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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병실 안, 강우빈 부자는 마치 한 틀에서 찍어낸 듯 눈빛에 서린 냉기마저 닮아 있었다. 심은지는 가슴이 턱 막혔다. 이혼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조여드는 듯 아려왔다. 그녀의 침묵은 곧 강우빈의 오해로 이어졌다. 그는 사진 속 남자와 심은지가 추잡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단정했다. “말해 봐. 이 사람은 누구야? 너랑 무슨 사이냐고! 내 전화를 씹고 아들을 내팽개치면서까지 만나야 했던 이유가 뭐야?” 강우빈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격렬한 감정에 손등의 핏줄이 도드라졌다. 다급히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았을 때, 누군가 보낸 사진 뭉치를 받아 들었을 때, 그가 얼마나 치를 떨며 분노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심은지가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어떻게 감히...’ 사진 속에서 그녀는 낯선 남자와 머리를 맞대듯 가까이 앉아 있었고 남자는 그녀의 이마를 장난스럽게 톡톡 치고 있었다. 심은지의 눈빛에는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무력감이 담겨 있었지만 강우빈의 눈에는 그것이 곧 친밀함의 증거였다. 그는 그들의 관계가 단순하지 않다고 확신했다. “심은지, 너 말 잘하잖아? 설명해 봐. 이 사람 누구야? 두 사람 언제부터 만난 거야?” 강우빈은 음침한 표정을 하고 한 걸음씩 그녀에게 다가왔다. 침대에 누워 있던 강은우는 원래도 마음이 억울했는데 화를 내며 다가오는 아버지의 모습에 겁을 먹고 입술을 삐죽거리더니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그는 강우빈의 저런 무서운 얼굴을 처음 보았다. 예전의 그는 화를 내도 그저 차갑게 굳을 뿐, 이렇게 분노로 일그러지지는 않았다. 심은지는 가슴에 솜뭉치가 얹힌 듯 숨이 막혔다. 깊게 들이쉰 숨은 곧 눈물이 되어 쏟아질 것 같았지만 이를 악물고 억지로 참았다. ‘내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건 외도고 불륜이지. 그럼 자기가 한서연과 아침저녁으로 붙어 다니고 뻔뻔하게 집까지 데려오는 건 대체 뭔데?’ 심은지는 목이 메어 물어보지도 못한 채, 텁텁한 숨만 몰아쉬었다. 강우빈은 여전히 음산한 얼굴로 한 걸음 더 그녀에게 다가섰다. 두 사람은 마치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은우야, 괜찮아? 어디 다쳤어?” 그때, 문이 열리며 한서연이 들어왔다. 강우빈과 심은지는 거의 맞닿을 듯이 마주 서 있었고 심은지는 억지로 물러서지 않은 채 강우빈과 대치했다. 누구도 먼저 굽힐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작게 흐느끼던 강은우는 한서연을 보자마자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흐엉... 서연 이모, 무서워요.” 한서연은 재빠르게 심은지를 힐끗 본 뒤,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러고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가 강은우를 안아 주었다. ‘심은지, 네가 먼저 바람을 피운 한 강우빈이 너와 이혼하지 않을 수 있겠어?’ 속으로는 득의양양했지만 겉으로는 은근히 심은지를 감싸는 듯 말했다. “강 대표님, 아무리 은지 언니가 잘못했어도 사정이 있었을 거예요. 제발 은우 앞에서는 다투지 마세요. 아이가 무서워하잖아요.” 마치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은 심은지의 편이라는 듯, 심지어 잘못을 저질렀어도 이해할 수 있다는 듯 들렸지만 그 말은 날 선 악의를 품고 있었다. 심은지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리 없었다. “한서연, 여기서 가식 떨지 마. 네가 누구보다 잘 알잖아!” 사진에 얽힌 배후가 누구인지는 아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사람을 시켜 몰래 찍게 한 건 분명 한서연이었다. 다만 그녀가 이렇게까지 서둘러 자신을 내쫓으려 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뿐이다. “언니, 무슨 말이에요?” 한서연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순진한 표정으로 강우빈을 바라봤다. 심은지는 더는 그녀와 연극을 할 생각이 없었다.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녀는 비웃듯이 입꼬리를 올리며 단호히 말했다. “그래, 네가 이겼어.” 그녀는 강우빈을, 아니 강은우까지 포함해서 통째로 넘겨주기로 했다. 심은지는 눈을 감았다. 원래는 이렇게 서둘러 판을 깨고 싶지 않았다. “강우빈, 그 남자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 좋아. 알려줄게. 그 사람은 내가 고용한 이혼 변호사야.” 강우빈의 차가운 얼굴 위로 순간 당혹감이 스쳤다.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잠시 말을 잃었다. ‘나와 이혼하겠다고? 말도 안 돼.’ “준비된 이혼 서류는 최대한 빨리 보내줄게. 넌 도장만 찍으면 돼.” 심은지는 말을 마치고 곧장 성큼성큼 문 쪽으로 걸어갔다. 떠나기 전, 눈에 띄게 기뻐하는 한서연을 차갑게 힐끗 노려봤다. 그녀가 사라지자, 강우빈의 얼굴빛이 확 바뀌었다. ‘심은지와 나와 이혼하려고 한다고? 말도 안 돼.’ 강우빈은 어떤 상황까지도 가정해 봤지만 심은지가 자신에게 이혼을 요구할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다. 심지어 눈앞에 다른 남자와 함께 찍힌 사진이 들이밀어지고 그 다정한 모습에 질투로 속이 끓어올랐을 때조차도 ‘이혼’이란 단어는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강 대표님, 괜찮으세요?” 한서연은 속으로 끓어오르는 기쁨을 애써 감췄다. 그동안 자신이 꾸며온 일들이 드디어 결실을 본 것이다. 심은지가 먼저 이혼을 입에 올리다니. 원래라면 심은지는 끝까지 아내 자리를 지키려 매달릴 거라고 생각했었다. 뻔뻔하게라도 붙잡고 버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그러지 않았다. 한서연은 걱정하는 척 목소리를 낮췄다. “은지 언니가 갑자기 왜 이혼하려는 걸까요? 이렇게 훌륭한 강 대표님을 두고...” 그러다 무슨 말을 잘못했는지 깨달은 듯 수줍게 얼굴을 붉혔다. 그녀는 조심스레 강우빈의 표정을 살피며 덧붙였다. “강 대표님, 은지 언니가 정말 이혼하자고 하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이혼?” 강우빈의 눈빛이 번뜩였다. “꿈도 꾸지 마!” 그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마치 자신을 납득시키려는 듯 중얼거렸다. “그냥 화가 나서 하는 말일 뿐이야.” 강우빈은 심은지의 이혼 선언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서연은 순간 가슴이 내려앉았다. 이혼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심은지가 아니라 강우빈이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근무 시간에 왜 여기 있어?” “아, 저는...” 한서연의 얼굴빛이 순간 굳었다. 그때 품에 안겨 있던 강은우가 그녀의 목을 끌어안으며 칭얼거렸다. “아무도 나랑 같이 안 놀아줘서 서연 이모가 온 거야.” 강우빈은 눈빛이 스치듯 날카로워졌지만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밤은 깊어졌고 심은지는 침실에서 절친 유수아와 통화하고 있었다. 전화기 너머로 애교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지야, 내일 비행기표 끊어서 바로 돌아올 수는 없는 거야? 십여 일을 기다려야 한다니 시간이 너무 안 가. 네가 너무 보고 싶어, 이 못된 계집애야.” 심은지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지난 몇 년 동안 자신을 진심으로 아껴준 친구들을 소홀히 했음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곧 돌아갈게. 그동안 못 해준 거 다 보상하고 진심으로 사과할게.” 두 사람은 그렇게 마음을 나누다가 자연스레 일 이야기가 나왔다. “어쨌든 은지야, 복귀를 환영해! 네 복귀는 분명 국제 일러스트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올 거야!” 유수아의 흥분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도 쏟아졌다. 그녀는 누구보다 심은지의 재능을 잘 알고 있었다. 십 대에 단 한 장의 그림으로 이름을 알리고 국내외 일러스트 대회에서 무려 24회 챔피언에 올랐던 인물이었다. 그녀는 출품작마다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7년 전, 그녀는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다. 심은지는 미묘하게 웃음을 지었다. “수아야, 이번 복귀는 당분간 신분 공개 없이 해야 할 것 같아...” 그녀의 손길이 무심코 배로 향했다. 임신 사실을 말하려다 끝내 멈추었다. ‘다음에 직접 만나서 말해주자.’ 뱃속의 아이는 오직 그녀 혼자만의 아이였다. “안 돼! 그러기엔 네 재능이 너무 아까워.” 유수아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의 기억 속 심은지는 언제나 눈부시게 빛나는 별이었다. “쾅!” 갑자기 침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차가운 기운과 함께 강우빈이 성큼 들어섰다. 그는 굳은 얼굴로 이혼 합의서를 심은지 앞에 내던졌다. “심은지, 이건 무슨 뜻이야? 나와 재산도 나누지 않고 위자료도 없이 떠나겠다고?” 강우빈은 냉소 어린 웃음을 흘리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은우까지 버리겠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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