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화

이번에는 옷을 가져올 차례였다. 나는 잠옷과 갈아입을 옷 네댓 벌을 골라 담은 뒤, 질감이 아주 좋은 고급 맞춤복들을 싹 쓸기 시작했다. 나는 옷을 담으면서도 내 안목과 취향에 새삼 감사했다. 눈썰미 덕분에 벌써 몇 벌은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이라는 걸 알아챘다. 이런 옷은 사두면 가치가 오르고 게다가 한정판 협업 제품이나 이제는 절대 구할 수 없는 원피스도 있었다. 마지막은 가방이었다. 아래 칸은 보지도 않고 맨 위 칸에 있는 악어가죽 에르메스 가방들만 전부 쓸어 담았다. 나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이 물건들을 팔면 나는 꽤 오랫동안 체면 있는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터였다. 나는 물건 챙기기에 푹 빠져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그러다 여섯 번째로 별장에 돌아와 짐을 싸던 중, 밖에서 차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순간 몸이 굳었다. ‘연승훈이 돌아온 건가?’ 나는 조심스럽게 창가에 붙어 내다봤다. 역시 연승훈이 차에서 내렸고 그 뒤로 진슬기의 낯익고도 보기 싫은 모습이 따라 들어왔다. 나는 비웃음을 흘렸다. ‘떠난다더니... 어떻게 같이 돌아오는 걸까? 정말 하루도 못 참는구나.’ 급히 안방으로 돌아가 대충 정리를 하고 옷방으로 숨어들었다. 잠시 후, 그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고 그 소리는 안방 문 앞에서 멈췄다. 나는 몸을 웅크린 채 도주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멀리 가서 기다려. 연승훈이 왔어.] 곧 답이 왔다. [널 구해 줄 사람 불러줄까?]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회신했다. [아니야. 됐어.] 그때 문 앞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승훈아, 오늘은 기분이 별로라 보이네. 무슨 일 있어?” 진슬기가 말하자 연승훈이 대답했다. “아무 일 없어. 슬기야, 너 피곤하다며? 들어가서 쉬어. 이따 같이 밥 먹으러 가자.” 곧 이서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들어왔다. 진슬기가 방 안을 둘러보며 억누르기 힘든 기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승훈아, 요 며칠 유지안이 안 왔나 봐?” 연승훈의 목소리가 조금 낮게 가라앉았다. “응.” 진슬기는 부드럽게 말했다. “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