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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강 대표는 좋은 사람이에요

하윤슬은 이렇게까지 일이 빠르게 굴러가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그가 무슨 말을 하든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몸에 걸쳐진 그의 재킷에서는 은은한 담배 향이 풍겨왔다. 단지 냄새일 뿐인데도,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꼬르륵. 긴장이 풀리자 배에서 아우성이였고 하윤슬은 민망함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밥 안 먹었어요?” “아니요. 먹었어요...” 당황한 그녀는 얼버무리듯 대답했고 다행히 강태훈은 더는 묻지 않았다. 대신 손목시계를 힐끔 본 뒤 담담히 말했다. “어머님은 VIP 병실로 옮겼어요. 전담 간호사도 붙여뒀고 깨어나시면 바로 의사에게 연락이 올 겁니다. 지금은 일단 나랑 같이 가죠.” “가다니... 어딜요?” 뜻밖의 말에 하윤슬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 “밥 먹으러요.” “저, 진짜 먹었어요.” 강태훈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한마디를 더했다. “내가 아직 안 먹었어요.” 그제야 하윤슬은 더는 거절할 수 없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강태훈이 먼저 걸음을 옮기고 그녀는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그 뒤를 따랐다. ‘누군가에게 기대도 된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차에 올라탄 뒤에도 하윤슬은 내내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신발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옆자리에서 들려오는 일정한 숨소리에 조심스레 고개를 돌렸다. 그는 꽤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어느새 깊이 잠들어 있었다. 차창 너머로 스쳐 지나가는 가로등 불빛이 그의 얼굴에 얇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길고 짙은 속눈썹 아래, 선이 뚜렷한 이목구비와 날렵한 턱선은 잠든 얼굴임에도 어딘가 위압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의 잠든 모습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중학생 시절, 하윤슬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수업에 자주 늦곤 했다. 안쓰럽게 여긴 담임 선생님이 밤 자율학습이 끝난 후 그녀만 따로 불러 무료로 보충 수업을 해주었고 그때마다 강태훈도 학교에 남아 있었다. 집안 사정상 귀가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따로 공부하거나 하지 않고 책상 위에 고개를 푹 숙인 채, 그저 조용히 운전기사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졸고 있었다. 그 시절의 강태훈은 항상 농구복 위에 교복 상의를 걸쳐 입고 다녔다. 짧게 깎은 머리와 반짝이는 눈빛, 큰 키에 또렷한 이목구비까지, 외모만으로도 눈에 띄었지만 성적까지 늘 전교 1등이었다. 그에게 쏟아지는 고백 편지는 가방 하나로는 모자랐고 종종 그녀 자리로 잘못 배달되는 일도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하윤슬은 이제 와서 이런 식으로 다시 얽히게 될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 그리고 내일, 두 사람은 혼인신고를 하게 된다. 물론 이 결혼에 사랑 같은 건 없다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다. 그에게 필요한 건 그저 방패막이거나, 혹은 그녀가 모르는 다른 이유일 것이라. 차는 번화한 시내를 지나 조용한 골목 어귀의 작은 식당 앞에 멈춰 섰다. 그제야 강태훈은 천천히 눈을 떴고 하윤슬은 재빨리 그를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차에서 내리고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하윤슬은 아마 또 일 때문일 거라 생각하고 조용히 뒷좌석에 앉아 기다렸다. 그러다 운전석에 앉은 비서와 눈이 마주쳤다. “아까 통화한 사람, 접니다.” 하윤슬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까 정말 감사했어요.” “제가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대표님 회의 중이셨는데 말씀드리자마자 바로 전화를 걸었고 안 받으시니까 곧장 병원으로 향하셨어요.” 그 비서의 말투와 눈빛엔, 어딘지 모르게 아부 섞인 뉘앙스가 묻어 있었다. 그는 둘 사이를 오해하고 있는 듯했고 아마 그녀가 강태훈에게 아주 특별한 존재라고 착각하는 눈치였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던 하윤슬은, 결국 뻣뻣한 웃음을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네. 강 대표님은 정말 좋은 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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