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송서아는 병원 청소부에 의해 화장실에서 정신을 잃은 채 발견됐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깨끗한 병상에 누워 있었다. 간호사는 차가운 목소리로 진료 기록을 들고 말했다.
“가족분께 연락해서 옷 갈아입혀달라고 하세요.”
송서아는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남편은 죽었고 형님은 임신 중이라 온 가족이 감싸고 도느라 아무도 저한테 신경 안 써요.”
간호사는 연민의 표정을 짓더니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잠깐만요. 제가 사다 드릴게요.”
간호사는 돌아오는 길에 동료들과 잡담을 나눴는데 동료가 한창 신이 나서 말했다.
“방금 옆 응급실에서 굉장한 사람들 만났지 뭐야. 시어머니로 보이는 분이 글쎄 큰며느리가 임신했는데 둘째 며느리는 전화도 안 받고 보러 오지도 않는다면서 예의가 없다고 핀잔을 두는 거야. 대체 무슨 경우래? 그 아들도 마찬가지야. 행여나 와이프 잘못될까 봐 물 한 잔 따르는 것도 조심하는 거 있지. 우리가 제대로 못 한다고 눈치를 주는 것만 같았다니까...”
송서아가 힘없이 휴대폰을 집어 들었더니 배터리가 다 닳아서 꺼진 상태였다.
아마도 방금 간호사가 말한 둘째 며느리가 본인일 듯싶었다.
간호사가 사다 준 새 바지를 입은 송서아는 약간의 돈을 건네며 감사 인사를 전한 뒤 황급히 병원을 나서려 했다.
하지만 병실을 나서자마자 허가윤 병실 앞에서 자신에게 전화하려던 시어머니 민채원과 마주쳤다.
민채원은 송서아를 보자마자 분노와 질책으로 가득 찬 얼굴로 그녀의 손을 잡아당겼다.
“대체 어디 갔다 온 거니? 전화도 안 받고! 가윤이가 임신했는데 와보지도 않고 애가 왜 이렇게 예의가 없어?”
송서아는 한바탕 질책을 당했다. 민채원 역시 보통 사람은 아니지만 예전에는 그래도 이렇게까지 대놓고 그녀를 몰아붙이지는 않았다.
적어도 체면을 살려줬는데 이번엔 왜 이렇게 무모하게 나오는 걸까?
송서아가 민채원에게 험한 말을 듣는 동안, 병상에 누워 있던 허가윤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처음에는 잘못 본 거라 여겼지만 허가윤이 민채원과 박유준을 따로 불러내자 송서아는 그제야 착각이 아님을 깨달았다. 또한 시어머니가 왜 이렇게까지 무모하게 나왔는지도 이해됐다.
병실에는 허가윤과 송서아 단둘만 남았다.
허가윤은 눈썹을 치키고 송서아를 바라보며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동서는 왜 생리 온 걸 내 남편한테 전화하고 난리죠? 서준 씨더러 여자 화장실까지 가서 생리대를 전해달라고요? 대체 동서 속셈이 뭐예요?”
송서아는 고통에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지만 육체적인 고통보다 심장이 찢기는 듯한 고통이 더 컸다.
예전에는 생리 때마다 박유준이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그녀를 위해 동분서주했다. 심지어 아무것도 모르던 그는 이것저것 검색해서 직접 대추차를 끓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남편에게 고작 급한 불부터 꺼달라고, 생리대나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을 뿐인데 속셈이 뭐냐는 질의나 받다니.
허가윤이 쓴웃음을 짓고는 말을 이어갔다.
“서방님 사랑이 지극한 동서가 이제 와서 우리 남편 서방님 닮았다고 노리는 거잖아요! 본인 남편 죽었다고 서준 씨 뺏어가려는 속셈이에요? 꿈 깨요 제발!”
송서아는 그녀의 말에 기가 차서 입이 쩍 벌어졌다.
이것 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다만 어찌 됐든 결론은 스스로 측은해질 따름이었다.
그녀는 감정을 추스르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남편 걱정할 시간에... 뱃속 아이를 어떻게 지킬지나 고민하는 게 좋을걸요. 아 참 그리고 형님 뱃속 아이를 지켜내려고 제가 백 선생님께 부탁드린 것도 알아주셔야죠. 무작정 헐뜯지나 말고 저한테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형님?”
허가윤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쏘아붙였다.
“내가 왜 감사해야 하죠? 동서가 내 남편이랑 거래하고 마지못해 백 선생님께 부탁한 거잖아요!”
송서아는 더는 그녀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예의를 모르는 사람에게 아무리 말해봤자 시간 낭비였다.
게다가 그녀는 남편과 시어머니의 도덕적 굴레에 갇혀 어쩔 수 없이 백주현에게 부탁했을 뿐, 허가윤의 감사나 고마움 따위 받을 필요가 없었다.
이제 막 돌아가려는데 허가윤이 고함을 질렀다.
“야, 송서아! 너 거기 안 서? 형님이 말하는데 어딜 등 돌리고 있어? 똑똑히 들어! 너같이 더러운 년 심리는 내가 잘 알아. 임신한 틈 타서 이상한 짓 할 생각하지 마! 서준 씨가 아무리 서방님이랑 닮았다고 해도 너 따위가 넘볼만한 인물이 아니야. 우리 부부 사이 깨트리기만 해봐. 죽어서라도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송서아는 발악하는 허가윤을 힐끗 쳐다보았다.
“박유준이든 박서준이든... 다 집어치우라고 해. 너무 역겨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