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30분 후, 하현은 은아의 회사에 도착했다. 하현이 입구로 들어가려던 순간, 갑자기 경호원 한 명이 그를 호신봉으로 막아섰다. 경호원이 차갑게 말했다. “썩 꺼져! 여기는 거지들을 반기지 않아.” 하현은 일어나자 마자 구멍난 티셔츠에 반바지 하나를 걸쳐입고 씻지도 않고 나왔기에 거지처럼 보이긴 했다. 하현은 그런 거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아저씨, 전 제 아내한테 서류를 전해주러 온 사람이에요.” “그 꼴에 아내가 있다고?” 경호원은 의심했다. “청소부 희진이야 아니면 뒤에 주방에서 일하는 직원 수빈이야?” “제 아내는 은아에요.” 하현이 말했다. 경호원은 순간 벙져 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아 그렇구나. 당신이였구나. 말로만 듣던 설 씨 집안 데릴사위님...하하하하하.” 경호원은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하현은 고개를 저었다. 그가 이렇게 유명한 줄은 전혀 몰랐다. “알았어, 알았어. 서류를 내놔. 설 씨 아가씨께서 당신이 오면 서류를 받아달라고 했어.” 경호원은 말했다. “아니요.” 하현은 고개를 저으며 고집스레 말했. “우리 처제가 꽤 중요한 것이라고 했으니 제가 직접 아내한테 전해줘야 겠어요. 잠깐 비켜주시겠어요?” “당신!” 경호원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 ‘미친 거 아니야? 설 씨들이 얼마나 자기를 싫어하는지 모르나? 게다가 이렇게 옷을 입고 나오다니. 회사 이미지를 망칠까 걱정은 안 하나?’ 그들이 이야기하던 중, 갑자기 뒤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부릉부릉 크게 들렸다. 얼마 후 BMW 5 시리즈 하나가 빠른 속도로 드리프트를 하며 하현의 스쿠터 옆에 주차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준이 한 손에 장미 다발을 든 채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았다. “강 부장님! 안녕하세요.” 이준을 본 건방진 경호원은 어느 친절한 얼굴로 돌변하더 알랑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호원은 말했다. “강 부장님,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정사장님 사무실에서 부장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하현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뒤돌아서 회사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하현도 회사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경호원이 호신봉을 들어 올려 다시한번 하현의 앞길을 막아섰다. “뭐하는거에요? 왜 저 사람은 회사 안으로 들어가도 되고 저는 안 돼요?” 하현은 경호원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경호원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현, 당신은 그저 데릴사위야. 어떻게 강 부장님이랑 비교가 돼? 봐봐, 부장님 손에 들려있는 향수와 장미들은 틀림없이 몇백만 원 이상이야. 당신에게 그런 돈이 있어? 내가 봤을 때 당신은 곧 데릴사위 신분도 얼마 버티지 못할거 같아." 하현은 잠시 멍해있다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무슨 뜻이냐니? 당신은 진짜 멍청한 거야 아니면 여기서 쇼를 하고 있는 거야? 어젯밤에 일어난 일은 소문이 퍼질대로 퍼졌어. 모두 강 부장이 정은아씨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아. 두 분이야말로 선남선녀 천생연분이야. 서로 너무 잘 어울리잖아. 당신 꼬라지한번 봐봐! 한심하고 쓸모없어 보여. 애당초에 왜 설 씨 아가씨가 당신과 결혼한건지 이해가 안가” 경호원은 하현에게 핀잔을 줬다. ... 한편, 로비에 있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은아가 꽃무늬 드레스를 입고 엘리베이터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너무 매력적이고 아름다웠다. 바로 그때, 은아는 이준을 봤다. 은아는 웃으며 이준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서 먼저 입을 열었다. “이준 씨,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준이 가늘게 뜬 눈동자 깊은 곳에서 욕망이 불현듯 번득이다가 스쳐지나갔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입맛을 다시다 말고 정중하게 은아에게 꽃다발을 선물하며 미소를 지었다. “명검은 영웅에게, 꽃다발은 미인에게 선물해야 한다는 말이 있죠. 은아씨, 당신은 꽃보다 아름다워요. 오직 당신만이 이 꽃다발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어요.” 은아는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어젯밤에 일어난 일이 눈앞에 생생했다. 이준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은아에게 청혼을 했고, 이제 서울 곳곳에 이 사실이 알려졌다. 심지어 오늘 이준은 지금 지극히도 대담하게 은아를 찾아까지 와서 대시하고 있다. 처음에 은아는 이준을 만나길 원치 않아 했다. 하지만 은아의 회사가 현재 자금이 절실한 상황이 은아는 이준의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 은아는 웃으며 말했다. “이준 씨, 고마워요. 오늘 제가 이준 씨를 이렇게 정중하게 초대한 이유는 이준 씨와 비즈니스 협상을 하고 싶어서 그런거에요. 제가 어떻게 이준 씨에게서 선물까지 받아요?” 이준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별 거 아니에요. 다른 뜻은 없어요. 은아씨가 제 선물을 거절하시다니. 혹시 제 성의가 부족했나요? 그럼 이렇게 합시다. 제가 사람을 시 프라하에서 항공으로 꽃배달을 하라고 할게요. 어떠신가요?”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올해 프라하 장미 생산이 별로 좋지 못하다네요. 거기서 원산지 장미들은 한 송이 당 백만 원도 넘는다고 하더라고요. 그 정도 가치는 없는 것 같아요...” 은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녀는 그곳의 장미를 좋아했지만, 가격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장미 한 송이당 백만 원 이상이라...” 이준의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 ‘당연히 장미꽃 한 송이만 선물할 순 없. 지금 내 손에는 장미꽃 백 송이도 더 돼. 만약 굳이 프라하 장미를 선물하고 싶다면 이 정도는 있어야 해. 그러니까 20억 원은 넘게 필요하단 말이지.’ 이 생각을 하자, 자신이 부유하다고 평소에 남들 앞에서 잘난 체하던 이준도 어쩔 수 없이 조금 민망해졌다. 바로 이때, 로비 밖에 서 있던 하현이 갑자 경호원을 지나쳐 로비 안으로 불쑥 쳐들어왔다. 그리고 이준의 손에 들려있던 꽃다발을 가로채 바닥으로 던지면서 발로 밟기까지 했다. “은아야, 다른 사람들한테서 아무거나 막 받지 마. 네가 장미를 좋아한다면 내가 사줄게. 겨우 장미일 뿐이잖아!” 어디에서 난 용기인지 하현은 은아의 작고 여린 손을 잡고 그녀를 엘리베이터로 끌고 갔다. “하현, 이 손 놔. 방금 무슨 헛소리를 지껄인 거야?” 은아는 작은 목소리로 하현을 비난했다. 지금은 회사 로비이고 이곳에 사람들로 가득 차있다. 회사 대표로서 은아는 당연히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들면 안 됐다. 그래서 은아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손을 빼고 싶었으나 하현에게 꽉 붙잡혀 도무지 뺄수 없었다, “이 자식이! 일로 와!” 처음에 이준은 약간의 뻘쭘함을 느꼈다. 그러다 차츰 화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백만원도 훨씬 초과하는 꽃다발을 여신님의 품에 안겨드리기도 전에 하현에 의해 짓밟혀졌으니 이준은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쓸모없는 데릴사위 녀석이 우리 여신님의 손을 잡고 있는게 아닌가, 아직 이준도 잡아보지 못한 그 손을! “당신이 내 꽃을 망가뜨렸어! 어떻게 배상할 거야? 당신 주제를 알고 있기나 ?” 이준은 왼손으로 엘리베이터 문을 탁 잡고 강제로 다시 문을 열어 당겼다. “야 루저! 지금 당장 사과하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러면 당신은 무거운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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