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나는 병원에서 윤시원이 깨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녀는 비스듬히 눈을 뜨고 나를 보더니 뭐라 말하려 했지만 목이 잠겨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면봉에 물을 묻혀서 그녀의 입술을 적셔주었다.
“아직은 몸이 많이 허하니 말하지 말고 푹 쉬어요. 걱정 마세요. 이제 후유증은 없을 테니까.”
그녀는 검은 눈동자를 깜빡거렸다. 햇살이 내리쬐자 반짝이는 눈동자가 유난히 아름다웠다.
말을 할 수 없는 윤시원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간호사를 불러와서 주의사항을 잔뜩 알려줬다.
이에 간호사가 참지 못하고 장난 조로 말했다.
“선생님, 어제부터 계속 똑같은 말씀이라 귀에 가시 박힐 지경이에요. 제가 알아서 하니 긴장 좀 푸세요. 이 환자분이 꼭 마치 선생님 아내분 같단 말이에요.”
나는 정색하며 간호사를 노려봤다.
“농담도 그런 농담은 하지 마. 시원 씨한테 안 좋아.”
간호사는 재빨리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윤시원을 또다시 바라봤다.
“푹 쉬고 있어요. 그럼 이만.”
병실을 나설 때 간호사가 나지막이 윤시원에게 말하는 걸 엿들었다.
“진 선생님께서 시원 씨를 꼬박 하룻밤이나 지켜 주셨어요.”
고개를 돌리자 마침 윤시원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내게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미소는 마치 봄날의 벚꽃처럼, 아름다운 불꽃놀이처럼 내 마음을 화사하게 했다.
잠시 넋 놓고 있을 때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현 씨 이래서 나랑 파혼하려던 거야?”
“여긴 왜 왔어?”
나는 미간을 확 구겼다. 강윤서에게 이미 충분히 설명했는데 병원까지 찾아올 줄이야.
게다가 윤시원의 병실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저 여자랑 바람 나서 갑자기 나랑 헤어지자고 한 거잖아! 우현 씨가 그러고도 남자야? 우리 곧 결혼을 앞두고 바람이 웬 말이냐고? 나한테 미안하지도 않아?”
“대체 뭐라는 거야? 여기 병원이야, 조용히 해. 그리고 저분은 내 환자야. 행패 부리지 마 강윤서!”
나는 차오르는 분노를 꾹 짓눌렀다. 윤시원이 이제 막 수술을 마쳤는데 강윤서가 한바탕 난리를 치면 자극을 받고 무슨 문제라도 생길 것 같았다. 더는 그녀에게 후유증을 남겨주고 싶지는 않았다.
“뭐? 행패? 내가 우현 씨 집에서 밤새 기다렸는데 왜 외박했어? 저 여자랑 함께 있으려고 그런 거잖아! 내 말 틀렸어?”
강윤서는 윤시원에게 삿대질하며 이성을 잃은 듯 미쳐 발광하기 시작했다.
“이 사람 내 남자야! 네가 뭔데 감히 내 남자를 뺏어가?”
윤시원은 사색이 된 채 고개를 내저으며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그녀는 입을 벌려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그저 눈물을 머금으며 무기력하게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안쓰러운 마음에 강윤서의 손을 확 잡아챘다.
“당장 나가. 여기서 소란 피우지 말고!”
“결혼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으면 절대 못 나가!”
강윤서가 이토록 막무가내로 나오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 그녀가 점점 더 혐오스러워질 뿐이었다.
“결혼이 목적인 거지?”
더 이상 윤시원을 방해할 수도 없고 동시에 강윤서에게 복수할 방법이 하나 더 늘었다.
“그래, 맞아.”
“알았어. 약속할게. 결혼식 예정대로 진행해. 이제 됐지?”
강윤서는 마침내 활짝 웃었다.
“진작 이러면 얼마나 좋아? 뭣 하러 결혼으로 밀당이냐고?”
그녀는 귀밑머리를 뒤로 넘기면서 의기양양하게 윤시원을 쳐다봤다.
한편 윤시원은 창백한 얼굴에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그럼 예식장에서 만나. 기대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