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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두 사람은 분명 오랜 지인이었다. 박지석 역시 공호열보다는 아니지만 나름 잘생기고 늠름해 내로라하는 귀공자인데 한순간에 들러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언제 해경에 왔어? 미리 얘기하지.” “어제 왔는데 너도 해경에 있을 줄은 몰랐네. 중서의학 회담에도 참석하고.” 데니스는 유창한 우리말을 구사했다. “도교 사원에 가서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했는데.” 두 사람이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이어가자 박지석은 눈치껏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러다 공호열과 마주쳤는데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혼혈 미남과 한창 신나게 얘기를 나누고 있는 권예진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두운 눈빛이 기쁜 건지 화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내일이 없이 사는 박지석이 말을 건넸다. “신의 형수님이 인기가 많네.” “이리저리 쓸데없는 사람이 꼬이는 데는 이유가 있지.” 공호열의 검은 눈동자가 서늘하게 빛나며 차갑게 말했다. 그가 이렇듯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는 일이 무척 드물었기에 박지석은 웃음을 참으며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리고 놀리듯 말했다. “질투하는 건 아니지? 몸매도 좋고 얼굴도 예쁜데 의술도 뛰어나잖아. 미모와 지성을 겸비했으니 인기가 많은 것도 당연하지. 너 복받았어.” 공호열은 부정하지도 않고 차갑게 한쪽 입꼬리만 올리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호열 씨?” 김다윤이 다가와 권예진이 남자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는 은근슬쩍 비아냥거렸다. “언니는 예전보다 더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아졌네요.” 모두를 놀라게 할 정도로 반짝반짝 빛나는 권예진의 모습에 질투가 나 당장이라도 잡아먹고 싶은 심정이었다. ‘순진하게 겨우 이 정도로 공호열과 어울리는 사람이 됐다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공씨 가문은 집안을 중요시하기에 아무리 뛰어나도 그녀를 바꿀 수는 없었다. “가자.” 공호열의 두 눈에 분노가 스쳐 지나가며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자 김다윤은 속으로 환호하며 얼른 따라나섰다. 보아하니 공호열은 권예진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박지석은 나란히 떠나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미간에 서서히 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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