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권도현은 윤서아의 새빨갛게 달아오른 눈가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다시 그녀를 끌어안으려 했다.
“서아야, 나도 그게 너한테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 하지만 하린이는 네 작품을 진심으로 좋아했어. 네가 어머님께 품고 있는 사랑이랑 그리움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해주는 거잖아. 그게 뭐가 그렇게 잘못됐어?”
윤서아는 더는 참지 못했다.
그녀는 뻗어오는 그의 손을 꽉 깨물어버렸다.
조금 전까지, 아주 잠깐이라도 흔들렸던 자신이 견딜 수 없이 비참했다.
권도현이 짧은 신음을 흘렸지만 물러서지는 않았다.
그녀는 입안에 비릿한 피 맛이 퍼지고 나서야 겨우 입을 뗐다.
“도현 씨,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요? 왜 저한테 이렇게까지 하는 거예요?”
권도현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서아야... 하린이 눈이 너랑 많이 닮았어. 그래서 너처럼 또 그런 일을 겪게 두고 싶지 않았을 뿐이야.”
윤서아는 세상에서 가장 우스운 농담을 들은 것처럼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나랑 닮았다는 이유로 지켜주고 싶어서... 정작 진짜 나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하린 씨를 지킨다고?’
“서아야...”
“만지지 마세요.”
윤서아는 그의 손을 쳐내며 온 힘을 모아 그의 뺨을 후려쳤다.
짝!
권도현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잠깐의 정적 끝에 윤서아는 떨리는 숨을 꾹 눌러 삼키고 입을 열었다.
“당신, 진짜 역겨워요. 너무 역겨워서 토 나올 것 같아요. 저 지금 바로 하린 씨 신고할 거예요. 엄마한테 드리려고 만든 선물이 그런 사람 손에 있는 건 절대 못 봐요.”
권도현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
그는 인내가 완전히 바닥난 사람처럼 윤서아의 휴대폰을 확 빼앗았다.
“그만해, 그림 하나 때문에 이렇게까지 떠들썩하게 만들 필요 있어?”
그는 말하는 동시에 백지 수표 한 장을 꺼내 윤서아 앞에 내밀었다.
“금액은 마음대로 써. 네 작품 권리는 내가 사는 걸로 치자. 그리고 하린이 수상작에도 네 이름을 넣어 줄게.”
그는 창백해진 윤서아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경고를 덧붙였다.
“적당히 해. 더 떠들면... 너답지 않게 품위 없어 보여.”
윤서아가 비웃으며 되받아치려는 순간 김하린에게서 갑자기 전화가 걸려 왔다.
“도현 오빠! 제 작품, 1등으로 내정됐어요! 진짜 고마워요. 서아 언니가 아이디어를 줘서 가능한 거였어요. 내일 시상식인데 언니도 꼭 와서... 같이 축하해줘요.”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그녀의 웃음소리는 독이 묻은 칼날처럼 윤서아의 심장을 쿡쿡 찔렀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했다.
“저는 안 가요.”
이어서 들려오는 김하린의 목소리에는 억울함이 가득 묻어났다.
“서아 언니... 아직도 제가 미워요? 죄송해요, 저는 그게 언니가 어머니한테 드리려고 만든 건지는 진짜 몰랐어요. 그냥 첫눈에 너무 마음에 들었고 너무 공감돼서 저도 모르게...”
그녀는 울먹이며 덧붙였다.
“언니가 안 오면 저는 평생 제 자신을 용서 못 할 것 같아요.”
윤서아가 어이없다는 듯 반박하려는 순간 권도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서아 데리고 갈 게.”
그는 그렇게 말하곤 전화를 끊어버렸다.
“도현 씨!”
윤서아는 분노로 온몸이 떨렸다.
“당신이 뭔데 제 결정을 대신하세요?”
권도현은 눈살을 찌푸린 채 완전히 인내심이 완전히 바닥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님이 지금 편히 쉬고 있는 곳을 누가 마련해 줬는지 잊지 마. 성남시 추모 공원에 있는 그 자리, 권성 그룹 소유 부지야. 너도 어머님이 이런 사소한 일로 방해받는 건 싫지?”
윤서아는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녀는 문득 3년 전을 떠올렸다.
황정희는 임종을 앞두고서도 그녀의 손을 놓지 않은 채 마지막 힘을 쥐어짜듯 말했다.
“서아야... 나 죽으면 멀리 묻어 줘. 네 아빠가 다시는 못 찾게. 난 그 사람,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
윤서아는 황정희를 자유롭게 해주고 싶어 몰래 그녀의 유골을 옮겼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윤경수는 분노했고 사람들을 데리고 와 억지로 이장을 하려 했다.
그때도 권도현이 그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서아 어머니는 제 어머님이기도 합니다. 누구든 그분의 안식을 방해한다면 제가 가만두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권도현은 윤서아의 손을 잡은 채 황정희의 묘 앞에서 맹세했다.
“서아야. 내가 너랑 같이 어머님이랑 전부 지켜줄게.”
그날, 어둠 속에 갇혀 있던 윤서아에게 그의 온기 어린 손길과 흔들림 없는 눈빛은 유일한 구원이자 빛이었다.
그러나 불과 3년 뒤, 귓가에 그토록 선명했던 그날의 맹세가 무색하게도 모든 것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뒤틀려 있었다.
한때 유일한 빛이었던 그는 이제 그녀의 가장 소중한 것을 인질 삼아,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숨통을 조여오는 위협적인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녀는 눈가가 뜨겁게 부풀어 올랐지만 끝내 눈물을 삼켜냈다.
“저... 도현 씨가 너무 싫어요. 정말, 정말 싫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