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화
우리의 결혼식은 프랑스에서 열기로 했다.
내 행복을 외할아버지도 함께 지켜봐 주셨으면 하는 바람에 결혼식은 외할아버지의 수술이 끝난 지 두 달째 되는 시점으로 정했다.
결혼식 당일, 외할아버지는 아직 자리에서 일어날 수는 없었지만 휠체어에 앉아 내 손을 꼭 잡고 나를 신정훈의 손에 맡겨 주셨다.
그 순간만큼은 어떤 말보다도 그 손길이 더 많은 걸 전해 주고 있었다.
결혼식은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되었는데 심씨 가문의 가까운 친척 몇 명과 우리 둘의 절친한 친구들만 초대했다.
외부의 방해를 완전히 차단하기 위해 신정훈은 아예 가짜 결혼식 장소를 몇 군데 흘려 두기까지 했다.
우리가 결혼하던 날, 이씨 가문 형제들이 그 가짜 장소들을 미친 듯이 돌아다녔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
사람과 무기까지 동원해 나를 데려가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다녀도 내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고 결국 두 형제는 서로 다투다 사고를 내,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크게 다쳤다.
하지만 그런 일들은 이제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남편과 함께 신부님의 앞에서 서약을 하고 반지를 교환하고 입을 맞췄으니 말이다.
결혼식이 끝나고 나서는 이제 그 누구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뒤, 집사가 보낸 사람 이름이 없는 소포 하나가 도착했다고 전해 왔다.
그 위에는 편지 한 장이 함께 놓여 있었다.
봉투를 여는 순간, 나는 단번에 알아봤다.
십몇 년 만에 다시 보는 어머니의 자유롭고도 익숙한 글씨체였다.
[행복하길 바란다. -어머니가.]
짧은 한 줄이었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어머니는 줄곧 어딘가에서 나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소포 안에는 세계 곳곳의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도쿄의 벚꽃, 캐나다의 메이플 시럽, 호주의 양기름....
그 모든 것은 그녀가 이 세상을 자유롭게 떠돌며 잘 지내고 있다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나는 집사에게 소포를 보낸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 묻지 않았고 어머니의 행방을 찾으라고도 하지 않았다.
마음 한켠에 여전히 내가 남아 있지만 어머니는 심씨 가문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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