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더 많은 컨텐츠를 읽으려면 웹픽 앱을 여세요.

제7화

한유설은 우주한의 시선 같은 건 조금도 느끼지 못한 채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그녀는 말을 마친 후 카트를 밀며 발걸음을 옮겼다. 며칠 굶은 듯한 얼굴로 서 있던 조금 전과 달리 지금은 생기가 돌았다. 심해원과 우주한을 제외한 나머지 두 사람은 도우미들이 나가는지 마는지 관심이 없다는 듯 자기들끼리 술잔을 기울였다. 정수연과 윤세희도 마침 배고팠던 참이라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한유설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다이닝 룸을 벗어나려던 그때 뒤편에서 유다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여기 있을게요. 셋이서 먹고 와요.” 배려 넘치는 말투로 얘기하는 유다정 때문에 식사 생각에 들떠 있던 정수연과 윤세희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이대로 갔다가는 근무시간에 본분을 지키지 않은 듯한 이상한 죄책감이 들것 같았기 때문이다. 유다정이 갑자기 그런 말을 한 건 한유설의 성격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서였다. 시기와 질투가 하늘을 찌르는 한유설이라면 분명히 1:4 구도가 되는 것만은 막으려고 할 테니까. 하지만 한유설의 입에서는 전혀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알겠어요. 그럼 수고해요.” 한유설은 유다정이 따뜻함과 착함으로 남주들을 꼬신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흔쾌히 자리를 양보해 주었다. 우주한은 조금 벙찐 얼굴로 다이닝 룸 입구를 바라보았다. 발이 얼마나 빠른지 한유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버렸다. 그는 3초간 그쪽을 바라보다 다시 고개를 돌려 놀란 것은 물론이고 어딘가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유다정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어떤 상황인지 파악한 듯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이렇게 재밌는 광경을 왜 이제야 알았을까 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왜 웃어?” 심해원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재밌는 걸 봐버려서.” 심해원은 그의 대답이 그다지 이해가 가지는 않았지만 다시 묻지는 않았다. 윤세희와 정수연은 자기들끼리 눈빛을 한번 주고받더니 곧바로 아무 말 없이 다이닝 룸을 떠나버렸다. 그리고 홀로 남겨진 유다정은 이를 꽉 깨물며 등 뒤로 손을 꽉 맞잡았다. 설마 그 한유설이 이렇게도 쉽게 가버릴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심해원은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유다정에게 말했다. “유다정 씨도 이만 식사하러 가보세요.” 유다정은 잠시 머뭇거리다 결국에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직원 식당. 한유설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이미 반찬을 데우고 있었다. 뒤따라온 윤세희와 정수연은 이번만큼은 한유설 덕인 걸 알고 있기에 오늘은 별말 없이 조용히 밥을 푸기 시작했다. 띵. 음식이 다 데워진 후 한유설은 혼자 식탁으로 향했다. 뒤늦게 도착한 유다정은 냉장고로 걸어가다 근처에 앉아 있는 한유설을 가만히 관찰해보았다. 한유설은 지금 모든 신경이 다 셰프가 요리해준 음식으로 가 있었기에 유다정이 들어온 사실도 몰랐다. 한유설이 행복한 얼굴로 식사하던 그때, 유다정이 의자를 뒤로 빼며 한유설의 바로 옆에 앉았다. 근처에 앉아 밥을 먹던 윤세희와 정수연은 유다정이 먼저 접근한 게 의외였는지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유설 씨, 아까 같은 상황은 아무리 해원 씨가 그렇게 말해도 자리를 지키는 게 맞아요. 만약 집사님이 곁에 있으셨다면 분명히 못 가게 했을 거예요.” 유다정은 한유설의 입맛을 조금이라도 떨궈놓으려고 일부러 반갑지 않은 소리를 해댔다. 하지만 한유설의 젓가락은 멈출 줄을 몰랐고 그녀는 여전히 음식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상관없어요.” “...” 유다정은 공격이 안 먹히자 저도 모르게 눈썹을 잠깐 찌푸렸다. “하지만 우리는 네 분을...” “듣고 싶지 않은데 계속 얘기할 거예요?” 한유설은 단호하게 말을 자르며 할 말을 했다. “...” 유다정은 또다시 말문이 막혀버렸다. 이 이상 얘기하면 의도가 변질해 버려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한유설은 유다정의 시비를 가만히 참아줄 생각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다. 엮이지 않겠다는 게 걸어오는 싸움까지 피하겠다는 말은 아니었으니까. 한유설은 유다정의 시선 속에서도 맛있게 음식을 먹어치웠고 깨끗이 다 비운 뒤에는 싱크대로 가 마무리 설거지까지 완벽하게 끝냈다. 정수연과 윤세희는 얼굴이 많이 안 좋아 보이는 유다정을 보며 아무 말도 건네지 않고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괜히 입을 열었다가 불똥이 튀어버리는 건 싫었으니까. 한유설은 떠나기 전 냉장고로 가 과일을 꺼내며 후식까지 야무지게 먹었다. 당도가 높은 것이 신경 써서 들여온 게 분명했다. 유다정까지 식사를 모두 마친 후 네 사람은 다시 다이닝 룸으로 돌아왔다. 한유설은 우주한의 뒤편에 서며 그들이 한시라도 빨리 대화를 마치고 돌아가기를 빌었다. 잠시 후, 시간이 9시를 가리키는 것을 본 심해원은 슬슬 일어나자고 하려다가 눈을 감은 채 꾸벅꾸벅 졸고 있는 한유설의 모습을 보고 멈칫했다. 꽤 시끄러운 편이었는데도 잠을 잘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면서 조금 어이가 없기도 했다. 심해원은 한유설을 싫어하는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누군가를 일부러 괴롭히는 취미는 없었기에 마지막 잔을 기울이며 일찍 쉬자는 얘기를 꺼냈다. “내일 스케줄 있는 거 잊지 마.” 스케줄 얘기에 우주한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작곡에만 집중하고 싶었는데 2개월 전에 이미 잡아둔 일정이라 미룰 수가 없었다. “먼저 올라가. 난 조금 더 마시다 갈게.” 우주한은 의자에 털썩 기대며 짜증스럽게 머리를 쓸어올렸다. 그 모습을 몰래 지켜보던 윤세희는 남몰래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유다정이 심해원을 좋아하고 있다고 하면 윤세희의 짝사랑 상대는 다름 아닌 우주한이었다. 네 명 중 유일하게 말을 편히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그였으니까. 그녀가 본 온시열과 심해원은 겉으로는 다정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선이 명확한 사람들이었고 백도운은 그냥 존재만으로도 무서운 사람이었다. 심해원은 일어날 준비를 하다 문득 우주한의 뒤쪽을 바라보았다. 한유설은 방금 이만 일어나자는 그의 말에 정신을 바짝 차리며 눈을 반짝이다 조금 더 있다 가겠다는 우주한의 말에 금세 다시 풀이 죽어버렸다. 심해원은 감정을 얼굴에 그대로 드러내는 그녀를 보며 미세하게 입꼬리를 올리고는 천천히 다이닝 룸을 나가버렸다. 다음으로 일어난 사람은 백도운과 온시열이었다. 온시열은 우주한의 바로 옆에 앉아 있었기에 한유설은 그가 일어나자마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우주한의 의자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런데 그때 나머지 두 명도 다 일어나자 우주한도 재미없다는 듯이 일어나 버렸고 그 순간 의자가 뒤로 밀리며 한유설의 몸도 뒤로 넘어가 버렸다. 간신히 다시 중심을 잡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오른쪽 어깨가 단단한 무언가와 부딪히고 말았다. “아!” 그녀가 부딪힌 곳은 다름 아닌 온시열의 팔꿈치로 꽤 세게 맞았는지 외마디 비명까지 흘러나왔다. 앞으로 걸어가던 온시열은 갑작스러운 부딪힘에 미간을 찌푸렸다. 한유설이 일부러 부딪친 줄 알았으니까. 그런데 연기라기에는 한유설은 정말 아파 보였고 얼굴도 살짝 질려 있었다. 온시열은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며칠 전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아무 말 없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한유설은 온시열의 뒷모습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부딪힌 사람이 백도운이 아니라 참으로 다행이었다. 만약 백도운이었으면 일부러 부딪쳤다고 오해하며 또다시 분노를 터트렸을 게 분명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게 다 우주한의 잘못이었다. 조금 이따 올라가겠다 해놓고 말도 없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으니까.

© Webfic, 판권 소유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