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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날 배신한 건 너야

이나연은 혼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아이의 싸늘한 시신을 품에 안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밥도 물도 거부한 채 그렇게 하루 밤낮을 버텼다. 다음 날 아침, 문이 벌컥 열리고 박재혁이 허둥지둥 병실로 들어섰고 이나연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아주 잠깐 그가 아이를 그리워해 찾아온 걸까, 아이를 한 번이라도 더 안아보러 온 걸까, 그런 기대가 들었다. 하지만 박재혁은 아무 말 없이 아이를 그녀의 품에서 거칠게 낚아채더니 마치 쓰레기라도 되는 듯 병실 구석에 툭 내던져버렸다. 그리고 이나연의 팔목을 꽉 잡고 병실 밖으로 끌어냈다. “이나연, 가희가 아이를 낳고 나서 급성 백혈병 판정을 받았어. 지금 당장 골수를 이식받아야 해. 소윤이랑 일치 판정 나왔으니까 곧 소윤이가 가희에게 골수를 기증할 거야.” “뭐라고?” 딸의 이름을 듣자 이나연은 마치 찬물을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박재혁을 노려봤다. 그들의 아들이 떠난 지 하루밖에 안 됐는데 그녀와 상의 없이 딸 박소윤의 골수를 이가희에게 이식하겠다니? 하지만 박재혁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네가 우리 아들을 죽게 만들고 가희를 계속 다치게 했잖아. 이번엔 네가 보상할 차례야.” “안 돼!” 이나연은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단호하게 거절했다. 박소윤은 지금까지 깨어나지도 못하고 병상에 누워 있는데 그런 아이에게서 골수를 뺀다니? 그 작은 몸으로 이식 수술을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나연은 이미 한 아이를 잃었는데 더 이상 한 명 더 잃을 수는 없었다. “박재혁, 소윤이를 건드릴 생각하지 마. 네가 좋아 죽는 이가희는 날 몇 번이나 함정에 빠뜨리고 망가뜨렸는데 왜 내 딸이 걔한테 골수를 줘야 해? 아직 너무 어린 데다가 의식도 안 돌아온 애한테 너무 가혹한 거 아니야? 난 죽어도 동의 못 해!” 그녀는 주먹을 쥔 채 핏발이 선 눈으로 박재혁을 바라보았다. “거짓말은 기가 막히게 잘하네? 내가 다 봤어! 매번 가희를 괴롭힌 건 너였잖아!” 박재혁은 화가 잔뜩 났지만 애써 억누르며 말했다. “네가 아니었으면 가희가 강간당할 뻔하지도 않았고 유산할 뻔할 일도 없었어!” “아니야! 그건 전부 다 이가희가 꾸며낸 일이야!” 이나연은 너무 흥분해서 그의 옷깃을 붙잡고 소리쳤다. “소윤이는 당신의 친딸이야! 소윤이에게 골수를 기증시키는 건 애를 죽이겠다는 소리랑 똑같아!” 그러자 박재혁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친딸? 웃기지 마.” 그는 냉정하게 쏘아붙였다. “내가 너랑 잤을 때 언제 콘돔 안 꼈어? 그리고 내 눈으로 직접 네가 딴 남자랑 침대에서 뒹구는 거 봤어. 아직도 내 앞에서 깨끗한 척할래?” “아니야!” 이나연은 거의 비명을 지르듯 반박했다. “나한텐 당신밖에 없어!” 이가희는 확실히 강간당할 뻔한 영상을 찍긴 했지만 사실 그 영상 속 남자들은 그녀가 데려온 사람들이었고 마지막에 그녀가 발버둥 쳐서 강간당하지는 않았다. 이나연은 그 일에 대해 수없이 설명했지만 박재혁은 단 한 번도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의 믿음은 오로지 이가희에게만 향해 있었다. “하!” 박재혁은 코웃음을 치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이나연을 바라보았다. “너 같은 여자들은 늘 그런 말을 하더라고. 소윤이가 가희한테 골수 기증하는 건 이미 결정된 일이야. 난 너한테 물어보려고 온 게 아니고 그냥 통보하러 온 거야.” 그는 그렇게 말하곤 옆 침대에 누워 있는 박소윤을 안아 들었다. 그리고 단호한 걸음으로 병실 밖을 향해 걸어 나갔다. “박재혁! 거기 서! 소윤이를 내려놔!” 이나연은 필사적으로 따라가려 했지만 막 일어서려는 순간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갑자기 아래에서 피가 쏟아지듯 흘러나왔고 병원복에 진한 빨간색이 퍼져갔다. 그녀는 절망 속에서 미쳐버릴 듯 소리쳤다. “박재혁! 소윤이는 당신의 친딸인데 어떻게 애한테 그런 짓을 해! 설령 당신 딸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어린 애한테 어떻게 이렇게 잔인한 짓을 할 수 있냐고!” 그 절규는 병원 복도를 가득 울렸고 박재혁은 그 소리에 가슴이 찢기는 느낌이었다. 그는 아직도 자신이 이 여자 때문에 마음이 아플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아예 심장을 도려내고 싶었다. 게다가 혹시나 박소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이나연이 너무 속상해할까 봐 걱정되기도 했다. 박재혁은 골수를 채취해도 박소윤은 무사하다는 의사의 말을 몇 번이나 확인했고 그래서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젠장. 내가 미쳤지.” 그는 이나연을 감히 이렇게 제멋대로 굴게 만들었다는 걸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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