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나를 향한 심태윤의 눈빛은 냉담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내가 심가희를 해친 악당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내가 자신의 약혼녀라는 사실은 잊은 듯했다.
심태윤 뒤에 선 심가희는 그의 옷자락을 꽉 잡고, 겁에 질리고 억울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맞은편에 선 나는 심술궂은 악역처럼 보였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십 년간 심가희에게 양보하고 참았던 모든 순간이 웃기면서도 슬펐다.
십 년간 바쳤던 내 감정이 한심했다.
나는 심태윤이 꽉 잡고 있던 내 팔을 뿌리쳤다.
심태윤은 당황한 듯 굳어졌다.
이게 수년 만에 처음으로 그를 밀어낸 순간이었다.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태윤 씨, 만약 한 달 전에 심가희가 제 천식약을 고추 스프레이로 바꿨을 때 제가 죽었다면 태윤 씨는 경찰에 신고했을까요? 아니면, 그냥 아이의 투정이었다고 계속 감싸고 돌았을까요?”
심태윤은 잠시 침묵하다가 단호하게 말했다.
“너와 가희 모두 나에게 소중해. 그러니까 날 곤란하게 만들지 마. 응?”
나는 웃었지만 두 눈에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좋아요. 그럼 태윤 씨도 가희 씨를 죽음의 문턱까지 한번 몰아붙여 봐요. 그럼 저도 태윤 씨를 곤란하게 하지 않을게요.”
심태윤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심가희는 훌쩍이며 앞으로 다가왔다.
어깨가 흐느낌으로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새언니, 죄송해요. 저... 오빠를 놓아줄 수가 없어서요.”
그녀의 눈물은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그녀는 울면서 내 손을 잡았다.
“어릴 때부터 오빠랑 같이 자랐는데, 오빠가 결혼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힘들었어요. 오빠를 탓하지 마세요. 제가 어리석었어요.”
심가희는 심태윤이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것을 보고는 더욱 슬프게 울기 시작했다.
“모두 제 잘못이에요. 오빠를 곁에 두기 위해 여러분의 결혼식을 방해하려 했어요. 이제 오빠 곁에 더는 있으면 안 되겠지요. 제가 철들어야겠어요.”
하객석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악독하다는 듯 비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이미 감정이 무뎌진 상태였다.
심가희가 울기만 하면 심태윤은 늘 마음 아파했는데 그것은 그녀가 늘 사용하던 수법이었다.
심가희는 내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눈을 굴리더니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새언니, 흑흑흑...”
그녀는 갑자기 앞으로 달려들어 나를 껴안고 내 귓가에 대고는 싸늘하게 말했다.
“날 때린 이 손바닥 자국을 그대로 갚아줘야지.”
그 말을 마치고 난 그녀는 내 손을 잡고는 그대로 단상 아래로 쓰러졌다.
‘쿵’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모두가 얼어붙었다.
심가희는 바닥에 쓰러져 팔꿈치와 무릎이 시뻘겋게 긁혔고 피가 조금 배어 나오기까지 했다.
“가희야!”
심태윤이 황급히 달려들어 그녀의 상처를 살폈다.
심가희는 그의 목을 감싸 안고는 품 안에서 울기 시작했다.
심태윤은 아파하는 그녀를 꼭 안았다.
심가희의 목소리에는 죄책감과 후회가 가득했다.
“모두 제가 여러분의 결혼식을 망쳐서 그래요! 새언니가 저더러 뛰어내리라고 해도 저는 마땅히 그래야 해요!”
그녀는 말을 마치고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창가로 달려갔다.
심태윤은 그녀를 붙잡고 품 안에 가두었다.
“가희야, 그렇게 자신을 해치지 마. 오빠가 마음 아프잖아.”
심태윤의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그는 나를 맹렬하게 쏘아보았다.
“가희는 그냥 귀하게 자랐을 뿐인데 왜 너는 용납하지 못하는 거야? 그렇게 속이 좁아서 어떻게 우리 심씨 집안에 들어올 수 있겠어!”
나는 낯선 심태윤의 모습에 마음이 차가운 얼음물에 잠긴 듯했다.
‘귀하게 자랐다고 내 웨딩드레스를 마음대로 찢어도 되는 건가? 고추 스프레이로 내 천식약을 몰래 바꿔도 되는 건가? 앞으로 심가희가 살인을 저질러도, 심태윤은 귀하게 자라서 그랬다고 말할 건가?’
심가희는 조용히 심태윤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오빠, 새언니 탓하지 마. 모두 내가 어리석어서 벌어진 일이야. 새언니가 나를 어떻게 괴롭히든 모두 당연한 거야.”
더욱 마음 아파하진 심태윤은 분노하며 나를 질책했다.
“가희가 이렇게 철들었는데 더 바라는 게 뭐야! 너 정말 가희를 죽여야 직성이 풀릴 거야? 소연아, 너 어떻게 이렇게 악독해졌어? 아무도 널 사랑해주지 않으니 가희가 사랑받는 것도 원치 않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