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화
내가 있는 걸 본 간호사는 금세 웃음을 거두고 얌전히 자세를 고쳐 앉았다.
“허 선생님이 환자들한테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모르겠는데요. 다들 허 선생님만 믿고 있어요.”
그러면서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근데 허 선생님도 담당 환자가 이미 많아서 더는 감당이 어렵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진 선생님께 부탁드릴 게 있대요.”
그녀는 내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어갔다.
“이번에 진 선생님 명의로 입원한 환자들을 그대로 두고 회진이랑 약 처방 수술은 허 선생님이 맡는 걸로 하면 안 될까요?”
간호사는 꼭 좋은 일이라는 듯 덧붙였다.
“오히려 잘된 거 아니에요? 진 선생님은 이제 좀 쉬실 수 있고 환자는 진 선생님 명의로 남아 있으니 월급도 줄어들 일 없고요.”
‘내 일을 가져가면서도 나한텐 손해 하나 없다고?’
그럴듯한 말이었지만 나는 속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허준호가 분명 어디선가 내 평판을 망가뜨리는 말을 흘렸고 그 때문에 환자들의 태도가 그렇게 달라졌던 거였다.
나는 차분히 입을 열었다.
“오늘 환자 보호자들이 내더러 의사로서의 도덕성이 없다고 했던데 무슨 얘기인지 알아봐 줄 수 있어요?”
간호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혹시 그게 뭔지만 알아 오면 제가 따로 밥 살게요. 어디든 좋아요.”
나는 허준호의 제안을 받아들이지도 거절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내 의견이 반영될 일도 아니니까. 환자들은 이미 나를 거부했고 허준호는 그걸 알면서도 굳이 간호사를 통해 내게 전한 거였다.
자신이 이겼다고 과시하려는 의도였고 내 의사는 그저 형식에 불과했다.
“정말요? 진짜 사주실 거예요?”
간호사는 눈을 반짝이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럼 제가 확실하게 알아 올게요.”
그날 이후로 나는 정말 손 하나 까딱할 일이 없었다.
진료도, 수술도, 회진도 없으니 병원에 앉아 있는 시간이 그저 멍하니 흐를 뿐이었다.
의사가 된 후 처음 겪는 일상이었다.
그러던 중, 다른 간호사가 문을 열고 들어와 말했다.
“진 선생님, 506호 환자분이 찾으세요.”
나는 순간 멈칫했다.
‘506호?’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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