답했다. “사흘 뒤 연설하는 사람, 너로 바뀌었대.” “나? 내가 왜? 네가 수석인데? 아, 안 되겠다. 나 얼른 준비해야 돼. 나 먼저 간다!” 말을 끝내자마자 문유정은 거의 뛰다시피 나가버렸다. 심유찬과 임세윤은 붙잡지도 않고, 동시에 문유정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둘의 눈빛에는 숨기지 못한 호감이 선명했다. 당장이라도 그녀와 함께 자리를 뜨고 싶을 정도였다. 그 모습을 본 소이정은 조용히 말했다. “가고 싶으면 그냥 가.” 둘은 그제야 정신이 든 듯 고개를 돌렸다. 심유찬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무슨 소리야. 네가 여기 있는데 우리가 왜 가. 연설 하나 바뀐 거 가지고 너무 신경 쓰지 마.” 임세윤도 거들었다. “맞아. 우리 이정이가 훨씬 잘하는데 학교에서 보는 눈이 없는 거지.” 소이정은 씁쓸하게 입꼬리만 살짝 올렸을 뿐,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생에서도 심유찬과 임세윤은 이렇게 그녀를 달랬다. 하지만 돌아보면, 연설자를 바꾸라고 뒤에서 움직인 건 바로 이 둘이었다. 소이정이 무언가 말하려던 순간, 둘이 또 먼저 끼어들었다. “이정아, 너랑 갈 데 있어.” 둘에게 이끌린 채 도착한 곳은 꽃과 장식으로 꾸며진 분위기 좋은 공간이었다. 그제야 소이정은 이곳이 고백을 준비한 자리라는 걸 알았다. 심유찬이 흰 장미 한 다발을 들고 말했다. “이정아, 내 마음 알지? 이제 답 좀 듣자.” 바로 이어 임세윤도 빨간 장미를 내밀었다. “이정아, 내가 먼저 좋아했어. 이거 준비하는 데 3개월이나 걸렸고... 아무튼, 난 너랑 잘해보고 싶어.” 두 사람이 번갈아 꽃을 들이밀자 소이정은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진실을 몰랐다면 이 모습만 보고 사랑을 믿었을지도 모른다. 한때 가장 친한 소꿉친구였건만, 그들이 이런 연기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다는 건 왜 몰랐을까. 대답을 하려던 찰나, 세 사람의 휴대폰이 동시에 진동했다. 먼저 집에 갔던 문유정이 단체방에 메시지를 보냈다. [집에 전등 나갔어. 나 혼자 못 갈아... 어떡하지?] 뒤에는 귀엽게 찡그린 이모티콘이 붙어 있었다. 그 순간, 두 남자의 표정이 동시에 굳었다. 심유찬이 벌떡 일어났다. “유정이가 무서워할 수도 있으니까... 나 먼저 다녀올게!” 임세윤도 바로 따라 일어났다. “나도 같이 갈게!” 그러다 그제야 소이정을 본 듯, 머쓱하게 말했다. “이정아... 유정이 먼저 도와야 할 것 같아. 그... 네가 누구 선택할지는 내일 말해주면 안 돼?” 말을 마치자마자 둘은 소이정의 반응도 보지 않고 부리나케 사라졌다. 남겨진 소이정은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옅은 웃음을 흘렸다. 3개월 동안 준비했다는 고백을 전등 하나 못 바꾼다는 말에 바로 포기한다는 건가? 사랑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너무나 많았는데 전생의 그녀는 그걸 단 한 번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는 그들이 두고 간 꽃다발과 선물 상자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입가에는 미소가 떠올랐지만 눈동자는 조금도 웃지 않았다. 소이정은 그것들을 집어 들고 아무 미련도 없이 쓰레기통에 버렸다. ‘이번 생에서 심유찬, 임세윤. 너희 둘 중 누구도 절대 선택하지 않아.’ 개강까지 두 달이 남아 있었다. 셋과의 얽힘을 완전히 끊기 위해 소이정은 세 사람의 연락처를 전부 차단해버렸다. 그리고 혼자 한 달간 여행을 떠났다. 한 달 뒤 집에 돌아온 날, 현관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있는 두 사람을 발견했다. 바로 심유찬과 임세윤이었다. 캐리어 끄는 소리가 나자 두 사람은 고개를 들더니 소이정인 걸 확인하자마자 다급하게 달려와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너 한 달 동안 어디 갔어? 전화도 안 받고, 메시지도 답도 없고... 엄청 걱정했어.” 둘의 얼굴에는 며칠째 잠을 못 잔 듯한 피로가 가득했다. 턱에는 수염이 자라 있었고 눈은 충혈돼 있었다. 학교에서 잘나가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 모습을 보자, 소이정은 자연스럽게 13살 때를 떠올렸다. 부모는 다투다 결국 이혼했고 양육은 서로 미루기만 했다. 남겨진 건 집 한 채와 성인이 될 때까지 생활할 돈뿐이었다. 부모가 떠난 밤, 소이정은 울지도 않고 혼자 조용히 집을 나섰다. 그때도 심유찬과 임세윤은 밤새도록 그녀를 찾아 헤맸고 결국 호숫가에서 그녀를 발견했다. 둘은 어린 그녀를 꽉 안으며 말했다. “아저씨, 아주머니가 떠나도 우리가 있잖아. 우리는 널 놓지 않아. 그러니까 혼자 가지 마. 진짜 걱정돼서... 무서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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