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도범이 감격에 잠긴 사이, 꼬질한 모습을 한 여자아이가 문 앞으로 가더니 조심스럽게 안쪽을 살펴봤다. 네 다섯 살 정도 돼 보이는 야윈 여자아이의 피부는 조금 노란 것이 영양부족 상태인 듯했다. “눈이 시율이랑 닮았네!” 아이의 귀여운 모습을 본 도범이 웃었다. 그때 박 씨 집안의 하인 하나가 나오더니 문을 지키고 선 보디가드를 보곤 아이를 데리고 구석으로 갔다. 여자아이가 박시율을 닮은 덕분인지는 몰라도 도범은 아이에게 눈길이 갔다. 그는 천천히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하인은 주머니에서 몰래 만두 두 개를 꺼내더니 아이에게 건네줬다. “수아야, 오늘은 두 개 밖에 없어!” “고맙습니다, 예쁜 언니!” 만두를 본 아이는 연신 침을 삼켰다. 뱃속에서도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배가 많이 고픈 것이 분명했다. “얼른 먹어!” 하인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도련님도 참, 이렇게 매정할 필요는 없는데!” “아니요, 가져가서 엄마랑 할아버지, 할머니랑 같이 먹을 거예요!” 만두를 손에 든 아이가 행복하게 웃었다. 손안에 든 만두 두 개는 아이에게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듯했다. 그때, 스포츠카 한 대가 두 사람 옆에 멈춰 섰다. 스포츠카 뒤를 따르던 대여섯 대의 아우디 A6도 멈췄다.  “박이성?” 도범은 한눈에 남자를 알아봤다. 5년이 지나 박 씨 집안 도련님도 자랐지만 변화가 크진 않았다. 그는 여전히 곱고 보드라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도, 도련님…”   하인은 박이성을 보더니 안색이 새하얘져서는 얼른 만두를 빼앗아 등 뒤로 감추곤 벽 옆으로 물러섰다.   “지유야, 뭘 숨기는 거야? 꺼내 봐, 내가 확인해 봐야겠으니까!”   박이성이 웃으며 물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인은 연신 고개를 저었고 여자아이 수아는 마치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수아야, 수아가 말해 봐, 이 언니가 방금 너한테 무엇을 준 거야?”   박이성이 무릎을 굽히고 안더니 앞에 있는 여자아이에게 물었다.   “안 알려줄 거예요, 나쁜 사람, 아주아주 나쁜 사람!”   수아가 고개를 들더니 입을 삐죽 내밀곤 말했다.   “나쁜 사람?”   아이의 말을 들은 박이성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네 엄마가 박 씨 집안의 이름에 먹칠을 하면서 너를 낳았으니 네 엄마야말로 나쁜 사람이지!”   말을 마친 박이성이 몸을 일으키더니 보디가드에게 눈짓했다.   두 명의 보디가드는 서로 마주 보더니 뜻을 알아차리곤 만두 두 개를 빼앗았다. “지유 담도 크네, 감히 이런 잡종한테 먹을 걸 가져다주다니, 죽고 싶어서 그래?”   박이성이 차갑게 웃으며 지유의 뺨을 때렸다.   “나쁜 사람, 예쁜 언니 때리지 마세요!”   그 모습을 본 아이가 화가 나서 달려와 박이성의 다리를 잡더니 깨물기 시작했다. “아!”   박이성이 고통스럽게 소리를 질렀고 수아를 바닥으로 밀쳤다. “너 개야? 잡종 주제에 감히 날 깨물어?”   “흑흑, 나쁜 사람, 아주아주 나쁜 사람!”   바닥으로 넘어진 수아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예쁜 언니가 너한테 준 만두니까 먹어, 너랑 이 예쁜 언니랑 한 사람에 하나씩.”   박이성이 만두 두 개를 바닥에 던지더니 구두를 신은 발로 만두를 짓밟았다. “안 먹으면 두 사람 손을 못 쓰게 만들어 줄 거야!”   “도련님, 제가 먹을게요, 아이는 그냥 내버려 두세요. 도련님, 제발, 제가 이렇게 빌게요. 그래도 수아는 시율 아가씨 딸이잖아요, 시율 아가씨는 도련님 사촌 동생이기도 하고요!”   박이성의 말을 들은 지유가 놀라 바닥에 무릎을 꿇더니 만두 두 개를 들고 구걸하는 눈빛으로 박이성을 바라봤다.   “시율이… 딸?”   도범은 그 말을 듣자마자 멍해졌다. 시율이한테 어떻게 딸이 생긴 거지? 게다가 시율이는 그래도 박 씨 집안의 아가씨인데 딸은 왜 저런 거지 모습을 하고 있는 거지?  “나를 기다리겠다고 하더니, 설마 내가 싸우러 간 사이에 이렇게 빨리 다른 사람한테 시집이라고 간 건가?”   도범의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씁쓸하게 웃었다. 자신이 너무 순진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순진하게 박시율이 아직도 자신을 기다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이아버지가 전쟁터에서 죽은 지 벌써 몇 년이나 지났는지도 모르니 이 아이는 잡종이 확실해!”   “그리고 그 쓰레기 같은 배달부랑 가짜 결혼을 하라고 했더니 박시율은 그 쓰레기의 아이까지 임신했어, 아이를 지우라고 하는데도 기어코 낳았어!”   “그래서 오늘 같은 결말을 맞이한 거야, 모두 자처한 거라고. 우리 박 씨 집안의 명성에 먹칠을 했으니 이런 결말을 맞이해야 하는 건 당연한 거야!”   박이성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박이성의 말을 들은 도범은 분노에 휩싸였다. 그러니까 저 꼬질한 모습을 한 여자아이가 자신의 딸이라고?  도범은 주먹을 쥐더니 눈시울을 붉혔다. 5년 동안 박시율은 무엇을 경험했던 것일까?   “먹을 거야 말 거야. 안 먹으면 오늘 여기에서 벗어날 생각하지 마!”   박이성이 더러워진 만두를 빼앗아오더니 한 손으로 수아를 들고 만두를 아이의 입속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우웁, 나쁜 사람, 안 먹을 거예요, 이거 안 먹을 거예요…”   아이는 허공에서 두 다리로 마구잡이로 걷어차다 박이성의 옷을 찼다. “이게, 죽고 싶어? 내 옷이 얼마나 비싼 줄 알아?”   그 모습을 본 박이성이 힘껏 수아를 내던졌다.   “이 짐승 같은 것, 수아 당신 조카야!”   도범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저렇게 작은 수아를 땅으로 던지다니?   더 이상 참지 못한 도범이 박이성 앞에 모습을 드러내며 땅에 떨어지려던 수아를 받았다.   “아!”  수아는 적잖이 놀란 듯했다. 얼른 눈을 뜬 아이가 눈앞에서 의연한 얼굴을 한 남자를 바라봤다. “아저씨는 누, 누구세요?”   도범을 바라보는 수아의 눈빛 속에는 두려움이 담겨있었다.   “무서워하지 마, 수아야. 이제 그 누구도 수아랑 수아 엄마를 괴롭히지 못할 거야!” 수아를 품에 안은 도범은 감격스러웠다. 혈육 간의 친밀감이 전해져왔기 때문이었다. 수아가 바로 자신의 딸이었다, 자신과 박시율의 딸이었다. “당신 누구길래 감히 박 씨 집안일에 참견질이야?”   박이성이 화가 나서 소리쳤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도범은 많이 변했다. 평범한 배달부에서 대하의 유일한 장군이 되어 박이성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일에 참견질을 좀 해야겠다!”   도범이 차가운 눈빛으로 박이성을 바라봤다. 그 사나운 기세에 박이성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수아야, 무서워하지 마. 내가 너를 지켜줄 테니까!”   도범이 다정하게 품 안의 수아를 바라보다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다들 멍청하게 서서 뭐해? 저 자식 손발 다 부려뜨려!”   박이성은 건장한 보디가드를 보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감히 겁도 없이 박 씨 집안 도련님 일에 참견을 해!”   열몇 명의 보디가드들이 도범을 둘러쌌다.    하지만 박이성이 눈 깜짝할 사이에 보디가드들은 모두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아, 내 손!”   “발, 내 발!”   바닥에 쓰러진 보디가드를 본 박이성은 놀라 안색이 창백해졌다.   “너, 너 이 자식, 너 누구야? 나 박 씨 집안 도련님이야, 감히 나를 건드렸다간 좋은 꼴 못 볼 거야!”   박이성이 침을 삼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 너 대신 전쟁터에 나간 사람이다!”   도범이 사나운 눈빛으로 박이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박이성, 내가 너 대신 전쟁터에 나가서 몇 번이나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는지 알아? 그런데 너는 내 딸한테 짓밟은 만두를 먹이려고 했어?”   “너, 네가 도범이라고? 말도 안 돼, 5년 동안 아무런 소식도 없다가 이렇게 살아서 돌아왔다고?”   박이성은 놀라서 제자리에 굳어버렸다. 박 씨 집안사람뿐만 아니라 중주의 모든 사람들이 도범은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매스컴의 보도에 의하면 피도 눈물도 없는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은 전사가 수도 없이 많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미안하지만 나 도범은 목숨이 질겨서 쉽게 죽지 않아!”   도범이 차갑게 말을 하며 박이성을 걷어찼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무릎을 꿇은 박이성이 고통스럽게 소리를 질렀다.   “이 만두 먹어, 아니면 네가 시율이 사촌 오빠든 말든 너 같은 짐승새끼 내가 죽여버릴 테니까!”   도범이 흙이 가득 묻은 만두를 박이성의 앞으로 던지며 냉랭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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