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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화 그 여자도 맛을 보게 해주지

나는 한동안 그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뒤, 전화를 끊은 주성훈이 고개를 돌려 내 시선과 맞닥뜨렸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고 그의 앞에 다다랐을 땐, 이미 얼굴에서 모든 감정을 지워낸 뒤였다. “그런데... 강민지가 안 보이네요.” 주성훈은 대답 대신 나를 한참 바라보다가 낮게 물었다. “무슨 일 있어?” 나는 순간 멈칫했다. ‘혹시 내 속마음을 눈치챘나?’ 하지만 내 속내를 말할 수 없어 고개를 저으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아니요. 그냥... 외할아버지가 생각나서요.” 그는 내 표정을 살피더니 차분히 말을 이었다. “강민지는 소석진이 잡힌 걸 알고 바로 고향으로 도망쳤어.”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도망치는 건 또 빠르네요...” 그가 곧장 물었다. “그래서, 그 여자를 어떻게 할 생각이야?” 나는 사실 아직 명확한 계획이 없었다. “일단... 애는 낳게 두려고요.” 어차피 강민지를 그냥 보내줄 생각은 없었다. 갱생은 불가능했고 용서받을 가치도 없으니까. “그래.” 주성훈이 가볍게 대답하더니 느닷없이 말했다. “네 방 좀 보여줘.” 나는 의아하게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는 내 손을 잡으며 부드럽게 웃었다. “나 처음 왔잖아. 네가 어릴 때 어떤 방에서 지냈는지 궁금해.” 그 손끝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묘하게 아릿했다.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서 왜 나를 이렇게 흔드는 걸까.’ 이 순간만 놓고 보면 그는 마치 나를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 이건 그저 달래기 위한 연기일 뿐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체념하듯 2층으로 그를 안내했다. 방 안은 이미 강민지가 새로 꾸며놓은 뒤라, 내가 살았던 흔적은 거의 사라지고 없었다. 그도 눈치챘는지 담담히 말했다. “그럼 네가 말로 들려줘.” “이 방은... 예전에 외할아버지가 직접 꾸며주신 거예요.” 분홍색 벽지에 유럽풍 공주 가구, 방 곳곳에 널린 인형들, 그리고 책장 가득한 만화책까지... 나는 천천히 기억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 시절 외할아버지는 나를 위해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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