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화

한 시각이 흐른 뒤, 강청연은 마차에서 내리다 발을 헛디딜 뻔했다. “세자빈마마, 괜찮으십니까?” 김신재가 다급히 달려와 부축했다. 강청연은 가볍게 눈을 흘기며 대꾸했다. “네가 보기에는 괜찮아 보이느냐.” 그 말투에 섞인 가벼운 짜증은 오히려 새로이 피어난 여인의 정을 숨기려는 듯했다. 김신재는 순간 미안함이 밀려들었다. 강청연은 너무도 고왔다. 이 세상 열 번, 백 번을 살아도 감히 다가갈 수 없는 꽃 같은 존재를 자신이 이렇게 독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순간, 이 세계로 오기 전, 세속을 헤매던 자신은 어설픈 맞선 자리에 나가서도 늘 푸대접을 받았던 것이 문뜩 떠올랐다. 그때 마주했던 진한 화장과 허울뿐인 웃음들은 지금 이 사람 앞에서는 한없이 초라할 뿐이었다. “마마, 여기서 잠시 쉬어가시지요. 밖은 찬 기운이 가득하옵니다.” 김신재가 조심스럽게 권하자, 강청연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대로는 안 되지. 얼굴이 붉어져서 어마마마께 들키겠다. 내가 서둘러 정돈하고 올 테니, 너는 어서 산 아래로 내려가거라.” 그녀는 폭포 옆 맑은 시냇물 가로 가, 손을 담그고 조심스레 얼굴을 씻었다. 차가운 물결이 뺨을 스치자, 그녀는 문득 미소를 머금었다. 물 위에 비친 자기 모습은 봄날 만개한 복사꽃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여인이 되어가는 기쁨이 비로소 온몸으로 느껴지는 새로운 세계였다. 강청연은 스스로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오래도록 잊고 살았던 화사한 웃음이었다. 한편, 김신재는 입구를 향해 걸어가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오늘은 참 좋은 날, 참으로 좋은 날...” 그 모습을 본 강청연은 물가에서 고개를 돌려 피식 웃었다. “거참, 신이 났네 아주!” 강청연은 작은 미소를 흘리며 맑은 물에 얼굴을 비추어 보았다. 그 얼굴에는 부끄러움과 행복이 뒤섞인, 꽃다운 여인이 있었다. 김신재가 궁 입구에 당도했을 때, 마침 중전마마가 가족들과 함께 올라오는 행렬을 마주쳤다. 근위병들은 일제히 무릎을 꿇고 맞았다. 그들 눈에는 김신재가 그저 마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