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장

소만리는 곧바로 기모진을 찾아갔다. 그는 평소처럼 고귀한 자태로 책상에 앉아 서류를 검토하며 그녀가 들어와도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5천만 원을 빌려 달라는 소만리의 부탁에 기모진은 피식 웃었다. "소만리, 돈은 내게 숫자에 불과해, 근데 너에게는 한 푼도 못 줘.” 소만리는 이를 악물며 계속 부탁했다. “외할아버지가 폐암에 걸려서 치료비가 필요해, 부탁할게 모진아, 내가 꼭 갚을게.” "갚아? 네가 무슨 수로 갚아?" 그는 그녀가 죽어도 이 큰돈을 갚을 능력이 없는 것을 알지만 갑자기 한 발 물러서며 말했다. “못 빌려줄 것도 없지, 내 요구만 들어준다면.” 소만리가 옷자락을 꽉 쥐었다. 기모진의 요구는 소만영을 자신의 아내로 삼고, 소만리를 내연녀로 둔갑하는 것이었다. 소만리는 급격히 아파오는 마음을 억누르고 애써 평온한 척 말했다. "모진아, 그거 말고는 무엇이든 다 들어줄 수 있어." 기모진이 서류를 덮으며 훤칠한 몸집에 싸늘하게 굳은 눈빛으로 말했다. "이거 아니면 돈 한 푼 빌릴 생각 마.” 소만리는 돌아서는 기모진의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모진아 제발, 외할아버지 좀 도와줘. 할아버지 병세는 더 이상 심각해지면 안돼.." 기모진은 낮은 목소리로 냉랭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래서?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소만리는 등골이 서늘해졌고, 눈앞의 기모진이 오늘따라 더 낯설고 차가웠다. 깊은 생각에 빠지자 소만리는 턱이 몹시 아팠다. 정신을 차렸을 때 기모진의 섬뜩한 눈빛에 비웃음이 가득했다. "내가 방법 알려줄게, 돈이 급하면 몸이라도 팔아, 네 그 뻔뻔한 얼굴로 5천만 원은 별거 아니잖아.” 그는 그녀를 뿌리치고 그녀의 눈앞에서 멀어져갔다. 기모진의 차가운 말이 소만리의 가슴에 못을 박인듯 아팠고 그녀의 종양이 더 아파졌다. 그녀는 종양이 난 자리를 감싸 안으며 가방에서 진통제 한 알을 꺼내 먹었다. 기모진의 싸늘한 말이 여전히 귓가에 맴돌자 그녀는 애써 눈물을 삼키며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기모진의 말이 맞다. 자신을 팔아서라도 외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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