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화
그가 집에 도착했을 때, 거실은 어두컴컴했다.
오직 한쪽에 세워진 스탠드에서만 노란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홀로 거실 끝에 있는 거대한 통유리창 앞에 서 있었다.
창 너머로는 수많은 차들이 빗속을 스쳐 지나가고 헤드라이트와 가로등 불빛이 흐릿하게 번졌다.
밖에는 보슬보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때 등 뒤에서 절제된 발걸음 소리가 다가왔다.
“이 시간까지 왜 안 자고 있어?”
귀에 익은 목소리.
그 차갑고 맑은 톤은 빗소리보다도 쓸쓸하게 들렸다.
창에 비친 그림자 속, 고우빈이 내 뒤에 서 있었다.
유리 속에서 우리 모습이 겹쳐 보였다.
마치 서로를 껴안은 연인처럼.
나는 천천히 몸을 돌려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우빈 오빠, 부탁 하나만 해도 돼?”
너무 직설적인 부탁에 고우빈은 순간 눈썹을 조금 올렸다.
곧 나는 손에 쥐고 있던 초대장을 내밀었다.
그러자 고우빈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나한테 물었다.
“이걸 네가 어떻게 받은 거야?”
나는 진슬기가 찾아왔던 일을 짧게 설명했다.
그 순간, 그의 표정에 아주 짧지만 날카롭게 냉기가 스쳤다.
아마도 연승훈이 내 행적을 뒤쫓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한 것이겠지.
그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나더러 네 남자 파트너로 가달라는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초대장을 받아 주머니에 넣으며 나를 지그시 바라봤다.
“생각 좀 해볼게. 너무 늦었으니 이제 들어가서 자.”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빠는 내가 안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
그는 바로 대답 대신 이렇게 되물었다.
“넌 가고 싶어?”
나는 잠시 망설였다.
“잘 모르겠어. 진슬기 씨 말이 틀린 건 아닌 것 같지만 가면 스스로 망신당하러 가는 거겠지. 그리고 분명 수많은 시선들이 나를 곱게 보진 않을 거고요.”
고우빈은 씩 웃었다.
그 웃음은 마치 깊은 밤 구름 사이로 조용히 걸어 나오는 달빛 같았다.
순간, 내 귀에 빗소리마저 한결 부드럽게 느껴졌다.
나는 잠시 고우빈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꽃 마음에 들어?”
침묵하던 고우빈이 문득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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