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지금 나보고 가라는 거야?" 하현은 웃음이 터졌다. 일개 직원이 어떻게 상사한테 가라고 말할 수가 있나? "내 말 못 알아듣겠어? 너 얼른 가라고! 누가 뽑았든, 네가 무슨 배경 출신이든, 지금 당장 꺼져!" 겨울은 이를 악물었다. 겨울은 말을 끝마치자 가방에서 돈다발을 꺼내더니 바닥에 던졌다. 그녀는 거칠게 말했다. "너 안 갈 거지? 그냥 돈이 필요한 거 아니야? 돈 챙기고 얼른 꺼져!" 이때, 굉장히 큰 경적 소리가 울리더니, 벤틀리 한 대가 회장님의 주차 공간에 멈춰서자 직원들은 재빨리 흩어졌다. 다음,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하얀 셔츠와 정교한 가죽 바지를 입고, 포니테일을 하고 파우치를 든 채 빠른 걸음으로 나왔다. 여자의 외모는 겨울과 거의 동급이었지만 그녀의 성품은 겨울과 비교 불가였다. 여자는 다른 사람도 쳐다보지 않고 얼른 하현에게로 걸어갔다. 그녀는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말했다. "대표님, 죄송합니다. 차가 막히는 바람에 제가 늦었습니다." 하현은 이 미녀를 힐끗 쳐다보자 그녀가 바로 이슬기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하현이 하엔에 있었을 때, 그녀가 그의 밑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하현은 슬기가 하엔 그룹 대표의 비서가 될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오랜만이에요." 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슬기 씨, 헷갈리신 것 같아요." 겨울은 한발자국 앞으로 나왔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누가 대표님이신지 모두가 알아요. 청소부 아무나 골라 그렇게 부르시면 안 되죠!" "청소부요?" 슬기는 하현을 조심히 살폈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았다. 그러더니 슬기는 뒤돌아서 차갑게 겨울을 쳐다보았다. "김 부장님, 눈을 뜨고 똑바로 들으세요. 오늘부로, 저희의 새로운 대표님 하 대표님이십니다." "네?!" 모든 사람, 특히 경비실장이 충격을 금치 못했다. 그의 다리에 힘이 빠졌다. 그는 대표님의 차를 발로 찼는데, 이건… "이게 어떻게 가능해?! 불가능해!" 겨울은 자신의 얇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 사람은 하현이에요. 맞아요, 근데 얘는 내 대학 동기에요. 얘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어요. 어떻게 얘가 우리 대표님이에요?" 겨울은 헷갈렸다. 어떻게 대표님이 데릴사위야? 어떻게 대표님이 이런 복장으로 출근해? 게다가, 그는 어제 플래티넘 호텔에서 사기 치다 걸렸다. 하현 같은 사람은 곤룡포를 입는다고 해도 왕처럼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 부장으로써 이 분이 대표님이신지 아닌지 결정할 자격이 없어요." 슬기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슬기는 부장이라는 말에 힘을 주어 말했다. 최근에 겨울이 본부장으로 승진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알랑거렸지만 지금… 지잉… 이 순간, 겨울은 아무 생각이 안 났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다. 겨울의 구두 굽도 부러질 것만 같았다. 그녀는 하현을 아예 쳐다볼 엄두가 안 났다. 겨울은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하엔 그룹에서의 인맥이 넓어서 본부장으로 승진 할 기회가 보였다. 그러나 오늘 겨울은 대표님을 해고한다 하지 않았나, 심지어 돈다발을 하현 앞에 바닥에 던지지 않았나… "대... 대표님… 저는 그런 뜻이 아니라…" 한참 뒤에 겨울은 하현에게 걸어가 떨면서 말했다. "돈 주워. 이게 네 미래의 생활비가 될 수도 있어." 하현은 차갑게 말했다. 겨울은 몸을 떨며 감히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하현은 겨울을 무시하고 경비실장을 쳐다보았다. 한편, 경비실장은 어안이 벙벙해 얼굴은 침울했다. "당신은 해고야." 하현은 차분하게 말하고 뒤돌아서 회사 안으로 걸어갔다. 사람들이 단체로 따라갔다. 많은 직원들이 이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었다. 하엔 그룹은 대기업으로, 5천 명 가까이 되는 직원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대표 교체는 그 중 몇몇만 알고 있었다. 난장판을 벌였으니 이제 회사 전체가 알게 되었다. 많은 직원들이 하현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러나 하현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볼 용기가 있는 자는 없었다. 이준도 사람들 속에서 고개를 숙였다. 그는 고개를 들어 하현의 뒷통수를 바라보았다. 이준은 약간의 익숙함에 잠깐 얼어있었지만, 그게 누구 뒷모습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 대표 사무실은 오피스 건물 제일 위층에 있었고 그 층 전체 공간을 차지했다. 하현의 예전 습관에 맞춰 사무실은 밤새 다시 꾸며졌다. 하현은 이상한 표정으로 대표 의자에 대충 앉았다. 태규가 일을 잘했다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가구 배치도 깔끔하게 잘 되어있어서 1조 원을 사용한 것에 마음이 편했다. 겨울도 걱정되는 표정으로 사무실 안 하현과 슬기 옆에 서있었다. 슬기는 겨울을 무시하며 서류 몇 장을 꺼냈다. 그것들을 하현 앞에 놔두고 그녀는 말했다. "대표님, 서류 여기 있습니다. 오늘부터 회사는 대표님 소유입니다." 하현은 계약서에 허점이 없는지 서류를 꼼꼼히 살펴본 뒤 서명했다. 슬기는 또 다른 파일을 꺼내며 말했다. "대표님, 이건 작년에 했던 큰 프로젝트들 몇 가지와 최근에 계획을 짜서 준비 중인 투자 안건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곧 승진할 후보들이다. 한번 훑어봐 주세요." "제가 훑어볼 필요는 없어요. 그냥 기존에 계획했던 투자 안건들을 모두 취소하고, 파트너에게 대표가 바뀌었다고 전해주세요." 하현이 가벼운 말투로 얘기했다. 그의 한마디가 서울에 있는 수많은 가족들의 생사를 결정지었다. "또한, 서울에서 제일 좋은 프로젝트들에 투자하기 위해 회사가 투자금 6조 원을 추가할 것이라고 대중에게 발표하세요." "승진 안건은 일단 나중으로 미루세요. 제가 모든 직원들을 알게 될 때까지 기다려주세요." "네!" 슬기는 헛소리 할 생각 없이 재빨리 사무실을 나갔다. 쾅. 구석에 서 있던 겨울에게는 타격이 컸다. 그녀는 하현의 간단한 한마디로 자신의 승진은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보다도, 겨울이 이전에 동의한 투자 안건 중 일부는 단번에 거절되었다. 지난 몇 년간 그녀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심지어 그녀는 직장을 잃을 수도 있다… 겨울은 매달 내야 할 자동차 대출금과 수백 수천억 원의 대출금을 생각하자 우울해졌다. 겨울은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몰랐다. 그녀의 목소리는 모기처럼 작았다. "대표님,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어요. 저희는 같은 과 동기니까 저를 해고하시지 않으면 안 될까요? 대표님께서 원하시는 건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뭐든지 할 의향이 있어?" 하현은 재미있어했다. 그는 겨울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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