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더 많은 컨텐츠를 읽으려면 웹픽 앱을 여세요.

제9화

다음 날. 6월의 날씨는 변덕이 심해 1분 전까지만 해도 화창했다가 금방 다시 먹구름이 몰려오며 비를 내렸다. 한유설은 창가에 앉아 미친 듯이 쏟아지는 비를 감상하며 멍을 때렸다. 그러다 빵빵거리는 차 경적과 함께 유다정과 윤세희 등이 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가려는 모습을 보고서야 멍 때림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유다정은 행여 네 명의 남주들이 비라도 맞을까 봐 걱정 가득한 얼굴로 신발을 신었다. 한유설은 마중 나가는 인원이 이미 충분해 보여 다시 시선을 돌리며 밖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모습을 하필이면 윤세희가 봐버리고 말았다. 일부러 트집을 잡기 위해 본 건 아니고 그저 시선을 돌리다 우연히 발견한 것뿐이었다. 조금 공허한 듯한 눈빛으로 멍하니 밖을 바라보는 한유설의 모습은 하나의 조각상이 따로 없었다. 네 명의 남주들 생각밖에 머리에 없는 유다정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전부 다 한유설을 발견했지만 금세 다시 시선을 돌리며 신발을 신었다. 하지만 윤세희는 농땡이를 부리는 듯한 그녀의 모습이 꼴 보기 싫어 사람이 충분한 데도 그녀를 불렀다. “유설 씨, 뭐해요. 얼른 와서 우산 챙겨요.” 그녀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이며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는 못 배기게 했다. “먼저 가요. 금방 따라갈게요.” 윤세희는 한유설이 일어난 것을 확인한 후 우산을 펴며 빗속으로 뛰어들었다. 한유설은 신발을 신은 다음 우산 걸이에 있는 두 개의 우산을 전부 다 집어 들었다. 그중 하나를 펴고 빗속을 거닐자 주차된 차량 쪽으로 황급히 달려가는 도우미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한유설은 고개를 살짝 들며 어둑어둑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더 퍼부었으면 퍼부었지 절대 세기가 약해질 것 같지는 않았다. 차량에서 가장 먼저 내린 사람은 온시열이었다. 그와 제일 가까운 곳에 있던 유다정은 온시열에게 우산을 가져가려 하다가 뒤이어서 내릴 예정인 세 명이 걱정되는 듯 다시 우산을 가지고 왔다. 그 틈을 타 정수연이 얼른 우산을 씌워주려는데 운전기사가 한발 빠르게 우산을 펼치며 온시열에게 씌워주었다. 기사는 우산 하나 제대로 씌워주지 못하냐는 눈빛으로 도우미들을 마구 쏘아보았다. 윤세희와 정수연은 기사의 눈빛에 순간 억울해져 입이 한가득 튀어나왔다. 이건 그들이 느린 게 아니라 유다정이 제일 앞에서 망설였기 때문이었다. 온시열은 별장 쪽으로 걸어가다 다른 사람들이 다 도착하고 난 뒤에야 슬금슬금 차량 쪽으로 다가오는 한유설과 눈이 마주쳤다. 한유설은 온시열을 보고는 곧바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 “오셨어요?” 온시열은 간단히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유설 씨, 잠깐 이리 좀 와봐요.” 그때 한 차량의 조수석 차창이 내려가며 오은지가 그녀를 불렀다. “네.” 한유설은 빠르게 움직여 그녀 쪽으로 다가갔다. 오은지는 지금 도우미들 때문에 상당히 심기가 불편한 상태였다. 오합지졸도 아니고 빠르게 다가와서는 우산 하나 제대로 씌워주지 못했으니까. 한유설은 조수석 너머로 보이는 뒷좌석의 백도운을 확인하고는 먼저 입을 열었다. “저 우산 두 개예요. 하나는 저랑 은지 씨가 쓰고 하나는 백도운 씨가 혼자 쓰시면 될 것 같아요.” 오은지는 그녀의 말에 분노가 가라앉는 걸 느끼며 천천히 표정을 풀었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눈치가 빠르게 행동할 줄은 몰랐다. 기대감이 낮은 상태라 더 좋게 보이는 건지는 몰라도 방금은 순간적으로 한유설을 캐스팅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물론 그런 미친 생각은 어디까지나 생각에서 그쳤지만. 객관적으로 한유설은 정말 예쁜 얼굴이었지만 출신이 별로기도 하고 며칠 안 됐다고는 하나 이 저택에서 도우미로 일한 경력이 있는 사람이라 정말 계약하게 되면 나중에 피곤한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래요.” 오은지는 차에서 내린 후 건네진 우산을 펴더니 갑자기 한유설을 보며 말했다. “이 우산은 내가 쓰고 갈 테니까 유설 씨는 도운 씨랑 같이 쓰고 와요. 비에 맞지 않도록 조심해주고요.” 한유설은 그녀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누가 봐도 지금은 백도운이 혼자 쓰고 가는 게 맞는 데 굳이 함께 쓰고 오라고 하니까. ‘나더러 쫄딱 젖으라는 뜻이야?’ 한유설은 이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오은지는 대답을 듣지도 않고 별장으로 가버리고 말았다. 이에 한유설은 한숨을 내쉬며 뒷좌석으로 가 차창을 두 번 두드렸다. “은지 씨가 저더러 백도운 씨와 함께 우산을 쓰라고 하셨어요.” 오늘도 그녀는 오은지의 이름을 굳이 붙이며 자신은 아무런 사심도 없이 시키는 대로 할 뿐이라는 것을 어필했다. 차 문이 열리고 백도운이 내렸다. 깔끔한 쓰리피스 정장에 위로 올린 머리, 정말 다시 봐도 너무나도 잘생긴 얼굴이었다. 한유설은 키 큰 그를 위해 최대한 우산을 높게 들며 비를 맞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백도운은 그 모습을 보더니 곧바로 우산을 낚아채 두 사람 사이에 두고 손목을 기울여 우산이 한유설을 보호하게끔 했다. 한유설은 그의 예상외의 행동에 조금 벙찐 얼굴로 눈을 깜빡이다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옷 끝 정도만 젖은 그녀와 달리 백도운은 그 잠깐 사이 바지의 절반이 다 흠뻑 젖어버렸다. “이러면 백도운 씨가 다 젖잖아요.” ‘이번에야말로 정말 월급 깎이는 거 아니야?’ 백도운은 그녀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며 별장으로 향했다. 한유설은 그와 너무 멀리 떨어지지도 않으며 또 너무 가깝지도 않은 애매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코를 간지럽히는 그의 시원한 향수 냄새를 애써 무시하며 말이다. 한편 유다정은 끝끝내 심해원과 함께 우산을 썼다. 부끄러워하며 시선을 내리던 그녀는 현관문 쪽에 다 도착한 후 뒤를 돌아봤다가 비로부터 완전히 보호된 채 걸어오는 한유설과 그 옆의 백도운을 보며 입을 떡하고 벌렸다. 백도운이 한유설과 함께 우산을 쓴 것도 놀라운데 비에 젖지 않도록 배려까지 하다니, 이건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심해원도 똑같이 그 광경을 보았지만 유다정과 달리 그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백도운이라면 당연히 저렇게 쓸 줄 알고 있는 듯한 얼굴이었다. 우주한은 차에서 내린 후 점점 더 거세기는 빗줄기에 욕설을 내뱉으며 윤세희와 함께 별장으로 향했다. “이놈의 날씨는 갈수록 더 변덕스러워지는 것 같아. 쯧!” 현관에 도착한 그는 투덜거리며 신발을 벗었다. 비 오는 날을 매우 싫어하는 그였기에 얼굴이 좀처럼 펴질 줄을 몰랐다. 윤세희는 우주한에게 우산을 씌워주다 비를 쫄딱 맞아버린 자신의 꼴을 한번 보더니 풀이 죽어서는 조용히 옷을 갈아입으러 갔다. 밖으로 나갔던 도우미들 중에서 멀쩡한 사람은 한유설밖에 없었다. 그래서 한유설은 조금 미안한 얼굴로 몸의 절반이 다 젖어있는 백도운을 바라보았다. 그때 오은지가 그녀를 불렀고 한유설은 이번에야말로 올 게 왔다는 얼굴로 먼저 선수를 쳤다. “다음에는 잘 씌워드릴 테니까 아주 조금만 깎아주면 안 될까요?” 아무리 월급이 많다 해도 삭감이 되면 기분이 확 가라앉아버릴 테니까. 오은지는 그녀의 말에 눈을 깜빡이다 뒤늦게 말의 뜻을 눈치채고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무슨 악덕 기업 사장도 아니고 그런 거로 월급을 왜 깎겠어요.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진짜요?” “네.” 한유설은 눈에 띄게 안심하며 미소를 지었다. “고맙습니다.” “유설 씨를 부른 건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예요. 지난 일은 오늘로써 완전히 잊어줄게요. 시험해보는 짓도 더 이상 안 할 생각이에요. 하지만 내 귀에 또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이 들려오면 그때는 나도 어떻게 할지 몰라요.” 오은지의 진지한 말에 한유설은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시험한 건지도 모르고 있었지만 뭐가 됐든 지난 일을 잊어준다고 하니 그녀로서는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네, 절대 그럴 일 없게 할게요!” 한유설이 보장하며 답했다.

© Webfic, 판권 소유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