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03장 벙어리로 만들어버려요
왕씨 아주머니는 난처해졌다.
“그게...”
민서희를 안심시키려 그녀는 엄청 고심했었는데 민서희는 오히려 웃음을 터뜨리게 되었다.
다만 그녀의 눈가에 물안개가 조금 끼어있었다.
“제가 긍정적인 편이라 괜찮아요. 근데 앞으로는 사모님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박지환 시가 들으면 제가 지시한 줄 알아요.”
“그럼요. 민서희라는 이름이 얼마나 듣기 좋은데요. 젊어 보이기도 하고요.”
가시밭에 앉은 것만 같은 왕씨 아주머니는 얼른 다른 화제로 말을 돌리다 문득 뭔가가 떠오른 듯 입을 열었다.
“참, 오늘 오후에 한 남자가 민서희 씨 찾으러 왔었어요.”
“남자요?”
한성에 친구가 없는 민서희는 눈살을 찌푸렸다.
왕씨 아주머니가 귀띔을 해주었다.
“이민준 씨예요.”
“이민준 씨요.”
박지환이 이민준을 다른 곳으로 배치한 줄로만 알고 있었던 민서희는 이민준이 찾아왔었다는 소식에 당혹스러웠다.
그녀는 문 앞을 바라보며 물었다.
“박지환 씨 갔어요?”
“네. 갔어요.”
민서희는 잠시 침묵하다 말을 이었다.
“이 일은 박지환 씨에게 알리지 마세요. 제가 다른 남자하고 내통한다는 걸 알게 되면 박지환 씨가 저를 죽일 수도 있어요. 그때 괜히 아주머니한테 불통이 튀어서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고요.’
왕씨 아주머니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대표님이 그렇게나 무서워요?”
민서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음번에 이민준 씨가 저를 찾으러 오게 되면 박지환 씨가 없는 틈을 타 저한테 직접 데려오세요.”
왕씨 아주머니는 바쁘게 고개를 끄덕거렸고 민서희는 침대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이민준이 무슨 일로 찾아온 거지?
그리고 서이준.
서이준하고 연락이 끊긴 지 오래인 민서희는 표정이 복잡해 보였다.
예전에는 적어도 이틀에 한 번꼴로 전화를 걸어 상황을 교환하고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나 많은 일들이 벌어졌는데도 서이준은 사라진 것만 같았다.
민서희는 머뭇거리며 아래층으로 내려가 장씨 아주머니에게 휴대폰의 행방을 물었다.
휴대폰을 손에 넣자마자 민서희는 서이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통하지 않았다.
마음이 조마조마해진 민서희는 입맛조차 없었다.
저녁에 박지환이 돌아와 곧바로 그녀의 방을 향했다.
“서이준한테 왜 전화했어?”
민서희는 고개를 번쩍 들어 표정이 굳어버렸다.
“감시했어요?”
박지환은 양복을 벗으며 되물었다.
“얌전하게 굴어. 안 그러면 손모가지 잘라버릴 거야. 네가 조용히 있는 법을 모르면 나한테도 방법이 많거든.”
민서희는 치가 떨렸다.
“그냥 벙어리로 만들어버리지 그래요? 눈도 멀고 말도 할 수 없는 데다 움직일 수도 없게 되면 앞으로 그냥 도구마냥 당신이 하라는대로 움직일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그거 괜찮은 생각이네.”
담담한 어조로 말을 내뱉으며 앞으로 걸어 나온 박지환은 그녀의 입술을 손끝으로 누르고 눈빛은 갑자기 흐릿한 애매모호함을 띠었다.
“근데 목소리가 듣기 좋아서 일단은 그냥 내버려두려고.”
민서희는 멈칫하다 금방 정신을 차리고 얼굴에 뜨거운 열기를 띠며 분노했다.
“당신... 참 뻔뻔해요!”
박지환은 눈빛이 어두워졌다.
“평소에는 능란하게 말을 잘 늘어놓더니만 오늘은 왜 더듬거리는 거야?”
머릿속에 민서희가 귀엽다는 생각이 들려던 찰나 얼굴이 차가워진 박지환은 민서희가 답하기도 전에 그녀의 손목을 잡아 침대에 내동댕이쳤다.
민서희가 왜 자기한테 이토록 치명적인 매력을 안겨주는지 모르지만 그는 어차피 이해도 할 수 없는데 하고 싶은 대로 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다 싫증이 나면 그 싫증도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다.
그의 몸이 위로 올라오자 민서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밀쳐냈다.
박지환이 거센 힘으로 그녀를 움켜쥐자 그녀는 몸을 웅크리게 되었다.
“아파요...”
귀신이 곡할 노릇으로 동작을 멈춘 박지환은 그녀의 창백한 안색을 살펴보니 정말 아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