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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소이정의 마음속에는 분노와 서러움이 뒤엉켜 끓어올랐다. 역시나 그들에게 그녀는, 문유정의 발끝만큼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 걔는 착하고 나는 악독하지. 난 그냥 성폭행당할 뻔한 것뿐인데, 그 불쌍한 눈물 앞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잖아? 걔는 내가 신고만 해도 이미지도, 앞길도 다 끝날 뻔한 애잖아! 애초에 신고 같은 걸 하지 말았어야 했나 봐. 걔 눈물엔 못 이기겠으니까. 내가 모욕당하고, 끌려갈 뻔하고, 그런 놈들한테 당할 뻔한 건... 그냥 내가 더 마땅한 일인가 보지?” 태어나서 지금까지 두 사람은 이런 표정의 소이정을 본 적이 없었다. 분노와 절망이 한꺼번에 치밀어 오른 얼굴이었다. 눈가는 금방이라도 넘칠 듯 붉게 달아올랐지만, 그녀는 끝까지 울음을 삼켜냈다. 심유찬과 임세윤은 가슴이 조여드는 듯한 압박을 느꼈다. 어젯밤 피투성이로 쓰러졌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라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소이정은 이미 등을 돌려 걸음을 떼고 있었다. 돌아서는 순간 참으려던 눈물이 결국 조용히 떨어졌다. ‘괜찮아. 곧 끝날 거야. 이 사람들과 다시는 엮일 일도 없을 거야.’ 그날 마지막 통화가 두 사람에게서 온 건지, 아니면 문유정이 그들을 붙잡으려 계속 연락했던 때문인지 알 수는 없었다. 다만 그 이후 며칠 동안, 두 사람은 매일 선물을 들고 찾아와 사과했다. 그러나 소이정은 문을 열어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녀는 의천시에 정착하기로 마음을 굳혔고, 오래된 단독주택을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매물로 내놓은 지 닷새 만에 부동산 중개사가 찾아왔다. “소이정 씨, 제 고객 한 분이 이 집을 아주 마음에 들어 하세요. 가격도 후하게 부르셨고요. 다만 돌아가신 가족 제사에 쓰려고 한다는데... 상징적으로 태워 올리고 싶다고 하십니다. 괜찮으신가요?” “괜찮아요.” 그녀는 담담히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다시 찾을 이유도 없고, 이 집이 어떻게 되든 이제 그녀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거래 조건은 금방 정리됐고, 상대는 바로 돈을 송금했다. 소각 절차까지 맡기고 돌아갔고, 소이정은 중개사를 배웅하고 돌아오던 길 마침 문유정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오는 심유찬과 임세윤과 마주쳤다. 심유찬은 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좁히며 방금 떠난 남자를 힐끗 바라봤다. “저 사람 누구야?” 임세윤이 바로 끼어들었다. “몇 번 말했어? 영업하는 사람 들이지 말라고. 우리 둘 다 없을 때 너 혼자 있으면 얼마나 위험한데?” “아휴, 너희 왜 이렇게 예민해. 이정이가 저렇게 했으면 이유가 있었겠지.” 두 사람의 시선이 계속 소이정에게 쏠린 걸 눈치챈 문유정은, 마치 이해심 많은 친구라도 되는 듯 그녀에게 다가서며 디자인 시안을 들이밀었다. “이정아, 이것 좀 봐. 내 디자인이 국제 공모전에서 상 받았어. 주최 측에서 시상식 오라고 연락 왔어.” 소이정은 그 자랑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그냥 지나치려던 순간 눈에 익숙한 무언가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녀는 종이를 낚아채듯 빼앗아 들여다보았다. 그녀가 그린 원본 그대로였다. “내 원본, 어디서 가져간 거야? 절도인 거 몰라?” 그녀가 날카롭게 따지자마자, 심유찬이 서둘러 끼어들었다. “이건 유정이가 직접 그린 거야. 어떻게 네 원본이라는 거야?” 문유정은 겁먹은 척 그의 뒤로 숨어들었다. “이정아, 무슨 소리야. 이건 내가 직접 그린 거야. 네가 나한테 불만 있는 건 알지만그렇다고 내가 받은 상을 빼앗으려 하면 안 되지...” 소이정은 더 들을 필요도 없었다. 훔친 사람이 스스로 인정할 리 없었다. 그녀는 시안을 쥐고, 천천히 임세윤을 바라봤다. 이 도안은 그녀가 그에게만 보여줬던 초안이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즉시 시선을 피하며 한 발 옆으로 물러났다. 설명하지 않아도 모든 답이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가슴 깊숙한 곳이 텅 비어가는 듯했다. 그때 문유정의 목에 걸린 부적이 눈에 들어왔다. 평안부적. 몇 년 전, 심유찬이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 그녀가 화령사가 영험하다는 말을 듣고 삼배구고 하며 어렵게 받아온 것이었다. 그 부적이 지금, 문유정의 목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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