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화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온정민이 이미 간호사를 데리고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내 새로 생긴 상처를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나가게 안 했죠. 어젯밤에 우빈 형한테 한참 혼났어요.” “저도 연승훈을 마주칠 줄 몰랐어요. 괜히 민폐 끼쳤네요.” 내 말에 온정민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게요. 지안 씨 때문에 제가 직장 잃을 뻔했잖아요. 이제는 절대 멋대로 돌아다니면 안 돼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약속했고 사실 지금은 돌아다니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어제 사건은 아직 경찰서에 제출돼 있었고 내 몸도 회복 중이었으니까 말이다. 고씨 저택은 워낙 크고 정원도 무척 예뻤다. 그 정원 한쪽에는 담 너머로 흘러내릴 듯 피어난 장미 덩굴이 벽을 타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그 장미 벽을 바라보고 있을 때 김민지가 절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데리고 나타났다. “진슬기 씨, 여기 웬일이세요?” 내가 얼굴을 굳히자 김민지는 턱을 치켜들고 비웃는 눈길을 보냈다. “슬기 언니는 제 선배예요. 내가 고씨 가문 사람인데 자기 집으로 선배를 데려오면 안 돼요?” 나는 돌아서서 자리를 피하려 했다. 그때 진슬기가 부드럽지만 어딘가 수상한 목소리로 불렀다. “유지안 씨, 저랑 얘기 좀 해요.” “우리 사이에 무슨 할 얘기가 있다고요?” 내가 눈썹을 치켜올리자 연승훈이 옆에 없어서인지 진슬기는 더는 착한 척 연기를 하지 않았고 바로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우린 아직 제대로 얘기한 적이 없죠. 지금 지안 씨가 연승훈이랑 이혼하겠다고 했고 저는 승훈이를 원해요. 그러니 우리는 공통점이 꽤 많겠네요.” 그제야 나는 그녀가 서둘러 본심을 드러낸 이유를 알았다. “좋아요. 얘기해 봅시다.” 내가 말하자 진슬기는 만족스러운 듯 미소 지었다. “역시 똑똑한 여자네요. 간단히 말해서 지안 씨랑 연승훈이랑 이혼하면 제가 연승훈의 재산 나눌 때 조금 더 얹어주게 할 수 있어요.” “얼마나요?” 내가 비웃자 그녀는 잠시 망설이더니 손가락 두 개를 들어 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