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문서아는 박태윤의 말을 듣자 그저 웃음이 나왔다.
‘교훈? 정신 차리라고? 내가 대체 뭘 잘못했는데.’
‘박태윤이 날 구해 줬다는 말을 믿은 게 죄였을까. 박태윤을 사랑한 게 죄였을까. 박태윤과 결혼한 게 죄였나. 아니면... 박태윤의 본모습을 더 일찍 알아보지 못한 게 죄였을까.’
문서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을 감았다. 더는 박태윤을 보고 싶지 않았다.
박태윤은 문서아가 완전히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 듯한 모습을 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하지만 끝내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공적인 일이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을 나갔다.
그 뒤로 문서아는 병원에서 혼자 조용히 상처를 추슬렀다.
가끔 조가희에게서 문자도 왔다. 안부라는 탈을 쓴 메시지와 함께, 박태윤과 조가희가 바깥에서 바람을 쐬는 사진이 붙어 있었다.
햇빛, 바다, 모래사장.
박태윤은 여전히 표정 하나 없었지만, 조가희 옆에 서 있는 자세만큼은 어딘가 풀려 보였다.
조가희는 사진 아래에 이렇게 적어 보냈다.
[아주버님이 제가 많이 놀랐다고, 몰디브로 데려와 바람 좀 쐬게 해 주셨어요. 서아 언니도 상처 잘 추스르세요. 저희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문서아는 화면을 한참 바라보다가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휴대폰을 껐다. 차라리 안 보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날이 흘러가던 어느 날, 문진화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혼 절차는 전부 끝났어. 법적으로 너랑 박태윤은 이제 아무 관계도 없어. 박씨 가문에도 통보할 거야. 너는... 이제 자유야. 어디든 가고 싶은 곳으로 가. 다만 남성시로는 다시 돌아오지 마.”
‘자유라...’
문서아는 그 두 글자를 듣는 순간, 심장이 아주 작게 부딪히는 느낌이 들었다.
문서아는 전화를 끊고 창가로 걸어갔다. 오늘은 본가에 무슨 행사가 있는지, 집안 사람들이 전부 나가 있었다.
문서아는 거대한 감옥처럼 서 있는 화려한 저택을 내려다봤다. 그 순간, 눈빛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문서아는 휴대폰을 들어 어떤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준비해 둔 걸 바로 진행해 주세요. 열 톤으로요.”
모든 걸 정리한 뒤, 문서아는 가장 단출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짐은 하나도 챙기지 않았다. 여권만 손에 쥔 채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 대기실에서 문서아는 창밖으로 뜨고 내리는 비행기를 바라보다가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에는 박씨 가문 본가의 CCTV가 떠 있었다.
문서아는 그 안에 묶여 살았던 3년을 떠올렸다. 숨 막히고, 짓눌리고, 아팠던 기억뿐인 집이었다.
문서아의 입꼬리가 아주 얇게 올라갔고, 차갑게 비웃듯 웃었다.
문서아는 화면 위의 버튼을 눌렀다.
그 순간, 도시 반대편 박씨 가문 본가 쪽에서 둔중한 굉음이 터졌다. 이어 불빛과 검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아 올랐고, 밤하늘의 절반이 붉게 물들었다.
폭발음은 공항까지 희미하게 번져 왔다.
대기실이 순식간에 술렁였다. 사람들은 놀란 얼굴로 불빛이 솟은 방향을 바라봤다.
문서아는 휴대폰 화면을 봤다. CCTV는 눈꽃처럼 지직거리며 끊겨 버렸다. 문서아의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없었다.
문서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쓰레기통 앞으로 갔다. 조작용 휴대폰을 망설임 없이 버렸다.
그리고 문서아는 탑승권과 여권을 움켜쥐고 가장 빠른 비행기에 올랐다. 뒤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비행기는 구름 위로 치솟았고 발아래 남성시가 점점 작아졌다.
문서아는 창가에 기대어 하얀 구름과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이제부터는 하늘도 바다도 끝이 없다.
문서아는 오직 문서아로 살 것이다.
누구도 묶지 못하는 가장 자유로운 새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