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2화

고태빈은 곧바로 박해은에게 다가갔다. 그의 얼굴에는 미처 감추지 못한 불안과 당황의 빛이 서려 있었다. 박해은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고태빈을 응시했다. 그녀는 고태빈의 죄책감이야말로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박해은은 절대 과거의 서규영과 같은 멍청한 결정을 내리지 않을 거라고 결심했다. 남편이 외부의 바람에 흔들리는 일로 이혼해 버리는 행동은 결국 자기만 손해 보는 짓이니까. “미안해, 해은아... 방금 했던 말들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어.” 박해은은 대뜸 고태빈의 품에 안겨버렸다. “알아, 오빠... 오빠가 일부러 그런 말로 날 상처 주려 할 리가 없지. 규영 언니는 그저 우리 사이를 망가뜨리고 싶어서 오빠가 그렇게 말하도록 유도한 것뿐이야. 난 오빠가 절대 그럴 리 없다는 걸 믿어.” 이 상황을 어떻게 모면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고태빈은 예상치 못한 박해은의 반응에 연신 눈을 깜빡였다. ‘이렇게 쉽게 풀리다니... 다행이군.’ 하지만 그녀의 이러한 반응은 오히려 고태빈의 죄책감을 증발시켰다. 박해은이 무르게 나올수록 서규영을 향한 그의 마음은 전보다 더 커질 뿐이었다. “이해해 줘서 고마워, 해은아.” “난 사실 오빠가 규영 언니한테 미련이 남아있다는 걸 알고 있어. 두 사람, 워낙 오랜 시간을 함께했으니까... 당장 언니를 잊으라고는 하지 않을게. 그 모습이 오히려 오빠가 일편단심이라는 걸 증명하는 셈이니까. 내가 오빠에게 반한 점이기도 하고...” 고태빈은 박해은의 인정과 칭찬이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그는 무조건적으로 떠받들어지고 사랑받으며 숭배받는 느낌을 가장 즐겼다. 서규영은 이 점에서 박해은에게는 절대 미치지 못했다. 고태빈 내면의 자존감은 극도로 팽창했다. 그런데 그때, 박해은의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오빠... 난 오빠를 너무 사랑해. 오빠를 잃을까 봐 너무 무서워... 너무 불안하다고...” 진주 같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향한 사랑을 호소하는 박해은을 본 고태빈