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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권예진은 서둘러 일어나 문을 열었다. 어느 정도 거리를 뒀는데도 그에게서 풍기는 옅은 담배 냄새와 술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그 속에 나무 향이 묘하게 섞여 있었는데 나쁘지 않았다. 공호열이 갑자기 길고 힘 있는 팔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권예진은 미처 피할 새도 없이 그의 품에 안겼다. 흰 셔츠를 사이에 두고 남자의 체온이 전해졌고 단단한 가슴 근육이 느껴졌다. “뭐 하는 거예요?” 그녀는 긴장해 하며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그를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그는 팔에 힘을 더욱 가했다. 남녀의 힘 차이 때문에 그녀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순진한 척은. 나랑 밀당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공호열이 씩 웃으면서 차갑게 말했다. 하지만 나른하면서도 장난스러운 분위기가 섞여 사람을 홀리는 매력이 있었다. “결혼을 강요한 것도 모자라 알아서 제 발로 기어들어 오다니. 그렇게도 나랑 결혼하고 싶어?” “호열 씨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에요.” 권예진은 온몸이 굳어버렸고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쿵쾅거렸다. “이러지 말아요. 호열 씨 지금 많이 취했어요.” 공호열은 허리를 숙여 그녀의 빨간 귓가에 입술을 대고 속삭였다. “취하면 더 좋은 거 아니야?” 술을 마시긴 했지만 과음하진 않았다. 할아버지 병세가 위독해지면서 촌뜨기에게 결혼을 강요당했다는 것 자체가 그의 인생에서 씻을 수 없는 수치였다. 그 생각만 하면 그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김다윤을 보낸 후 박지석 일행과 술을 두어 잔 마셨다. 평소 자제력이 강한 편이라 취할 정도로 마시지 않았다. “뭘 하지 말라는 건데?” 그는 짓궂게 웃으면서 권예진의 귓불에 대고 뜨거운 숨결을 불어넣었다. 마치 전류가 흐르는 듯 권예진의 약한 신경을 자극했다. “지금 이러는 거요.” 권예진은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심장이 쿵쾅거렸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쿵. 그런데 그녀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손목에 통증이 느껴지더니 그대로 침대에 내팽개쳐졌다. 권예진은 얼굴을 찌푸리면서 몸을 일으키고는 불안한 마음으로 그의 다음 행동을 기다렸다. ‘남자가 왜 이렇게 변덕스러워.’ 그때 공호열이 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더니 차갑게 명령했다. “가져와.” 잠시 후 덩치 큰 남자 두 명이 들어왔고 그중 한 명이 술잔을 들고 있었다. 술잔을 본 순간 권예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김다윤과 성한빈이 유포리아에서 마신 술 행키팽키였다. “호열 씨, 무슨 뜻이에요?”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고 두려움에 뒷걸음질 쳤다. 공호열은 술잔을 들고 입꼬리를 씩 올리면서 그녀를 침대 머리맡 쪽으로 밀어붙였다. “다윤이랑 약속했어. 제대로 알아본 다음에 설명해주겠다고. 네가 할아버지 병을 고쳐주는 걸 봐서 끝까지 몰아붙일 생각은 없어. 이걸 마셔. 그럼 없던 일로 해줄게.” 권예진은 꼼짝도 하지 않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그는 인내심을 잃은 듯 얼굴을 잔뜩 찌푸렸고 눈빛에도 분노가 가득했다. 권예진은 마음이 심하게 요동쳤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알았어요.” 그러고는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가더니 공호열이 들고 있는 술잔을 빼앗았다. 그녀를 빤히 쳐다보던 공호열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왜 방금 이 여자를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 착각일 거야. 그래. 착각이야.’ 권예진은 술잔을 들고 공호열의 날카로운 시선을 마주했다. “내가 다윤이한테 몹쓸 짓을 했다고 단정 지은 것 같은데 이 술을 마시면 호열 씨도 다른 남자를 데려다 똑같이 갚아줄 건가요?” 그녀는 벌써 진정한 듯했다. 빨개졌던 얼굴이 창백해졌지만 여전히 눈웃음을 짓고 있었고 깊은 눈동자는 맑고 깨끗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의 단호한 눈빛에 공호열은 순간 흠칫했고 알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와 혼란스러웠다. 다시 입을 열었을 때 목소리가 더욱 차갑게 변했다. “그렇게 못 견디겠어? 네 얼굴은 두껍다 쳐도 공씨 가문의 체면은 생각해야지. 넌 남은 인생에 할아버지 병을 고치고 독수공방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만 명심해.” 그 어느 때보다도 강압적이었다. 권예진은 공한무가 그녀의 목숨줄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공호열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렸으니 끝까지 가야 했다.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럼 여자한테 차여도 공씨 가문의 체면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네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공호열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권예진은 술잔을 들고 그의 시선을 마주했다. 청순한 얼굴에 당황하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이라곤 없었고 오히려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술 한잔인데 별일이야 있겠어? 찬물로 샤워하면 되겠지, 뭐.’ 권예진이 술을 마시려던 그때 갑자기 손이 텅 비었다. 인내심을 잃은 공호열이 그녀의 턱을 잡고 억지로 술 절반을 들이부었다.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듯한 느낌에 권예진은 심하게 기침했다. 쨍그랑. 공호열이 술이 담긴 술잔을 바닥에 내던지자 유리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때 임길태가 본가의 전화를 받고 2층으로 올라왔는데 공호열이 술잔을 깨는 모습을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지?’ 오아시스에서 오랫동안 일했지만 공호열이 이렇게 화를 내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온몸에서 냉기를 뿜어 등골이 다 오싹해졌다. “무슨 일 있어요?” 공호열이 고개를 돌리자 임길태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말했다. “도련님, 본가에서 전화 왔는데...” “할아버지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요?” 가뜩이나 권예진의 의술을 의심하고 있었던 터라 임길태의 말을 듣자마자 무의식적으로 할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임길태가 대답하기 전에 험악한 얼굴로 권예진을 보면서 무섭게 말했다. “할아버지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집사님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좋은 소식일지도 모르잖아요.” 권예진의 얼굴이 비정상적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임길태를 보며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 “할아버지 깨어나셨나요?” 그녀는 자신의 의술에 자신이 있었다. 공호열은 그녀의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면서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좋은 소식? 수많은 전문가와 명의들도 고치지 못했는데.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저러는 거지?’ 임길태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네. 본가에서 전화 왔는데 어르신께서 깨어나셨답니다. 근데 정신 상태가 아직 좋지 않아서 푹 쉬셔야 하니 내일 오시라고 하네요.” 그 말에 권예진이 활짝 웃었다. “할아버지께 내일 가겠다고 전해주세요.” 공한무가 깨어났다는 소식에 공호열의 얼굴에도 기쁜 기색이 잠깐 스쳤다. 권예진은 그 모습을 놓치지 않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내 실력을 믿지 않더니 지금 좀 무안하죠?” 공호열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순간 주변의 공기가 얼어붙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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