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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양혜린은 국내 최대 방송사의 간판 여배우였다. 눈부시게 화려한 미모로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사로잡았고 눈짓하나 미소 하나에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주태준은 서울 최고 재벌가의 후계자였다. 잘생기고 자유분방한 데다가 한없이 방탕해 수많은 재벌가 딸과 여자 연예인들이 그를 좇았다. 5년 전, 두 사람의 결혼식은 대한민국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한강 위로 터져 오르던 불꽃놀이는 한 시간에 20억이 들었고 주태준은 그녀를 위해 사흘 밤낮을 쉬지 않고 불꽃을 쏘아 올렸다. 눈부신 빛은 서울의 밤하늘을 거의 전부 밝힐 듯했고 그 순간 그는 마치 온 세상에 말하는 듯했다. 자유분방하던 남자가 오직 한 여자만을 위해 살아가겠다고. 대한민국의 모든 여자들은 모두 양혜린을 부러워했지만 누구도 그녀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한 번 바람둥이는 영원히 바람둥이라는 것을. 결혼한 지 5년이 되었지만 그간 주태준은 수없이 바람을 피웠다. 나이 어린 모델, 여배우, 재벌가 딸들... 수차례 파파라치에게 찍힌 스캔들 사진은 늘 연예 주간지의 가장 눈에 띄는 자리를 차지했다. 그런 주태준은 언제나 태연했다. 늘 전과 다른 여자들을 끌어안고 카메라 앞에서 능청스럽게 웃으며 가벼운 말투로 기자들에게 말했다. “이런 건 제 아내가 처리해 줄 거예요.” 그것이 반복되고 시간이 흐르자 남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돌기 시작했다. 만약 자신의 아내도 주태준의 아내처럼 넓은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러면 옆에서 웃으며 욕을 섞어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미쳤군! 주태준만큼 돈 많고 지위도 높아야 그런 아내를 가질 수 있는 거야! 네 아내가 이혼하자고 하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이라 생각해. 그것도 네 능력인 거야.” 하지만 모두가 잊고 있었다. 양혜린은 애초에 주씨 가문의 안주인이 되고 싶어서 주태준과 결혼한 게 아니라 그와 결혼했기 때문에 주씨 가문 안주인이 된 사람이었다. 그녀가 원한 건 돈이 아니었다. 그저 사랑이었다. 주태준이 그녀에게 마음을 표현하며 쫓아다닐 때 맹세하듯 했던 그 약속은 진심이었다. 다만 그 진심은 순식간에 변했고 사랑은 해처럼 떠올랐다가도 저물었다. 그래서 주태준이 자신의 백 번째 애인을 기쁘게 하려고 또다시 한강에서 사흘 밤낮을 불꽃을 터뜨리려던 그 순간 양혜린은 알았다. 이 결혼 생활은, 적어도 그녀의 마음속에서 완전히 끝났다는 것을. ... 처음 결혼할 때 그녀는 주태준과 혼인신고를 하는 데 단 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컴퓨터 앞에서 5분 만에 이혼 합의서를 작성했다. 그날 밤, 술 냄새와 옅은 향수 냄새를 몸에 두른 채 주태준이 돌아왔을 때 양혜린은 미리 준비해 둔 이혼 합의서를 들고 조용히 그의 앞에 내밀었다. 주태준은 현관에 느긋하게 기대어 선 채 셔츠 단추를 몇 개 풀어 쇄골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그 서류를 보며 눈썹을 튕겼고 잘생긴 얼굴에는 흥미로운 기색이 떠올랐다. “왜?” “당신이 애인을 위해 한강에서 사흘 밤낮 불꽃을 터뜨렸으니까.” 양혜린은 고개를 들어 바람기가 가득한 그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주태준은 잠시 멈칫하더니 더 호탕하게 웃었다. 마치 세상에서 제일 어처구니가 없는 농담이라도 들은 것처럼 말이다. “고작 그런 일로 이혼하겠다고? 이봐, 사모님, 언제부터 그렇게 속 좁아터진 거야?” “내가 첫 번째 애인이랑 침대에 나란히 누워있다가 당신에게 들켰을 때도 당신은 그냥 나한테 뺨 한 대만 갈구고 혼자 밤새 울었던 일부터 서른두 번째 애인이 당신이 제일 아끼던 소파에 립스틱 자국을 남겼을 때도 말없이 사람 불러 소파를 바꿨잖아.” “그리고 지난달에는 내 아흔아홉 번째 애인이 임신해서 당신이 직접 병원 데리고 가서 수술받게 했던 일까지... 그동안 이보다 더한 일도 수두룩했으면서 왜 이래? 그간 다 참고 견뎠으면서 이제 와서 이런 사소한 일로 나랑 이혼하겠다고?” 그는 늘 그랬든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형식적인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만해, 이제. 요즘 내가 바쁜 건 당신도 알잖아. 그래도 가영이랑은 두 달 됐고, 한 달만 더 지나면 석 달이야. 그때 헤어질게. 가영이랑 헤어지고 나서 시간 낼 수 있으면 나랑 같이 유럽으로 바람 쐬러 가자, 응?” 그의 입에서 나온 ‘가영이'는 현재 그의 애인이었다. 현재 젊고 예쁜 외모로 인기를 끌고 있는 모델이었다. 주태준은 모든 여자에게 똑같았다. 석 달, 그게 그가 정한 애인들의 유통기한이었고 누구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헤어진 다음에?” 양혜린의 목소리에는 미세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당신, 이번 애인이랑 헤어지고 나면 다른 애인 안 사귈 마음은 있고?” 주태준은 황당한 이야기를 들은 사람처럼 더없이 방탕하게 웃었다. 마치 아주 유치한 질문이라도 들은 듯 말이다. “안 사귈 마음이 있냐고? 당신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직도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바람둥이가 애인을 안 만들 리가 없잖아.” 그는 더 말할 가치도 없다는 듯 음도 맞지 않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그대로 욕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양혜린은 그의 자유분방한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그해 그녀는 국내 최대 방송사에 막 들어온 풋내기 신인이었다. 사람들에게 자신만만하게 소개할 작품은 없었고 예능 프로그램에서 임시 진행자로 얼굴을 비췄을 뿐이었다. 그렇게 맡게 된 첫 번째 중요한 인물 인터뷰의 대상이, 서울에서 이름을 떨치던 서울 최고의 재벌가 후계자인 주태준이었다. 스튜디오에서 그는 몸에 딱 맞는 정장을 입고 소파에 느긋하게 기대어 앉아 있었다. 장난기 가득한 눈빛은 유난히도 빛났고 처음부터 끝까지 의미심장한 미소를 그녀를 바라보아 양혜린은 몇 번이나 준비한 대사를 잊을 뻔했다. 촬영이 끝난 뒤 주태준은 곧바로 그녀를 찾아와 거침없이 마음을 표현하며 들이댔다. 매일 어김없이 999송이의 붉은 장미 꽃다발이 방송사로 배달되었고 신문 한 면을 통째로 사서 공개적으로 사랑을 고백했으며 그녀의 촬영장 밖에서 밤새도록 기다리기도 했었다... 그때 그는 말했다. 드디어 진짜 사랑을 만났고 마음을 다잡았으며 평생 그녀만 보고 살겠다고. 그의 사랑은 활활 타오르는 불처럼 뜨거웠고 결국 고요하게 얼어 있던 그녀의 마음속 깊은 빙산을 녹여 버렸다. 양혜린은 그의 화려한 연애사를 알고도 헤어날 수 없이 빠져들었다. 그저 자신이 그에게 특별한, 다른 여자와 다른 유일한 존재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한 번 바람둥이는 영원한 바람둥이라는 것을.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본성을 드러냈다. 매일 스캔들은 끊이지 않았고 애인들은 연달아 바뀌었다. 그녀도 처음에는 따지고 울고 히스테릭하게 매달리며 아주 작은 희망을 품은 채 그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점점 잦아지는 외박과 점점 성의 없어지는 그의 태도뿐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녀는 더 이상 따지지도, 화내지도 않게 되었다. 그녀는 그의 스캔들을 처리하는 법을 배웠고 가장 품위 있고 가장 관대한 방식으로 그의 문제를 정리해 주었다. 점차 모두가 그녀를 좋은 아내라 불렀다. 현명하고 기품 있으며 아량이 넓다면서 말이다. 시간이 너무 흐른 탓에 아마 주태준조차 잊어버렸을 것이다. 그들의 결혼이 사랑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그녀는 그를 사랑했기 때문에 결혼한 것이었다. 애초에 그의 집안이나 돈과 권력을 바란 게 아니었다. 그리고 그 역시 자신이 만든 문제를 처리해 줄 너그럽고 현숙한 아내를 원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해서 결혼했었다. 이번에 주태준이 애인을 위해 한강에서 터뜨린 그 불꽃은... 양혜린이 품고 있던 마지막 기대마저 완전히 태워버렸다. 양혜린은 더 이상 주씨 가문 사모님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되고 싶은 것은 양혜린, 바로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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