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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남편의 마음속에 항상 짝사랑하던 여자가 있었다. 어느덧 결혼한 지 3년, 조금이라도 나를 좋아할 수 있도록 다정하고 현명한 아내가 되려고 애썼다. 요리가 맛이 없다고 하면 손에 상처가 나도록 연습했고, 집안일은 뒷전이라고 해서 가사를 하나하나 배우며 익혔다. 그러다 아이를 잃게 된 날. 첫사랑의 전화를 받은 남편은 피를 흘리며 쓰러진 나를 외면한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결국 마음이 싸늘하게 식어 이혼을 요구했다. 당일, 전 남편은 모처럼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나중에 힘든 일 있으면 찾아와.” 나는 고개를 숙였다. 휴대폰에는 오빠가 보낸 송금 메시지가 떠 있었다. 그리고 문자 한 통까지. [힘든 일 있더라도 제발 나 찾아오지 마.] ... “음...” 입술에서 통증이 전해져 왔다.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었다. 누군가 그녀의 입술을 거칠게 탐하고 있었다. 서아라는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훤칠한 남자의 실루엣이 어렴풋이 보였다. 커다란 그림자는 그녀를 집어삼킬 듯했고, 마치 먹잇감을 맛보는 한 마리의 맹수를 연상케 했다. 그와 동시에 익숙한 향수 냄새가 코를 찔렀다. 몸에서 똑같은 향기를 풍기는 게 벌써 몇 번째인지 기억도 안 났다. 순간 속이 울렁거렸다. 서아라는 남자를 거칠게 밀어냈다. 차건우의 동작이 우뚝 멈췄다. 희미한 조명 아래 차가운 눈동자가 날카롭게 번뜩였다. 그는 피식 비웃었다. “이러려고 오늘 꼭 돌아오라고 한 거 아니야?” 서아라의 가슴 한쪽이 아파져 왔다. 불과 일주일 전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기쁜 소식을 직접 전하고 싶었지만 전화를 받지 않거나 통화가 연결되어도 냉정하게 끊어버렸다. 오늘은 그녀의 생일이라 차건우의 비서에게 연락해서 신신당부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남편이 집에 오게 해주세요.” 비서가 계속 말을 돌리자 결국 최후의 수단까지 동원했다. “그렇게 못 전해주겠다면 제가 직접 하지민을 찾으러 갈 거예요.” 그제야 마지못해 수락했다. 참 아이러니했다. 일이 있어도 남편이 아닌 비서를 통해 전달해야 한다니. 딸깍. 서아라는 몸을 일으켜 스탠드 조명을 켰다. 은은한 불빛 아래 남자의 잘생긴 얼굴이 눈앞에 드러났다. 높고 반듯한 콧대, 조각처럼 완벽한 이목구비, 그리고 심연처럼 어두운 눈동자로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서늘한 눈빛은 한겨울의 얼음장보다 더 차가웠다. 한때 그토록 푹 빠졌던 얼굴인데 지금은 어쩐지 낯설기까지 했다. 미간을 살짝 찌푸린 모습은 못마땅함과 짜증이 묻어났다. “서아라, 이번에는 또 무슨 수작이지? 똑똑히 들어. 지민을 건드리는 순간 나도 참지 않을 거야.” 시곗바늘이 새벽 1시를 가리켰다. 남편을 집에 불러들이기 위해서 다른 여자 이름을 꺼내야만 한다니. 결혼하고 나서야 차건우에게 잊지 못할 첫사랑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만 할아버지인 차무현의 눈에 차지 않아서 이어지지 못했다. 심지어 둘 사이를 완전히 끊어내기 위해 계략까지 꾸몄다. 그리고 할아버지라는 신분을 내세워 차건우에게 책임을 지라며 결혼을 강행했다. 3년 내내, 차건우는 이 모든 게 그녀와 차무현이 짜고 친 결과라고 믿었다. 그래서 항상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반면, 하지민의 존재를 몰랐던 서아라는 단지 자신이 부족해서 차건우의 사랑을 못 받았다고 여겼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 그녀는 현모양처가 되려고 애썼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다가 화상까지 입으며 마침내 제대로 된 요리 실력까지 갖추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차건우의 태도는 변함없이 냉담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동안 쏟아부은 정성이 무색하게 관심을 받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얼마 전 하지민이 귀국한 이후로는 아예 집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결국 서아라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오늘 하지민이랑 종일 붙어 있은 거야?” 하지민의 이름이 언급되자 차건우는 싸늘한 눈빛으로 쌀쌀맞게 말했다. “감히 누구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려?” 서아라는 흠칫했고 심장이 콕콕 쑤셨다. 이내 눈시울이 붉어지며 눈물이 차올랐다. 3년 동안의 노력과 헌신, 그 끝에 돌아온 건 차가운 냉대뿐이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하지민이 돌아온 이상 순순히 물러나야 한다는 사실을. 하지만 마음속 한편에서는 여전히 어리석고도 가엾은 기대와 환상이 남아 있었다. ‘혹시 아이를 가졌다는 걸 알게 되면 가정에 충실하지 않을까...’ “건우야, 나 할 말 있어. 사실은...” 말을 끝맺기도 전에 갑작스러운 벨 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차건우가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받으려는 순간 재빨리 제지했다. 그리고 간절한 눈빛으로 애원했다. “내 말 끝까지 들어주면 안 돼?” 이렇게 늦은 시간에 전화를 거는 사람은 하지민밖에 없을 것이다. 그녀의 바람이 닿았는지 차건우는 멈칫했다. 이렇게 애절한 눈빛은 처음인 거로 기억했다. 하지만 고요한 밤에 울려 퍼지는 벨 소리는 유난히 귀에 거슬렸고, 마치 절박한 외침 같았다. 찰나의 망설임을 끝으로 차건우는 쌀쌀맞게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네가 원하던 대로 했잖아. 더는 욕심 부리지 마.” 서아라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이제 집에 돌아오는 것조차 선심을 베풀어야 해?” 차건우는 싸늘하게 받아쳤다. “말도 안 되는 억지 부리지 마.” 하지민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됐는지 방에서 나가기도 전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 휴대폰 너머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건우야, 집이 갑자기 정전됐어! 너무 무서워... 너도 알잖아, 나 어두운 데 제일 싫어하는 거...” 차건우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금방 갈게.” 방에 있던 서아라는 떠나겠다는 그의 말에 안색이 돌변했다. “가지 마! 나 아직 할 말이 남았다고.” “악!” 이때, 하지민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차건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지민아, 왜 그래?” 하지민은 울먹이며 말했다. “실수로 바닥에 있는 유리 조각을 밟았어. 피 나는 것 같은데? 건우야, 나 너무 아파.” “움직이지 마. 금방 갈게.” 차건우는 서아라를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바로 몸을 돌려 뛰쳐나갔다. 서아라는 잽싸게 따라가서 앞을 막아섰다. “나 할 말 있다니까?” 차건우는 그녀를 밀쳤고, 싸늘한 눈빛은 불쾌함으로 가득했다. “서아라, 지민이가 또 너 때문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평생 널 용서하지 않을 거야.” 온몸에 맥이 탁 풀리면서 서아라는 힘에 부쳐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그리고 떠나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고,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집에 돌아온 지 10분도 되지 않았는데 하지민의 전화 한 통에 아무런 망설임 없이 떠나버렸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내 빠른 걸음으로 방을 뛰쳐나와 임신 사실을 알리려고 했다. 그러나 마음이 너무 급한 나머지 계단을 내려가던 중 발을 헛디뎌 그대로 굴러떨어졌다. 의식을 잃기 직전 그녀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며 대문을 향해 외쳤다. “차건우! 날 좀 도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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