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진우빈의 클릭과 함께 패널은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다.
[윤초원 아가씨, 홍채 인식을 진행해 주세요.]
진우빈은 뒤로 물러나며 윤초원에게 화면 속의 빨간 점을 보라고 신호를 보냈다.
홍채 인식이 완료되자 진우빈은 윤초원에게 자금 카드 확인, 쇼핑몰, 소셜 플랫폼, 친구 추가 등 다양한 기능을 사용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윤초원은 진우빈의 지도 아래 서서히 칩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이 칩은 사실 변형된 신분증이었다.
다만 여기에 현대의 은행 카드 같은 자금 카드, 소셜 플랫폼, 쇼핑몰 등 일상에서 필요한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었다.
이것은 신분증과 스마트폰의 결합체나 다름없었다.
윤초원은 자금 카드의 잔액을 확인하고 손가락으로 0의 개수를 세어보았다.
“이 보조금은 일시불로 주는 거야?”
윤초원은 2천만이라는 금액을 보며 어지러움을 느꼈다.
2천만, 평범하게 일해서 벌려면 몇 년은 걸릴 금액이다.
“아니, 이건 한 달 분이야.”
진우빈은 눈을 깜빡였다.
“매달 2천만 원씩?”
“응.”
“여성체는 뭘 해야 해?”
윤초원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냥 먹고 마시고 놀고, 남성체가 다쳤을 때 진정시켜 주기만 하면 돼.”
“어떻게 진정시키는데?”
“숲에서 나를 진정시켜 준 것처럼.”
진우빈은 매우 인내심 있게 대답했다.
“그렇게 간단해?”
윤초원은 매우 놀랐다.
“응! 남성체는 여성체와 새끼를 보호하고 돌보는 역할이고 여성체는 남성체를 진정시키고 새끼를 낳는 역할이야. 모든 연맹이 다 이래.”
진우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도심의 한 저택에서 피부가 희고 키가 큰 여성체가 하이힐을 신고 또각또각거리며 문 쪽으로 달려가 어머니 나연서와 아버지 곽태우의 대화를 의아해하며 듣고 있었다.
“네? 육성주가 순수 인간 여성체의 보호자가 되기로 했다고요?”
“그렇대. 그 순수 인간도 기력 레벨을 가지고 있다는데. 비록 F 급밖에 안 된다지만.”
나연서는 눈살을 찌푸리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지연이는 SS 급인데. 육성주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
나연서는 오히려 나지연보다 더 화가 난 듯했다.
“엄마, 육성주가 저를 안 뽑아도 괜찮아요. 화내봤자 소용없어요. 그 사람 총사령관인데 억지로 시킬 수 있나요?”
나지연은 머리카락을 넘기며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실망감이 밀려왔다. 자신이 F 급 기력 레벨의 순수 인간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니.
“지연아, 너는 경쟁을 안 해. 그때 좀 더 강경하게 나갔으면 육성주가 우주 연맹 규정을 어기진 않았을 거야. 이젠 순수 인간의 보호자가 되겠다니. 이게 누구 보라고 하는 짓이야? 백호 연맹에서 네가 유일한 SS 급 여성체인 건 다들 아는 사실인데.”
나연서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나지연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어쩌겠어요, 억지로 강요하는 건 싫다고요. 성주는 한번 결심하면 바꾸지 않아요.
만약 기력 레벨 문제로 성주를 압박해 내 보호자로 만들려 했다면 차라리 우주 감옥에서 처벌받을지언정 동의하지 않았을 거예요. 여성체의 지위가 남성체보다 높다고 해도 남성체의 의사를 완전히 무시할 순 없잖아요. 우주법에도 분명히 나와 있어요. 남성체가 특정 여성체의 보호자나 짝이 되는 것을 명확히 거부하면 그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고.”
나지연은 말을 마치고 실망한 표정으로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
그녀는 원래 육성주 소식을 듣고 어머니의 저택으로 확인하러 온 것이었다.
이제 답을 얻었으니 더 머물 이유도 없었다.
게다가 실망스러운 답변이었으니 혼자 조용히 있을 필요가 있었다.
“제 몸은 아무 문제 없는 것 같은데 퇴원해도 될까요?”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방에 들어오자 윤초원은 바로 물었다.
조금 전 윤초원은 진우빈을 통해 육성주의 연락처도 추가했다.
육성주는 자신의 빈 저택이 있다며 윤초원이 퇴원하면 바로 거기로 가도 좋다고 했다. 방도 이미 정리해 주었다고 했다.
그러니 퇴원 후 진우빈이 데려다주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윤초원은 일단 머무를 곳이 생긴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육성주는 총사령관이니 바쁠 테고 자신을 계속 감시할 순 없을 거라 생각했다.
“네, 아무 문제 없습니다. 퇴원하셔도 돼요. 보호자분들은 잘 돌봐주시고 문제 생기면 바로 병원으로 오세요.”
흰 가운을 입은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윤초원의 퇴원 요청을 승인했다.
퇴원 수속을 마친 후, 진우빈은 차를 타고 윤초원을 육성주가 말한 저택으로 데려갔다.
이곳은 도심에서 약 10분 정도 떨어진 곳이었지만 주변 경치가 매우 좋았다.
‘육성주는 조용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모양이네.’
윤초원은 속으로 추측했다.
“도착했어.”
진우빈은 차에서 내려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다.
윤초원은 차에서 내리는 순간, 육성주가 정문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다.
이때의 육성주는 비교적 캐주얼한 복장을 하고 있었고 병원에서 봤을 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병원에서는 군복 비슷한 총사령관 제복을 입고 있어서 미소를 지어도 엄숙한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지금 육성주의 옷은 톤이 부드러웠고 흔들리는 검은 머리 앞머리가 이마를 흘러내린 모습은 완전히 대학생 같았다.
게다가 지금 육성주의 얼굴에는 적절한 미소가 떠나지 않고 있었다.
‘이 따뜻한 동네 오빠 같은 분위기는 뭐지?’
물론 그 동물 귀가 약간 위화감을 주긴 했지만 오히려 코스프레 같은 매력이 있었다. 윤초원은 입가에 침을 닦는 시늉을 하며 시스템에게 말했다.
“이 사람 나 감시하는 거 같지 않고 유혹하는 거 같은데...”
[느낌이 아니라 유혹이 맞습니다. 동물 세계의 구애는 기본적으로 남성체들의 경쟁입니다. 인간의 짐승 유전자가 활성화되어 수인이 된 지금, 남성체들의 경쟁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죠. 이게 정상적인 세계입니다. 인류 사회의 여성체 경쟁은 수천 년의 길들임 결과물일 뿐입니다.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이 해방되면 여성체는 강력하고 안정감을 주는 남성체를 짝으로 선택하게 됩니다. 따라서 남성체들은 실력, 외모, 성격 등에서 점점 여성체들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갑니다. 물론 남성체들도 강한 상대를 동경할 수 있죠.]
“성주야, 너 원래 검은 옷만 입지 않았어?”
진우빈은 머리를 긁적이며 의아해했다.
“의사 선생님이 검은색이 너무 음침하다고 해서. 윤초원 아가씨가 또 긴장할까 봐 부드러운 톤의 옷을 사 왔어.”
육성주는 진우빈에게 대답했지만 시선은 계속 윤초원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래? 그럼 나도 옷 다시 사야겠네.”
진우빈은 육성주의 말을 듣고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대답했다.
윤초원은 진우빈이 이 말을 했을 때 육성주의 입꼬리가 방금만큼 올라가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오호? 남성체들의 경쟁이 벌써 시작된 건가? 그러니까 내 추측이 틀렸다는 거네? 육성주는 감시하려는 게 아니라 나에게 반한 거였어?’
윤초원은 여전히 웃고 있는 진우빈을 보며 가끔은 둔감한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주의 이 저택 위치는 정말 좋아. 저 산 아래에 천연 호수가 있고 저택 뒷문으로 나가면 몇 분 안 걸려. 지금이 봄이니 뒷산 나무들도 다 꽃이 폈을 거야. 바람 쐬기에 딱 좋은 곳이지. 분명 좋아할 거야! 같이 갈래?”
진우빈은 저택 뒷문 쪽 산을 가리키며 윤초원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곧 해가 질 녘이라 내일 가자.”
윤초원은 육성주의 미세하게 떨리는 눈썹을 보고 왠지 모르게 흥미로웠다.
아마 정말 감시하려는 건 아닌 모양이다.
윤초원은 또 생각했다.
‘총사령관도 남성체 경쟁 중에는 감정을 숨기지 못할까? 궁금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