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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알면서 모른 척했던 시간

“좋아요.” 강태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제야 아는 척하는 거예요? 그럼 이제 서로 들켰으니 말도 놓지.” 그 말에 하윤슬은 눈을 가늘게 뜨며 살짝 웃어 보였다. “괜히 오해 살까 봐요. 처음부터 동창이라고 밝혔으면 혹시라도 제가 뒷문으로 들어가려는 줄 알까 봐서요.” “나는 누구에게도 편법을 허용하지 않아.” 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기업을 이끄는 리더로서의 단호함과 위엄이 서려 있었다. “기회는 줄 수 있어도 결과는 각자의 몫이니까.” 이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지난번 출장 때 그녀는 이미 그 의미를 뼈저리게 느낀 바 있었다. 만약 마지막에 한양 쪽 보충 금액이 기준치를 초과했다면 강태훈은 망설임 없이 3팀 전체를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그 프로젝트를 잘라냈을 것이다. 그런 그의 모습을 다시 떠올리던 하윤슬은 잠시 입을 열까 말까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듯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정말 말 놓아도 돼요?” 강태훈은 눈을 맞추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이미 동창이라고 들켰는데 굳이 존댓말 쓸 필요 있을까? 나도 편하게 말할게.” 그 말에 하윤슬은 어쩐지 웃음이 났다. “그럼... 나도 그렇게 할게.” 그는 잠깐 멈칫했지만, 곧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대꾸했다. “참, 다음 달 초에 강주에 출장 가야 해. 세진 컴퍼니 본사가 거기 있어. 너도 같이 가.” 그 말을 들은 하윤슬은 얼굴 가득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회사에 도착한 하윤슬은 들어서자마자 내부 메일 한 통을 확인했다. 보낸 사람은 진성호였다. 내용은 하영 그룹이 외부 차입을 수락했고 자금 실체에 맞춰 보증서도 다시 작성하겠다는 것이었다. “네가 다시 가서 설득한 거야?” 잠시 후, 진성호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그녀의 사무실로 직접 찾아왔다. 하윤슬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글쎄요, 아마 하영 쪽에서 스스로 뭔가 깨달은 게 있지 않았을까요.” 물론, 강태훈이 하영 그룹 담당자의 약점을 쥐고 있었고 그 덕에 상대가 꼼짝 못 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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